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국내 석유화학산업이 글로벌 공급과잉과 수익성 악화라는 거센 파고를 넘기 위해 본격적인 구조개편의 닻을 올렸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3일 HD현대오일뱅크·HD현대케미칼·롯데케미칼이 공동으로 제출한 사업재편계획서를 최종 승인했다. 이는 지난해 8월 정부가 발표한 ‘석유화학산업 구조개편 로드맵’에 따른 첫 승인 사례다. 위기에 직면한 우리 화학산업이 범용 제품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고부가·친환경 중심으로 체질을 개선하는 신호탄이 될지 주목된다.
#양 사 지분 5대5…110만 톤 나프타분해시설 가동 중단
이번 사업재편의 핵심은 충남 대산 석유화학단지에 있는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 자산을 통합해 운영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데 있다. 구체적인 계획에 따르면 롯데케미칼은 대산 사업장을 물적 분할한 뒤 이를 HD현대케미칼과 합병한다. 이 과정에서 신설 통합법인의 재무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주주사인 HD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 본사가 각각 6000억 원씩, 총 1조 2000억 원 규모의 대규모 증자에 나선다. 이 같은 자구 노력을 통해 기존 6 대 4였던 HD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 지분 구조는 5 대 5로 조정된다.
사업 구조 측면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과잉 공급 설비 정리다. 통합법인은 사업재편 기간인 향후 3년 동안 연간 110만 t 규모 에틸렌을 생산하던 롯데케미칼 NCC(나프타 분해 시설) 설비 가동을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아울러 수익성이 낮은 범용 다운스트림 설비 중 중복되거나 적자가 발생하는 설비 가동도 축소한다. 대신 효율성이 높은 잔여 설비 가동률을 80%에서 100%로 끌어올려 생산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정유 공정과의 수직계열화로 원료 수급 안정성과 원가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정부, 금융·세제·원가 아우른 2조 1000억 패키지 지원
정부는 민간의 이러한 결단에 화답해 금융, 세제, 원가 개선, 기술 개발을 아우르는 2조 1000억 원 이상의 대규모 ‘맞춤형 지원 패키지’를 마련했다. 우선 금융 부문에서는 경영 여건 악화로 투자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을 위해 최대 2조 원 규모를 지원한다. 산업은행 등 채권 금융기관은 설비 통합 및 고부가 전환에 필요한 신규 자금 1조 원을 지원하는 한편, 설비 가동 중단에 따른 자산 손상 처리로 급증할 수 있는 부채비율을 관리하기 위해 기존 대출금 중 최대 1조 원을 영구채로 전환한다.
세제 혜택도 제공한다. 기업 분할 및 합병 등 구조변경 과정에서 발생하는 취득세와 등록면허세 부담을 75~100% 감면하고, 자산 매각 시 발생하는 법인세는 5년 거치 5년 분할 납부가 가능하도록 과세이연 혜택을 확대했다. 또한 투자·상생협력 촉진세제 납부 부담을 경감해 기업이 재투자 여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했다.
글로벌 경쟁력을 좌우하는 원가 구조 개선을 위해 유틸리티 비용 절감 카드도 꺼냈다. 대산 석화단지를 분산에너지특구로 지정해 한국전력 대비 약 4~5% 저렴한 전기요금을 적용받게 하고, 열(스팀) 공급 구역 중복금지 규정을 한시적으로 완화해 저렴한 열원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길을 열어줬다. 나아가 올해까지 수입 나프타와 원유에 무관세를 적용하고 할당관세 적용 범위를 확대한다. 이를 통해 원재료 비중이 높은 석유화학산업의 비용 부담이 연간 690억~1150억 원 이상 덜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사업재편의 궁극적인 목표는 단순한 설비 감축을 넘어 ‘고부가·친환경’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전환하는 것이다. 통합법인은 에틸렌 등 범용 제품 생산에서 벗어나 전선과 케이블에 사용되는 고탄성 경량 소재, 2차전지 전해액용 유기용매 등 스페셜티 제품 생산에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또 바이오 나프타를 활용한 친환경 제품 생산과 탄소 배출량이 낮은 에탄 원료 도입으로 글로벌 환경 규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한다. 정부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올해 260억 원 규모 고부가 기술 개발 지원을 시작으로 중장기적으로 AI 기반 소재 설계 및 온실가스 감축 공정 혁신 등 대규모 R&D 사업을 추진한다.
사업재편에 따른 지역 경제 위축과 고용 불안 우려 대책도 포함됐다. 정부는 고용유지지원금의 매출액 감소 요건을 완화해 유휴 인력의 고용이 유지되도록 지원하고, 서산 등 고용위기 및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에 대한 지원 기간을 연장하거나 관련 예산을 확대해 지역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방침이다.
#산업부 장관, CEO 간담회 개최 “후속 프로젝트 가속화”
산업부는 이번 대산 1호 프로젝트 승인을 기점으로 여수, 울산 등 주요 산단의 후속 프로젝트도 빠르게 추진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민관협의체를 가동해 기업 애로사항을 실시간으로 수렴하고, 기업결합 심사 기간 단축 및 인허가 승계 간소화 등을 담은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강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을 조속히 제정해 제도적 기반을 공고히 하겠다고 밝혔다.
지원 패키지를 발표한 2월 25일 오후,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서울 서초구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서 승인 기업 CEO들과 간담회를 했다. 김 장관은 모두발언에서 “대산 1호 프로젝트는 정부와 업계가 긴밀히 협력해 도출한 첫 번째 성과”라고 평가하며 “앞으로 승인된 계획이 현장에서 차질 없이 이행되어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도록 정부가 든든한 순풍이 되겠다”고 의지를 보였다. 또 사업재편 과정에서 협력업체와 지역 사회가 함께 성장하도록 상생 노력을 기울여줄 것을 당부했다.
이에 조남수 HD현대케미칼 대표는 “(지원 패키지에 대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생각한다”며 “정부를 실망시키지 않는 모범적인 사례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민호 기자
goldmino@bizhankook.com[핫클릭]
·
[단독] '강남 핵심입지 확보' 종근당, 삼성동 봉은사역 인접 토지 500억에 매입
·
[단독] 한국형 지속가능성 공시 기준 확정 "스코프3 포함하되 3년 유예"
·
원자로, 전기 넘어 '열'까지 공급…중국 '고온가스로' 상용 본격화
·
HD현대오일뱅크 폐수 배출 과징금 절반이나 깎인 까닭
·
'지분 반반' 여천NCC 부도 위기에 한화·DL 갈등 깊어가네





















![[단독] SH, 한강버스 대여금 876억 '상환 선순위'까지 내줬다](/images/common/side01.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