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전기차 보급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서 산업계의 질문은 단순한 수량 확대를 넘어 에너지 시스템 안에서의 역할 변화로 옮겨가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에 저장된 전력을 전력망으로 다시 보내는 V2G(Vehicle to Grid) 기술은 전기차를 ‘달리는 배터리’이자 분산형 에너지 자원으로 재정의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 등 주요 기관은 전기차를 향후 전력망 유연성을 강화할 핵심 수단으로 평가한다. 전력 수급 불균형을 완화하고,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보완할 대안으로 주목하는 것. 최근 글로벌 완성차 기업이 관련 서비스를 도입한 데 이어 국내 지자체의 실증 사업도 진행되면서 기술 상용화를 위한 검토가 본격화되는 추세다.
#GM에너지, 가정용 리스 프로그램 도입 추진
미국 제너럴 모터스(GM)는 자회사 GM에너지를 통해 전기차 전력을 가정용 비상 전원으로 활용하는 V2H(Vehicle to Home) 기술 보급에 속도를 내고 있다. V2H는 V2G 기술의 일종이다. GM은 2025년 미국 시장에서 양방향 충전 기능을 탑재한 차량을 24만 6000대 판매하며 하드웨어 기반을 확보했다. 현재 V2H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양방향 충전기와 인버터 등 하드웨어 비용만 8000달러 이상 소요되며, 설치비까지 포함하면 초기 비용 부담이 크다.
GM에너지는 19일 이러한 비용 장벽을 낮추기 위해 에너지 관리 시스템과 가정용 배터리를 차량 리스처럼 매달 나누어 지불하는 리스 프로그램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소비자가 수천 달러의 초기 부담 없이 전기차를 활용해 가정 내 에너지 비용을 관리하고, 전력망 마비나 자연재해 상황에서 비상 전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돕는 전략이다.
#전기차, 전력망 지탱하는 분산에너지 자원으로 부상
V2G는 전용 양방향 충전기를 통해 전기차 배터리의 전력을 전력망으로 공급해 전기차를 일종의 에너지 저장장치(ESS)로 활용하는 기술이다. 전기차에 탑재된 배터리는 평균 60~80kWh 수준으로 가정용 ESS에 준하는 용량을 갖춘 만큼 보급 대수가 늘어날수록 집합적 에너지 자산으로서 가치가 커진다. 전력 수요가 적고 가격이 저렴한 시간대에 충전한 뒤 수요가 급증하는 피크 타임에 방전함으로써 전력망의 안정화를 돕는 것이 핵심이다.
특히 태양광이나 풍력발전처럼 기상 조건에 따라 생산량이 불규칙한 재생에너지는 전기차가 남는 전력을 흡수했다가 필요할 때 다시 공급함으로써 에너지 활용도와 경제성을 동시에 높일 수 있다. 이러한 기술적 가능성은 이미 해외에서 검증받고 있다. 일본에서는 닛산 리프를 활용해 재난 상황에서의 비상 전원 활용 능력을 확인했으며, 독일에서는 BMW와 유틸리티 기업들이 협력해 배터리 수명 영향을 최소화하는 제어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영국 역시 스마트 충전 제어를 통해 피크 시간대 수요를 최대 79%까지 줄이는 성과를 거두며 시장 메커니즘을 시험 중이다.
신외경 한국자동차연구원 모빌리티충전산업융합얼라이언스추진단장은 “V2G가 전기차 이용자에게 인센티브로 작용하게 된다면 전기차와 충전기 시장이 더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재생에너지 비중이 전국 최고 수준인 제주도를 중심으로 V2G 실증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제주는 풍력과 태양광 발전의 과잉 생산으로 인한 출력제한 문제가 빈번해, 전기차를 에너지 자원으로 활용해 전력 계통을 안정화하는 데 주목하고 있다.
제주도청 관계자는 “제주도는 재생에너지 비중이 타 지자체의 두 배 정도인 20%”라며 “분산에너지특화지역 지정 후 전력 공급과 수요가 일치하지 않는 부분의 해결책으로 V2G를 실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쏘카는 지난해 12월 제주 터미널에 양방향 충전기를 설치하고 렌터카 서비스에 V2G를 접목한 실증 사업에 본격 착수했다. 이는 렌터카를 이동 수단을 넘어 분산형 에너지 자원으로 활용하는 국내 최초의 시도로 평가받는다.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산업용 충전시설에서의 방전 제한을 풀고 렌터카의 전력 시장 참여를 허용함으로써 새로운 에너지 비즈니스 모델의 물꼬를 텄다. 쏘카는 향후 양방향 충전기를 최대 200기까지 확대하여 제주 지역의 에너지 허브를 구축할 계획이다.
현대자동차그룹 역시 제주도와 ‘그린수소 및 분산에너지 생태계 조성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V2G 시범 서비스를 개시했다. 아이오닉 9과 EV9 고객을 대상으로 총 55대 규모의 시범 서비스를 운영하며, 참여 고객에게 양방향 충전기 설치와 충전 요금 지원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실증 데이터를 바탕으로 기술 및 사업성을 검증한 뒤, 향후 관련 제도가 마련되는 대로 타 지역으로 서비스를 순차 확대할 방침이다.
#상용화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는?
기술의 잠재력에도 상용화까지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반복적인 충·방전 환경에서 배터리가 안정적으로 작동하는지, 양방향 전력 흐름에서 안전성과 제어 신뢰성이 유지되는지가 핵심적인 기술 평가 요소다. 특히 배터리 수명 저하에 대한 사용자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데이터 기반의 정교한 관리 시스템과 보증 체계가 뒷받침돼야 한다.
제도적으로는 전기차를 분산에너지 자원으로 인정하는 법적 근거가 마련돼야 하고, 전력 거래를 할 시장 구조 설계가 필요하다. 전력망과의 통신 보안을 확보하고, 사용자가 기꺼이 자신의 자산을 전력망에 제공하도록 유도하는 합리적인 정산 및 보상 체계 설계도 필수적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난해 12월 민관 협의체를 출범시켜 V2G에 대한 기술 표준, 계량 방식, 보상 체계 등 상용화를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 수립에 나섰다. 협의체는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주관하는 운영위원회와 실무 분과로 구성된다. 운영위원회는 기후에너지환경부와 전력기관, 산업계·학계 대표 등이 참여해 정책 방향을 논의한다. 실무 분과에서는 △기술·표준·인증체계 △계통 연계 및 계량방식 △배터리 안전·수명 관리 기준 등 기술 분야와, △정산·보상 방식 및 전기사업법 등 관련 법령 개선 △보조금·인센티브 체계 △사업구조 설계 등 제도·시장 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V2G 사업의 다음 단계는 기술 신뢰성을 바탕으로 국가 에너지 시스템에 얼마나 녹아들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전기차의 미래 가치는 도로 위에서의 이동을 넘어 에너지 전환의 핵심 거점으로서 확대될 전망이다.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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