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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인잡] 사내징계③ 억울하고 부당할수록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이유

충분한 소명 노력이 올바른 조치 결과로 이어져…갈등의 원인은 개인보다 구조적 문제에 기인

2023.07.20(Thu) 10:15:26

[비즈한국] 징계 대상 직원을 조사 면담하기 위해 한 달을 쫓아다닌 적이 있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직원은 면담 목적과 배경을 설명하고 시간과 장소를 알리면 자발적으로 면담 요청에 응한다. 경찰서에서 하는 심문 조사도, 검찰 조사도 아니지만 인사팀(혹은 감사팀)에서 면담을 요청하면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보통은 직접 찾아와 변명을 하든 소명을 하든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자기 의견을 피력한다. 스스로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어떤 갈등 상황에서 무조건 입을 닫고 넘어가는 건 직원에게도 회사 입장에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데 H는 회사에서 사전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통보한 면담에 자신이 응할 의무가 없다며 면담을 거부했다.(애초에 본인이 전화를 피하고 연락을 안 받았으면서!) 교대 근무 시간과 휴게시간을 고려해 시간을 조정하고 부서에 정식으로 업무 공백에 대한 사전 양해를 구하며 세 차례나 조사 일정을 알렸으나 응하지 않았다. 징계 조사의 경우 사실관계를 확인하려면 면담이 필수이다 보니 시간과 장소를 정하면 직접 찾아가겠다고 제안하고 약속을 잡았는데도 급한 일이 생겼다며 두 번이나 바람을 맞혔다. 마치 최애를 따라다니는 극성 사생팬, 혹은 원치 않는 이에게 끈질기게 구애 활동을 펼치는 스토커라도 된 기분이었다.

 

H의 징계 조사 사유는 ‘업무지시 불이행’이었다. 상황이 이쯤 되니 평소 그의 업무태도나 조직 생활이 어떠했을지 굳이 직접 만나보지 않아도 미루어 짐작이 되지 않냐는 이야기가 오갔다. 직속 상사의 업무지시도 따르지 않는데 인사팀의 개별 면담에 응할 리 만무하지 않겠는가. 오랜 기간 불성실한 업무태도와 지시 불응으로 업무가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고 있으며 거부행위가 반복되다 보니 그에 동조하는 직원들이 생겨나는 등 조직 질서가 엉망이 되어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며 직속 상사가 회사에 징계 조사를 요청한 것이었다. 어쨌든 H가 계속해서 면담 조사를 회피하자 조사가 진행될수록 징계 쪽으로 힘이 실렸다.

 

질문지를 보내주면 서면으로 답변하겠다 하여 내용증명도 보내봤지만 결국 H는 인사위원회가 열리는 날까지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위원회 출석통지서는 출근길에 대기하고 있다가 근무복을 갈아입고 나오는 것을 붙잡아 겨우 전달했다. 징계위원회는 5시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그동안 입을 꼭 닫고 애태우게 하던 H는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했는지 인사위원회에 출석하여 본인의 행동과 이유에 대해 한참을 설명했다.

 

입사 초기 그는 성실한 직원이었다. 하지만 일을 열심히 할수록 자신에게만 일이 몰리는 것에 점점 부담을 느꼈다. 책임질 일은 계속 늘어났지만, 본인이 받는 보상이나 처우가 옆에 있는 동료에 비해 한참이나 뒤처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직군이 다르고 입사 경로가 다르기 때문에 열심히 일해봐야 승진이 불가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러던 중 자기의 업무 범위를 넘어선 일을 상급자 지시에 따라 처리하다 문제가 발생했는데 부서에서는 그 책임을 오롯이 H에만 떠넘겼다. 원래 그 일을 해야 하는 담당자, 책임소재가 더 높은 상급자가 줄줄이 있었으나 혼자서 손해를 메웠고 다 같이 쉬쉬했다. 자신이 느낀 부당함에 대해 그는 상사의 모든 업무지시에 불응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H의 진술 내용을 바탕으로 조사는 원점에서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묻혀있던 사건이 표면 위로 드러났고 징계를 요청했던 이들 또한 징계혐의자 신분으로 피면담자가 되었다. 다시 진행된 조사에서 힘들게 마주 앉은 H에 그간 왜 그리 면담을 피해 왔는지 묻자 ‘어차피 모두 한 패’ 일 거로 생각했다며 멋쩍게 웃었다. 이유야 어쨌든 자기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며 인정도 했다. 결국 중징계가 예상되었던 H는 경징계로, H의 상급자들 또한 관리·감독 소홀로 비슷한 양정의 징계를 받았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직급별, 직군별 직무권한과 책임 범위에 대한 전사적인 재설계가 진행되었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회사에서 벌어지는, 아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다 그만한 원인과 배경이 있다. 특히 직원이 사용자나 회사(보통은 상사)의 업무지시나 명령에 불응하는 데에는 나름의 사유가 있다. 지시내용이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해서일 수도 있고 정말 부당하거나 잘못된 지시일 때도 많다. 그래도 H처럼 어떤 방식으로든 목소리를 내면 다행이지만 그러지 못하고 다른 방식으로 표출되어 회사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히거나 입을 닫은 채 회사를 떠나는 직원도 많다. 이렇게 입을 닫고 넘어가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회사 입장에서도 그다지 좋은 시그널이 아니다.

 

물론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해서 잘못된 행위가 잘한 일이 되는 것도, 없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어떤 갈등 상황에서든 직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직의 구성원으로서뿐 아니라 ‘사람’으로서 대상에 대해 이해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그간 드러나지 않았던 회사의 구조적인 문제를 알게 되는 경우도 많다. 아니, 오히려 직원 개인의 일탈을 탓하기 이전에 회사 내에 굳어진 위계질서나 시스템에 더 큰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같은 직장에서 밥벌이하는 입장이기에 더 잘 알 수밖에 없는 뼈저린 현실이다.

 

인터넷에 ‘인사팀 면담’으로 검색해 보면 사측의 하수인이라든지, 절대 믿으면 안 된다는 식의 부정적인 반응이 많다는 인상을 받는다. 하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억울하고 부당하다고 생각할수록 무작정 면담을 회피하고 입을 닫고 있기보다는 주저하지 말고 자기 목소리를 낼 것을 추천하고 싶다. 어쨌든 많은 이야기를 보고 듣는 것이 인사담당자들의 일이고, 듣고 또 듣는 것에 진심을 다하는 사람들 또한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많다.​ 

김진 HR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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