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TRAPPIST-1 행성계는 처음 발견되었을 때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사실 중심 별은 태양 질량의 9%밖에 안 되는 아주 가볍고 왜소한 별이다. 중심 별의 표면 온도는 겨우 2500도밖에 안 된다. 그럼에도 큰 주목을 받은 이유는 이 별 주변에서 한꺼번에 무려 일곱 개의 행성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행성들은 가장 안쪽부터 순서대로 TRAPPIST-1 b, c, d, e, f, g, h로 부른다. 특히 그 중에서 d, e, f, g 무려 네 개나 중심 별에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어서 표면에 액체 물로 이루어진 바다가 존재할 수 있는 거리 범위에서 궤도를 돌고 있다. 하나의 별 주변에서 생명 거주 가능 구역 안에 무려 네 개의 행성들이 한꺼번에 궤도를 돌고 있다는 점에서 이곳은 외계 생명체의 징후를 기대할 수 있는 유력한 후보로 여겨졌다.
하지만 생명체가 살기 위해서는 더 많은 행운이 필요하다. 행성이 충분히 두꺼운 대기권으로 덮여 있어야 한다. 대기가 없다면 어떤 생명체도 그 위에서 숨을 쉴 수 없을 테니까.
오랫동안 주목을 받아온 만큼 TRAPPIST-1은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으로 많이 관측한 곳 중 하나다. 그리고 작년에 가장 먼저 행성계 안쪽에서 궤도를 도는 b, c행성에 대한 관측 결과가 발표되었다. 아쉽게도 관측 결과에 따르면 두 행성에서 뚜렷하게 두꺼운 대기권은 확인되지 않는다. 대기가 아예 없거나 있더라도 아주 얇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아주 실망하기는 이르다. 애초에 b, c행성은 중심 별에 지나치게 가까이 붙어 있어서 생명체 존재 가능성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곳이다. 바깥쪽에 있는 행성들이 더 중요하다.
누구에게나 공개된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의 관측 일정을 보면 천문학자들은 이미 TRAPPIST-1 행성들의 관측을 오래전에 완료했다. 그런데 아직 별다른 분석 결과를 발표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걸까?
TRAPPIST-1는 태양보다 훨씬 작고 어두운 적색왜성이다. 사실 적색왜성 주변에 생명이 살 조건이 만들어질 수 있는지는 아직도 첨예하게 의견이 갈리는 논쟁거리다. 단순하게만 생각하면 중심 별에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기만 하다면 너무 덥거나 춥지 않고 온도가 적당해 생명이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특히 적색왜성은 상당히 복잡하다. 가스 구름이 반죽되고 갓 빛을 내기 시작한 초기 단계에서 적색왜성은 주변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별 자체의 크기가 너무 작다 보니 별은 안팎으로 물질이 올라가고 내려가는 격렬한 대류가 벌어진다. 이것은 별 주변에 강력한 자기장을 형성한다. 별 표면으로부터 플라즈마 형태로 존재하는 많은 물질이 자기장에 끌려 올라간다. 별 주변에 복잡하게 꼬여 있는 자기장을 따라 많은 양의 물질이 별 표면 바깥으로 흘러간다. 자기장 다발이 뒤엉키면서 끊어지는 순간 함께 끌려나온 물질들이 빠른 속도로 별 주변 우주 공간으로 분출되고 강력한 플레어를 일으킨다.
특히 적색왜성은 별 자체가 어둡기 때문에 그 주변에서 충분한 온도를 얻기 위해서는 행성이 별에 바짝 붙어 있어야 한다. 별 주변에 형성되는 골디락스 존, 생명 거주 가능 구역 자체가 아주 작게 형성된다. 그래서 큰 별에 비해 오히려 작은 별 주변에서 플레어의 위협에 더 많이 노출된다.

행성을 향해 쏟아지는 별의 플레어로 인해 행성을 감싼 대기권이 상당 부분 벗겨질 수 있다. 수소와 헬륨처럼 가벼운 분자뿐 아니라 이산화탄소, 산소, 질소 등 훨씬 무거운 분자들까지 제거된다. 예를 들어 지구처럼 비교적 얇은 대기로 둘러싸인 암석 행성이라면 적색왜성이 토해내는 강력한 플레어로 인해 사실상 거의 모든 대기권이 벗겨져 날아갈 수 있다.
행성이 이러한 위협을 견뎌내고 자신의 대기권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별의 난폭한 플레어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정도로 강력한 별도의 자기장 보호막을 두르고 있어야 한다. 실제로 화성의 경우 지구보다 태양으로부터 더 멀리 벗어나 있는데도 자기장 보호막을 두르지 못한 탓에 오래전에 고여 있던 바다와 대기가 다 사라져버린 것으로 추정된다.
적색왜성 주변에서 버티기 어려운 것은 암석 행성뿐만이 아니다. 목성과 같은 덩치 큰 가스 행성들도 위험하다. 특히 주로 가벼운 기체 성분으로 이루어진 가스 행성의 대기권 역시 별의 플레어 공격으로부터 무사하기 어렵다. 서서히 외곽 대기부터 벗겨져 날아가면서 행성 자체의 크기가 작아질 수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지금까지 발견된 외계행성 중 상당수가 중심 별에 지나치게 가까이 붙어 있는 덩치 큰 가스 행성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종류의 행성을 뜨거운 목성형 행성이라고 분류한다. 이런 종류의 행성은 우리 태양계에는 단 하나도 없다. 태양계에서는 덩치 큰 가스 행성은 전부 태양계 외곽에만 존재한다.
태양계 너머 외계행성을 발견하면서 뜨거운 목성형 행성의 존재는 아직까지 완벽하게 풀리지 않은 또 다른 미스터리다. 이들은 원래 별에서 멀리 벗어난 외곽에서 태어났지만 이후 주변의 다른 행성들과 중력을 주고받으면서 궤도가 변해 별에 가까이 다가왔을 가능성도 있다. 행성의 이주 가능성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오랜 시간 꿋꿋하게 두꺼운 대기를 계속 유지하는 것은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지난해 천문학자들은 제임스 웹 관측을 통해 TRAPPIST-1 주변 가장 안쪽 궤도를 도는 두 행성 b, c에서 대기권의 존재 유무를 확인했다. 행성에서 대기의 존재를 확인하는 가장 전통적인 방법은 행성이 별 앞을 가리고 지나가는 트랜짓을 활용하는 것이다. 행성이 대기로 덮여 있다면 행성이 별 앞을 가리고 지나갈 때, 행성의 대기를 통과한 별빛을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별빛의 일부는 대기 성분에 흡수된다. 행성 대기를 통과하지 않은 별빛의 스펙트럼과 비교하면 대기에 어떤 성분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행성 대기가 너무 얇다면 이 방법도 활용하기 어렵다. 별빛이 얇은 대기권을 통과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은 허블에 비해 훨씬 민감하다. 덕분에 천문학자들은 지난 관측에서 조금 특별한 다른 방법을 활용했다. 단순히 행성이 별 앞을 가리고 지나가는 순간뿐 아니라, 반 바퀴를 돌아 행성이 건너편으로 넘어가서 행성 표면에 별빛이 반사되는 순간의 모습도 관측한 것이다. 만약 행성에 얇은 대기권이 있다면 대기가 골고루 순환하면서 행성의 일교차는 줄어든다. 별을 등지고 있는 행성의 밤 쪽 온도와 별을 마주보는 행성의 낮 쪽 온도의 차이가 크지 않다. 반면 대기가 아예 없다면 행성의 일교차는 더 극심해진다. 아쉽게도 지난 제임스 웹 관측을 보면 TRAPPIST-1 b, c 두 행성은 극단적인 일교차를 보여주었다. 이 두 행성에는 얇은 대기권조차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진짜 주인공은 따로 있다. 애초에 이 두 행성은 중심 별을 도는 궤도가 너무 작아서 온도 자체가 너무 높다.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d, e, f, g 네 행성은 생명 거주 가능 구역에 들어오는 궤도를 그린다.
최근 천문학자들은 TRAPPIST-1e 행성에 대해 다양한 환경을 가정하고 분석을 진행했다. 이곳은 지구와 같은 암석 행성이다. 마찬가지로 소행성 충돌을 겪으면서 반죽된 직후 액체 용암이 들끓고 있었을 것이다. 용암이 굳어가는 과정에서 중심 별에서는 지속적으로 자외선과 가시광선, 적외선 등 다양한 형태로 별빛을 받게 된다. 이러한 지질학적 환경과 별빛의 복합적인 영향은 행성 대기권의 양과 화학 조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천문학자들은 이런 다양한 조건을 가정하고 행성 표면의 온도와 대기압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지를 모델링했다.
우선 TRAPPIST-1e가 처음에 현재 지구의 대기권과 비슷한 대기를 갖고 있었다고 가정하면 행성이 형성되고 나서 수억 년이 지난 이후에도 행성은 계속해서 대기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온다. 표면의 액체 용암이 모두 굳어서 고체 표면이 형성된 이후, 대기의 주 성분은 이산화탄소로 구성된다. 일부 산소와 물 분자도 남아 있다. 대기를 계속 머금고 있기 때문에 온실 효과가 일어나고 행성의 표면은 계속 따뜻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다. 이 행성의 대기 조성이 처음부터 지구와 비슷했다면 중심의 적색왜성으로부터 플레어 위협을 받더라도 여전히 대기권을 유지할 수 있다.
TRAPPIST-1e가 지구와는 다른 천왕성, 해왕성처럼 아주 두꺼운 수소로 이루어진 대기를 가졌을 가능성도 있다. 흥미롭게도 이 경우에는 액체 용암으로 들끓던 표면이 딱딱한 암석으로 굳기까지 시간이 더 오랜 걸린다. 행성이 고체 표면으로 굳어가는 과정에서 더 많은 양의 수소가 우주 공간으로 날아가고, 비교적 더 무거운 분자인 물과 이산화탄소, 산소가 남아 행성 대기의 주요 성분을 이룬다. 이 모델에 따르면 행성은 충분히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좋은 대기 조성을 유지하고, 행성 표면 온도도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수준으로 내려온다. 아주 고무적인 결과다. TRAPPIST-1e가 처음부터 지구와 대기 조성이 비슷하지 않고 천왕성, 해왕성처럼 두꺼운 수소 대기로 시작했더라도 지질학적 과정과 중심 별의 방사선의 복합적인 영향을 받으면서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반면 중심 별에 훨씬 바짝 붙어 있는 TRAPPIST-1b의 경우는 결과가 암울하다. 똑같이 처음에 두꺼운 수소 대기를 갖고 있었다고 가정하면 중심 별에서 쏟아지는 너무 강렬한 항성풍과 방사선으로 인해 대기권 대부분이 우주 공간으로 날아간다. 아주 얇고 희박한 산소 대기권만 남는다. 다른 성분이 거의 없이 사실상 산소만으로 이루어진 아주 얇은 대기권이어서 생명체가 버티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결국 별에 가까이 붙어 있는 TRAPPIST-1b 행성은 그 어떤 시나리오로도 생명체를 기대할 대기권이 만들어지기 어려웠다.
그에 비해 TRAPPIST-1e는 훨씬 희망적이다. 대기 조성이 처음에 지구와 비슷했든, 천왕성 해왕성과 비슷했든 상관없이 지금도 충분히 생명체를 기대할 만한 조건이 될 가능성이 있다.
사실 TRAPPIST-1e는 이미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으로 관측을 했다. 그런데 TRAPPIST-1e에서 대기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관측할 당시 하필이면 중심 별이 난폭한 플레어를 일으켰다. 눈부신 플레어가 갑작스럽게 행성의 빛을 덮어버려 플레어의 빛과 행성 표면에 반사된 별빛을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일부 천문학자들은 TRAPPIST-1e의 분석 결과보다는 TRAPPIST-1d나 f 행성의 분석 결과가 먼저 발표될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한다.
TRAPPIST-1은 주변에서 한꺼번에 행성이 일곱 개나 발견됐고, 그 중에서 무려 네 개나 생명 거주 가능 구역에 있기 때문에 오랫동안 기대를 받아왔다. 그런 곳에서조차 생명체의 징후가 단 하나도 확인되지 않는다면 아주 김빠지는 일일 것이다.
외계행성이 별 앞을 가리고 지나갈 때뿐 아니라 반대편 궤도로 넘어가 행성 표면에 별빛이 반사되는 순간을 관측해서 대기의 존재와 화학 조성을 파악하는 것은 이번에 처음 시도한 새로운 관측 방식이다. 그동안 TRAPPIST-1 주변 행성들을 관측한 것도 사실 겨우 한두 번의 관측 시도로 얻은 적은 데이터만으로 이루어진 결과일 뿐이다. 결국 더 정밀하고 확실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긴 시간 반복해서 TRAPPIST-1 주변 행성들을 관측하는 것뿐이다.
TRAPPIST-1은 매력적인 관측 대상이지만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이 이 외계행성계 하나만을 보기 위해 존재하는 도구는 아니다. 태양계 천체부터 수많은 별과 은하까지, 너무나 많은 관측 일정이 밀려 있다. 바쁜 스케줄 속에서 TRAPPIST-1 행성들을 다시 얼마나 겨냥할 수 있을지에 따라 우리의 기대와 결론이 달라질 것이다.
참고
https://academic.oup.com/mnras/article/531/1/468/7659831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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