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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번 나눠 결제'도 속수무책, 4800일간 방치된 편의점 상비약 원칙

화면 속 경고 무시한 자의적 판매…규정 위반 우려에 발 묶인 단속 실무자

2026.02.27(Fri) 15:50:36

[비즈한국] 심야 시간이나 휴일의 의약품 구입 불편을 해소하고자 2012년 도입된 안전상비의약품(상비약) 제도가 13년째를 맞았다. 국민의 구매 편의와 오남용 방지 사이의 균형을 위해 마련된 ‘11개 판매원칙은 현재 현장의 편법을 걸러내지 못하는 제도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정부조차 2016년 보고서를 통해 “2만여 개나 되는 편의점의 판매를 보건소에서 상시 감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라 명시했을 만큼, 관리 공백은 예견된 문제였다.

 

서울역 인근의 한 편의점 안전상비의약품 매대. 사진=김상훈 인턴기자

 

24일 오후 서울역 일대 편의점 7곳과 송파구 일대 편의점 3곳을 찾았다. 매대를 가득 채운 먹거리와 생필품 사이에서도 상비약이 눈에 띈다. 해열진통제, 감기약 등 총 13종의 약품이 24시간 불을 밝힌 채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도입 전부터 끊임없이 제기됐던 규제의 무력화 우려가 실제 현장에서 어떤 ‘편법’으로 실현되고 있는지, 기자가 직접 구매를 시도하며 그 틈새를 파헤쳐봤다.

 

기자가 동일 품목 2개 이상 구매를 시도하자, 현장에서는 자연스럽게 편법을 꺼내 들었다. 1개씩 나누어 결제하는 것은 기본이었고, 단속을 피하기 위해 현금을 요구하거나, 포스기를 바꿔가며 계산하는 등 과거 코로나19 시기 언급됐던 방식들이 2026년 현재까지도 현장에서 반복되고 있다.

 

편의점 안전상비의약품 목록 13개 사진=김상훈 인턴기자

 

13년째 방치한 시스템의 구멍은 점주들에게 훌륭한 방패가 됐다. 점포 간 구매 정보를 공유하는 등의 장치조차 없는 탓에, 기자는 옆 점포로 발걸음을 옮겨 동일 품목을 제한 없이 다시 구매할 수 있었다. 한 편의점 관계자는 해외로 나가는 손님에게 팔기 위해 특정 의약품을 20번 나누어 결제했다는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전하기도 했다. 국민 건강을 위해 설계된 11개 제한 원칙이 현장의 편법앞에 무력해진 순간이다.

 

현장에서 만난 이들은 규제의 존재를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지만, 그 취지에 대해서는 저마다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었다. “약사들이 반대해서 그렇다”, “정부가 편의점에 시키는 게 너무 많다”, “사재기 막으려는 것 아니냐현장에서 만난 점주들에게서 11개 제한의 본래 취지인 의약품 오남용 방지에 대한 이해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다만, 동일 품목 판매가 금지됐다는 사실만은 누구나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포스(POS)기 화면에 뜨는 경고 문구 덕분이다. 구조적으로 모를 가능성은 희박했으나, 현장은 이를 알면서도 무시하고 있었다. 동일 품목을 2개 이상 구매한 고객에게 인터뷰를 시도했으나, 고객은 답변을 피하고 자리를 떴다. 정부가 내건 규제 목적은 현장에서 철저히 외면받았다.

 

식음료와 의약품을 헷갈리지 않도록 별도 매대를 운영 중이다. 사진=김상훈 인턴기자

 

한 서울 소재 보건소 관계자는 위반 사실을 입증할 증거를 확보하기가 어렵다며 단속의 어려움을 전했다. “행정청이다 보니 모든 처분이나 조치를 하려면 위반사항을 확실하게 확인해야만 조치를 할 수 있다.”면서, “당연히 원칙대로 처리하지만, 증거품이 들어오거나 현장을 목격하지 않으면 단속이 어렵다고 말했다. 다른 서울 소재 보건소 관계자 역시 일부러 가서 2개를 사본다거나, 위반 행위를 경찰처럼 유도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행정처분을 위해서는 업주의 고의성을 반드시 증명해야 하지만, 수사권이 없는 공무원이 신분을 숨기고 점검에 나서는 것은 명백한 규정 위반이다. 억울한 사례를 방지하기 위한 이 법적 원칙은 역설적으로 현장의 편법을 보호하는 안전장치가 됐다. 상비약을 나누어 판매하며 발생시킨 영수증의 시차는 동일인인 줄 몰랐다는 점주의 항변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결국, 실무자들이 현장에서 위반 사항을 직접 포착하지 않는 한, 과태료 부과나 판매 중단 등 실질적인 제재를 가하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실무자들이 법적 테두리 안에서 한계에 부딪히는 사이, 규제의 실효성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도 제기된다. 서울 소재 병원에서 근무 중인 의료관계인 A씨는 제도의 당위는 있지만, 실효성은 모호하다​며 약품 남용이나 우발적인 자살시도를 어느 정도 차단하는 순기능은 있겠으나, 그 이상의 실질적인 관리 기능을 수행하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이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법률 개정과 보건복지부의 구체적인 지침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상위 법률이나 보건복지부의 명확한 지침이 마련되지 않는 한 현재의 단속 방식을 지자체 차원에서 임의로 바꾸기는 어렵다는 취지의 답을 전했다. 현장의 실무자들이 규정 위반의 위험 없이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기 위해서는 중앙 정부의 제도적 결단이 선행되어야 한다.

 

제도 도입 후 4800일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현장과 괴리된 채 낡아버린 규제는 변화한 시대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방치된 시스템의 구멍을 막아야 한다. 실무자들에게 더 많은 현장 대응 권한을 부여할 수 있도록 제도권의 논의가 필요하다. 

김상훈 인턴기자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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