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올해 그래미 어워즈에서 눈길을 끈 것 중 하나는 배드 버니의 올해의 앨범 수상이었다. 레이디 가가, 저스틴 비버, 켄드릭 라마, 사브리나 카펜터 등 쟁쟁한 후보들을 물리치고 수상했다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유연하지 못하다는 그래미가 100% 스페인어 앨범을 올해의 앨범으로 선정한 것이 이례적이어서다.
배드 버니의 앨범 ‘데비 티라르 마스 포토스(Debí Tirar Más Fotos)’는 라틴 비트에 레게스타일의 음악 장르인데 노래 가사가 전부 스페인어다. 배드 버니는 푸에르토리코 출신이다. 푸에르토리코는 미국령이지만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라틴의 세계관과 정체성이 짙은 곳이다. 한국처럼 문화의 가교 지역이다. 푸에르토리코 문화에 기반한 이 앨범의 곡들은 팝 음악의 문법을 전적으로 따르지도 않는다. 푸에르토리코 출신들의 추억과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노래들이다.
그의 수상은 어느 날 갑자기 이뤄진 것은 아니다. 배드 버니는 2016년 스페인어 곡 ‘소이 페오(Soy Peor, 난 더 나빠)’로 데뷔했고, 전 세계에 라틴팝 붐을 만들어낸 주역이다. 2023년 ‘운 베라노 신 티(Un Verano Sin Ti, 너 없는 여름)’으로 그래미 후보에 오른 바 있다. 라틴 앨범으로는 최초로 올해의 앨범 부문에 후보로 올랐지만 수상은 해리 스타일스의 ‘Harry’s House’에게 돌아갔다.
배드 버니의 그래미 수상은 개인적인 성취뿐만 아니라 여러 요소가 맞물렸다. 히스패닉 문화와 라틴 문화가 뒷받침했고, 타이밍도 좋았다. ICE(이민세관단속국)의 과잉 단속으로 벌어지는 ‘ICE 아웃(OUT)’ 캠페인이 영향을 미쳤다. 많은 뮤지션들이 이 배지를 달고 그래미 시상식에 자리했다. ‘뮤지카 어바나 앨범’ 부문도 수상한 배드 버니는 무대에서 “ICE 아웃”을 외쳤고 “우리는 야만인이나 동물, 외계인이 아니라 인간이자 미국인”이며 “증오보다 더 강력한 것은 사랑”이라고 역설했다. 올해의 노래를 수상한 빌리 아일리시도 “빌어먹을 ICE”라고 외치며 트럼프 대통령의 불법이민자 추방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래미 시상식을 보며 몇 가지 우리가 생각해볼 점이 떠올랐다. 미국인에게 아주 가까운 라틴 음악 혹은 스페인 음악조차 오랫동안 그들에게 인정받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미국 내에 히스패닉 인구가 상당한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K팝이 한국 음악만을 대변해서는 그래미 수상까지 더 지난한 과정을 겪어야 할 수도 있다. K팝은 다문화적 요소가 덜하다는 약점이 있다. 한국만이 아니라 아시아 정서와 음악적 코드가 담긴 음악을 아우를 필요가 있다. 아시아의 든든한 팬덤 문화는 그러한 면에서 중요한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인종으로 구성된 캣츠아이가 데뷔 2년 만에 그래미 신인상과 베스트 팝 듀오 그룹 퍼포먼스 부문에 오른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 현지화라는 이름으로 한국인을 제외한 멤버 구성을 인위적으로 할 필요가 있는지는 생각할 점이 있어 보인다. 로제가 각광받은 것은 로제에게 다문화 코드가 있어서임을 간과할 수 없다. 이런 점을 잘 살리고 확장할 필요가 있다. 해외 동포 뮤지션과 협업하면서 아시아 이주민 그룹의 리더가 되어야 한다. 나이지리아 1세대 이민자 어머니를 둔 래퍼 샤부지는 그래미에서 컨트리 뮤직 듀오 퍼포먼스 부문을 수상하고 “이 나라는 이민자들이 만들었다”라고 했는데, 샤부지처럼 K팝 아티스트들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또 빌리 아일리시의 ‘올해의 노래’ 수상과 배니 버니의 ‘올해의 앨범’ 수상을 보면 그들의 성취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 그래미적인 것이라는 인식을 다시금 환기한다. 그래미는 서구 음악의 시상식이다. 그들은 개인의 감성과 정서, 그에 따른 음악적 역량이나 성취에 주안점을 둔다. 듀오나 그룹 부문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평가한다. 그에 반해 K팝은 개인보다는 완전체의 퍼포먼스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기획형 아이돌 음악에 대한 편견도 있다.
블랙핑크와 방탄소년단 모두 개별적인 역량 강화와 이를 토대로 완전체 활동을 더욱 돈독하게 만든다. 이른바 자율형 아이돌의 성장이 그래미 어워즈의 아티스트 정신 중시 원칙과 맞아떨어진다면 새로운 K팝 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로제와 같은 협업은 계속 시도돼야 하며, 영상의 음악 문법과 향유 방식에 맞게 케데헌과 같이 콘텐츠와 시너지 효과를 내는 창작 방식을 적극 취해야 한다. 개인을 바탕으로 한 완전체, 나아가 공동체를 대변하는 포맷은 K팝을 통해 다문화 그 이상을 보여주어야 한다.
필자 김헌식은 20대부터 문화 속에 세상을 좀 더 낫게 만드는 길이 있다는 기대감으로 특히 대중문화 현상의 숲을 거닐거나 헤쳐왔다. 인공지능과 양자 컴퓨터가 활약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같은 믿음으로 한길을 가고 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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