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소식이 들린 이후,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애도를 보내고 있다. ‘가난한 자들의 성자’라고 불리던 교황의 삶에 울림을 받는 사람도 많다. 나와는 상관없는 종교라 할지라도, 10억 명이 넘는 신자를 거느린 한 종교의 수장이 존경받을 만한 지도자였다는 건 분명 아름다운 일. 한편으로는 이토록 많은 존경과 사랑을 받은 수장의 뒤를 이을 후임자의 중압감도 어마어마하리란 생각도 든다. 그래서 찾아봤다.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애도를 보내고, 새로운 교황을 기대하며 보면 좋을 영화들.

후임 교황은 전 세계 만 80세 미만의 추기경들이 참석하는 비밀회의 콘클라베(Conclave)를 통해 선출된다. 추기경들은 인터넷은 물론이고 전화와 신문 등도 차단된 채 외부와 철저히 격리되어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서 3분의 2 이상의 표를 받는 이가 나올 때까지 무제한 투표를 연다. 공교롭게도 이런 비밀스러운 절차를 세세히 다룬 영화가 지난 달 5일 개봉했다. 올해 아카데미 각색상을 수상하기도 한 랠프 파인즈 주연의 ‘콘클라베’. 4월 22일 기준 27만 관객을 모았는데,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과 차기 교황 선출을 기다리는 이 시점에 다시 재조명되는 낌새다. 영화는 유력 교황 후보들이 연이어 스캔들에 휘말리는 등 음모와 배신이 이어지는 스릴러의 성향을 띠고 있어 흥미진진하게 관람할 수 있다. 연출과 영상미도 빼어나 이슈를 벗어나 영화 자체로 즐길 만하다.

OTT에서도 교황과 관련된 영화를 만날 수 있다. ‘아들의 방’으로 유명한 난니 모레티 감독의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2011)와 앤서니 홉킨스와 조너선 프라이스가 주연을 맡은 ‘두 교황’(2019). 먼저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는 새로운 교황 선출 소식을 알리며 수석 추기경이 군중에게 라틴어로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Habemus Papam)’고 외치는 선언을 제목으로 삼았다. 영화는 ‘콘클라베’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진지한 내용이지만 시종일관 코믹한 분위기가 넘실거린다. 콘클라베에서 투표하는 추기경들이 속으로 기도를 올리는데, 온통 ‘주여, 제발 저는 뽑히지 않게 해주세요’ 일색인 모습부터 웃게 만든다. 실제로 교황이란 지극히 무거운 봉사자의 자리인 데다 업무가 과중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 이전의 베네딕토 16세 또한 “교황으로 선출됐을 당시 단두대 도끼날이 내 목에 떨어진 것 같았다”고 말한 적 있다고 하니 오죽하겠나.

영화는 교황으로 선출된 멜빌(미셸 피콜리)이 선포 직전 외마디 절규와 함께 자리를 박차고 떠나는 모습, 교황이 정신분석을 받으러 비밀리에 외부로 나갔다가 줄행랑을 치는 모습, 도망친 교황의 부재를 숨기고자 교황의 침실에서 경비병이 대리 행세를 하게 만드는 모습 등 곳곳에 키득키득 웃게 만드는 장면이 가득하다. 그러나 웃으면 웃을수록 우리의 주인공인 교황, 멜빌은 심각하다. 그리고 보는 이들 또한 도망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웃지만 역설적으로 교황이란 자리가 얼마나 무거운 십자가인가 새삼 깨닫게 된다. 연극배우가 꿈이었던 어릴 적을 기억해내고 체호프의 대본을 줄줄 읊는 그의 모습이 얼마나 행복해 보이는지. ‘아무도 교황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발칙하고도 대담한, 그러면서도 인간적인 상상이 돋보여 즐겁게 관람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웃음 코드는 선뜻 교황 업무에 나서지 못하는 멜빌을 위해 차출된 정신분석학자로 출연한 감독 난니 모레티의 열연. 외부로 도망친 교황과 반대로 보안 문제로 인해 내부에 갇힌 그는 지루해하는 추기경들을 다독이며 카드게임을 벌이고, 세심한 안배로 팀을 짜 배구 토너먼트 경기를 주도하는 등 깨알같이 웃음 포인트를 올린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두 교황’은 자진 퇴위로 세계를 놀라게 한 베네딕토 16세와 그 뒤를 이은 교황 프란치스코의 관계를 담은 실화 바탕의 영화로 유명하다. 앤서니 홉킨스가 가톨릭의 전통을 지키려는 보수 성향의 베네딕토 16세로, 외모 싱크로율이 놀라운 조너선 프라이스가 그와는 대척되는 진보 성향의 프란치스코 교황을 맡아 문자 그대로 명연기로 영화를 책임진다. 연출은 ‘시티 오브 갓’ ‘눈먼 자들의 도시’의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이 맡았는데, 영화의 대부분이 두 인물의 대화와 논쟁임에도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섬세하게 표현한 점이 눈에 띈다.

교황청의 비리 문제와 사제 성추문 스캔들 등 베네딕토 16세가 사임한 배경을 깔아 자칫 예민할 듯 싶지만,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저잣거리 스캔들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종교계의 개혁 문제로 국한해서 보기도 어렵다. 영화 속에서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타협’과 ‘변화’에 대한 관점, 결코 완벽할 수 없는 인간의 잘못과 실수, 그럼에도 나아가야 한다는 깨달음 등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몰입할 수 있는 이야기로 채워져 있기 때문. 두 사람의 관계는 지키려는 자와 바꾸려는 자로 대립적인 위치로 보이지만, 결국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이야기로 귀결되기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시종일관 무거운 분위기로 오해하면 곤란하다. 진중한 이야기임에도 두 사람의 인간적인 면모를 담아내기에 곳곳에 가벼운 터치의 웃음이 터져 나온다. 길거리에서 사온 피자를 앞에 두고 기도를 올리는 모습이나 아르헨티나(프란치스코 교황의 고향)와 독일(베네딕토 16세의 고향)식 유머를 애써 설명하는 웃픈 모습, 영화 말미 월드컵 결승에서 마주한 독일-아르헨티나의 경기를 함께 보는 두 교황의 모습은 발군.
‘콘클라베’는 현재 일부 영화관에서 장기 상영 중이며, ‘두 교황’은 넷플릭스에 있다. ‘우리에겐 교황이 없다’는 티빙과 웨이브, 왓챠에서 정액제로 시청 가능하다. 영화의 메시지와 만듦새뿐 아니라 주연 배우들의 빼어난 연기로도 충분한 만족을 줄 것을 장담한다.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 [정수진의 계정공유]
'대환장 기안장' 기안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넷플릭스의 돈으로…
· [정수진의 계정공유]
'자강두천' 천재 외과의사들의 날카롭고 잔혹한 대립, '하이퍼나이프'
· [정수진의 계정공유]
세상 모든 엄마·아빠에게 보내는 헌사 '폭싹 속았수다'
· [정수진의 계정공유]
'제로 데이' 미국이나 한국이나 현실은 엉망진창
· [정수진의 계정공유]
'마녀', 대혐오 시대에 꽃피는 특별한 사랑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