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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와이너리] 아모레퍼시픽과 배달의민족이 제시한 기업 폰트의 '새로운 방향'

디자인 다르지만 자소 디자인에 기업의 핵심가치 담아…지속적인 서체 개발 대안 제시

2023.11.10(금) 15:29:39

[비즈한국] 지난 10월 서울 성수동에 위치한 아모레성수에서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목소리: 아리따’​ 전시가 열렸다. 한글날을 맞아 아모레퍼시픽이 배포하는 전용 폰트 아리따 패밀리의 개발 과정, 인터뷰, 주요 특징, 그리고 여러 디자이너와 협업하여 폰트를 활용한 아트워크를 선보임으로써 아리따의 역사와 특성을 홍보했다. ‘아리따’는 시경(詩經)에 등장하는 문구인 요조숙녀(窈窕淑女)의 ‘아리따운 아가씨’라는 해석에서 따온 이름으로, 아모레퍼시픽이 지향하는 이미지와 들어맞아 폰트 패밀리의 이름으로 낙점됐다. 

 

전시를 보면서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2019년 배달의민족(배민)이 을지로체 출시와 함께 을지로에 열었던 ‘도시와 글자’​ 전시 풍경이다. 배민 을지로체는 조명·전기 관련 가게들이 몰려 있는 을지로 2-3가 사이, 소위 ‘을지로’라고 통칭되는 골목에서 흔히 보이는 붓글씨 간판을 디지털로 구현한 폰트로, 단순히 붓글씨를 재현했을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폰트가 두께를 기준으로 종을 나누는 것과 달리 붓글씨의 풍화 정도에 따라 나눔으로써(을지로체-을지로10년후체-을지로오래오래체) 지역의 물성까지 반영한 것이 특징이다. 기업에서 자사 폰트를 주연으로 등장시킨 전시는 두 회사의 경우가 유이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지난 10월 아모레성수에서 진행된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목소리: 아리따’​ 전시.  사진=한동훈 제공

 

아리따 패밀리는 고딕 계열인 아리따 돋움, 명조 계열인 아리따 부리, 영문 전용 서체인 아리따 산스, 중문 전용 서체인 아리따 흑체로 이루어져 있다. 고급스러운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아모레퍼시픽의 기조에 맞게, 작게 써도 문제없는 가독성과 부드러운 선을 중시했다. 아리따 부리의 가장 얇은 두께인 헤어라인(Hairline)은 우아한 자소 디자인으로 그런 디자인 방향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반면 한나체를 시작으로 주아체, 연성체, 도현체, 기랑해랑체 등으로 이어지며 매년 한글날을 전후해 1종씩 꾸준히 출시되는 배민 폰트는 친근한 기업 이미지에 맞춰 약간 삐뚤빼뚤하게 만든 이른바 B급 정서를 추구한다. 2012년 선보인 한나체의 디자인은 자유분방한 모습으로 ‘폰트란 정교하고 가독성이 좋아야 한다’고만 여기던 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다만 아예 마음대로 만든 것이 아니라 ‘사람이 수작업으로 만든 길거리 간판 글자’라는 고유의 콘셉트가 있다.

 

사람이 수작업으로 만든 길거리 간판 글자에서 모티브를 얻은 배민 을지로체. 사진=배달의민족 제공

 

아리따와 배민 폰트는 대체로 본문용과 제목용이라는 상반된 노선을 취하고 있다. 실제 디자인도 전혀 다르다. 아마 폰트 분류 체계를 정하면 한쪽 끝과 다른 쪽 끝에 위치할 것이다. 그러나 둘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자소 디자인에 기업이 지향하는 핵심 가치를 품고, 다양한 서체 패밀리를 통해 일종의 생태계를 형성하며 직접적 영리활동과 관련이 있든 없든 사람들의 생활 속에 스며들어 차근차근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강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의 기업 폰트 개발 흐름은 여러 종이라고 해도 하나의 일관된 콘셉트 안에서 두께를 달리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두 폰트는 디자인을 달리한 지속적인 서체 개발이라는 대안을 제시했고 이는 브랜딩의 새로운 방향이 될 수 있다. 당장의 드라마틱한 효과보다는 미래를 위한 장기적인 포석인 셈이다. 그러나 포석이 단단한 만큼 쉽게 날아가지 않는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다. 폰트의 지속적인 유지·보수와 전시, 굿즈 판매 같은 요소와 결합할 때 그 효과는 배가될 것이다.​ 

 

​​필자 한동훈은? 서체 디자이너. 글을 쓰고, 글씨를 쓰고, 글자를 설계하고 가르치는 등 글자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 관심이 있다. 현재 서체 스튜디오 얼라인타입에서 다양한 기업 전용폰트와 일반 판매용 폰트를 디자인한다. ‘월간 디자인’​, 계간 ‘디자인 평론’​​등에 기고했으며 온·오프라인 플랫폼에서 서체 디자인 강의를 진행한다. 2021년 에세이집 ‘글자 속의 우주’​를 출간했다.   

한동훈 서체 디자이너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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