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태양계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영원한 떡밥, 바로 아홉 번째 행성 ‘플래닛 X’다. 오랫동안 태양계 마지막 아홉 번째 행성으로 불리던 명왕성이 결국 2006년 투표를 통해 퇴출되면서 태양계 행성은 여덟 개로 줄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지금까지 천문학자들은 끈질기게 또 다른 아홉 번째 행성의 존재 가능성을 고민한다. 특히 명왕성처럼 애매한 천체가 아니라 정말 누가 봐도 새로운 행성이라고 인정할 만한 커다란 행성이 태양계 끝자락 어둠 속에 아직 숨어 있을지 모른다는 가능성이 거론된다. 플래닛 X를 두고 벌어지는 천문학자들의 논쟁은 마치 누가 태양에서 가장 먼 곳에 깃발을 꽂을 건지를 두고 벌이는 치열한 레이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플래닛 X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들리는 이유는 바로 명왕성의 퇴출 과정을 이야기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인물, 마이크 브라운 때문일 것이다. 일찍이 그는 대다수의 천문학자들이 태양계에서 더 이상 찾을 만한 큼직한 천체는 더 없을거라고 생각하던 시절부터 홀로 새로운 행성 사냥에 나섰다. 결국 태양계 외곽에서 명왕성과 비슷하거나 심지어 살짝 더 커보이는 수많은 천체들을 발견해버렸고 명왕성의 지위를 위태롭게 만든 장본인, 일명 플루토 킬러가 되었다.
그런데 2016년부터 브라운은 새로운 주장으로 학계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 명왕성 너머 또 다른 진정한 아홉 번째 행성 ‘플래닛 나인(플래닛 X)’가 정말 숨어 있을 거라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당시 태양계 외곽, 해왕성 궤도 안팎을 아주 크게 찌그러진 타원 궤도를 그리며 넘나드는 TNO(Trans Neptunian Objects)들의 궤도를 근거로 들었다.
흥미롭게도 TNO들의 타원 궤도는 태양을 중심으로 유독 한쪽 방향으로만 쏠려서 분포했다. 궤도가 쏠려 있지 않은 정반대편에 무언가를 숨기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단순한 우연으로 TNO들이 이런 독특한 분포로 궤도를 그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브라운은 이것이 바로 반대편에 지구의 5~10배 정도로 무거운 또 다른 가스 행성이 숨어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당초 브라운은 플래닛 X가 지구 공전 궤도면에 대해 대략 15~20도 정도 크게 기울어진 타원 궤도를 그릴 거라 추정했다. 이런 새로운 근거가 쌓여가면서 다시 천문학계에서는 플래닛 X를 찾기 위한 사냥 붐이 불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근 이 플래닛 X의 존재 가능성에 대해 아주 극단적으로 다른 결말을 가리키는 흥미로운 두 가지 결과가 발표되었다. 한 논문에서는 무려 20년 넘는 간격으로 진행된 관측 데이터를 분석한 끝에 그토록 찾아 헤맸던 플래닛 X의 가장 유력한 후보를 13개 정도 찾아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또 다른 논문은 그동안 플래닛 X의 가장 강력한 근거로 이야기된 한쪽으로 쏠린 TNO의 궤도 분포가 이제 더 이상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반박한다. 정말 극과 극, 정반대 주장을 하는 논문 두 가지가 대립하고 있다. 한쪽은 플래닛 X 후보를 드디어 찾아냈다고 이야기하지만 또 다른 한쪽에서는 애초에 플래닛 X 같은 건 없었다고 주장한다. 과연 태양계에 아홉 번째 행성이 존재하고 있는걸까?
우선 플래닛 X의 후보 천체를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첫 번째 논문부터 살펴보자. 플래닛 X가 설령 있더라도 그 존재를 실제 관측으로 확인하는 건 매우 어려울 것이다. 일단 예상되는 궤도가 너무 멀다. 평균적으로 태양으로부터 명왕성보다 세 배 이상 더 먼 거리에 떨어져 있을 것이라 추정한다. 이 정도 먼 거리라면 행성에 닿는 태양 빛도 아주 약하고, 또 행성 표면에 반사된 빛도 지구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궤도가 큰 만큼 움직이는 속도도 매우 느리다. 밤하늘에서 움직임이 거의 티가 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또 다른 행성이 태양계 외곽을 떠돌고 있다는 걸 확인하려면 매일 같은 방향의 밤하늘을 촬영하면서, 배경 별들 사이로 무언가 천천히 움직이는 게 있는지를 찾아야 한다. 그런데 궤도 한 바퀴를 도는 데 거의 1000년 가까운 긴 주기가 걸린다면 아무리 매일 밤하늘을 보더라도 정말 뭔가 움직이기는 하는지 알아채기 어렵다. TNO들의 궤도 분포를 통해 역으로 추정한 플래닛 X의 궤도 모델에 따르면, 만약 정말 플래닛 X가 숨어 있을 경우 그 천체가 지구의 밤하늘에서 움직이는 속도는 1년에 겨우 0.05도 정도의 미세한 각도를 흘러가는 수준이다. 이 정도 미세한 차이는 겨우 며칠, 몇 개월 관측만으로는 알아채기 어렵다.

플래닛 X를 찾기 위해서는 가시광선보다는 적외선 관측이 그나마 유리하다. 애초에 태양에서 아주 멀리 있을 것이기 때문에 플래닛 X는 태양 빛을 충분히 받지 못해 온도가 매우 낮을 것이다. 거리가 멀어질 수록 가시광선은 매우 빠르게 어두워지지만 적외선은 더 먼 거리에서까지 볼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그래서 이번 논문에서 천문학자들은 플래닛 X의 후보 천체를 찾기 위해 적외선 우주 망원경의 관측 데이터를 뒤졌다. 하나는 1983년에 이루어진 IRAS 위성의 관측 데이터,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그로부터 23년이 지난 2006년-2007년 사이에 진행된 AKARI 우주 망원경의 관측 데이터다.
천문학자들은 23년이라는 긴 기간을 두고 동일한 방향의 하늘을 찍은 사진을 비교해 그 사이 움직인 천체가 있는지를 살폈다. 23년이면 충분한 간격이다. 플래닛 X의 예상되는 궤도 속도를 고려했을 때, 23년 정도면 밤하늘에서 약 1도 이동했을 수 있다. 이 정도 차이면 두 장의 사진을 비교했을 때 확연하게 티가 난다. 천문학자들은 그 사이 위치가 달라진 천체를 13개 찾아냈다. 모두 평균적으로 23년 사이에 밤하늘을 가로질러 약 0.78도 위치가 달라졌다. 하나하나 눈으로 다시 확인한 끝에 가장 유력한 플래닛 X의 후보를 골라냈다. 이 단 하나의 후보는 23년 간격을 두고 촬영된 두 장의 사진 속에서 크기와 색깔, 밝기가 거의 같았다. 동일한 천체가 단지 위치만 이동한 것으로 의심된다.

그렇다면 드디어 그토록 찾던 플래닛 X가 확인된 걸까? 장담하기는 어렵다. 이번 분석에서 사용한 단 두 번의 순간 포착 데이터만으로는 실제 이 천체가 그리는 전체 궤도를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앞으로 연이어 추가 관측을 통해 실제로 이 천체가 어떤 방향으로,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추적해야만 전체 궤도를 파악할 수 있다. 또 이 천체의 표면이 어떤 물질로 이루어져 있는가에 대한 추가 분석도 필요하다. 표면이 태양 빛을 더 잘 반사하는 얼음과 같은 성분으로 이루어졌다면 크기가 작더라도 충분히 더 밝게 관측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천체의 크기 추정치에 따라 천체의 질량, 궤도 모두 달라질 수 있다.
이번 분석은 이제 인류가 꽤나 긴 세월에 걸쳐 우주 전역을 오랫동안 꾸준히 관측해온 덕분에 가능했다. 지난 20년 넘는 긴 세월 동안 꾸준히 밤하늘 구석구석을 촬영해온 덕분에 이제 우리는 그 사이 쌓여 있는 데이터를 다시 뒤져보면서 혹시 우리가 놓쳤던 것은 없는지 확인할 수 있는 시대를 살게 되었다.
하지만 전혀 반대편에서 새로운 주장도 발표되었다. 애초에 플래닛 X의 가장 확실한 근거로 이야기된 TNO의 궤도가 한쪽으로 쏠려 있지 않을 수 있다는 주장이 새로운 근거와 함께 제시됐다. 최근 천문학자들은 캐나다-프랑스-하와이 망원경을 비롯한 다양한 망원경 관측을 통해 밤하늘을 천천히 떠도는 새로운 TNO 천체를 하나 더 발견했다. 2017년 7월 23일을 시작으로 망원경에 새로운 작은 점 하나가 포착되기 시작했고, 이후 7년에 걸친 꾸준한 관측을 통해 총 19번의 사진에서 동일한 천체의 모습을 포착하는 데 성공했다. 무언가 작은 점 하나가 배경 별들 사이를 천천히 가로질러 움직였다.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천문학자들은 태양계 끝자락 해왕성 궤도 안팎을 떠도는 또다른 TNO 천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천체는 현재 2017 OF201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이 천체는 지금까지 알려진 다른 TNO들과 마찬가지로 태양을 중심으로 아주 크게 찌그러진 타원 궤도를 그린다. 태양에서 가장 멀리 벗어날 때는 태양-지구 사이 거리의 무려 1600배나 되는 아주 먼 거리까지 벗어난다. 반면 태양에 가장 근접할 때는 훨씬 짧은 40AU 수준까지 접근하는데, 이는 태양-명왕성 평균 거리와 비슷하다. 길게 찌그러진 타원 궤도를 한 바퀴 도는 데만 약 2만 5000년이 걸린다.
현재 추정하는 이 천체의 크기는 겨우 700km 수준이다. 지구는커녕 달과 명왕성에 비해서도 훨씬 작은 소행성 수준이다. 화성과 목성 사이 소행성대에서 가장 큰 소행성 세레스의 지름이 약 900km다. 따라서 이 정도 크기면 세레스에 조금 못미치는 꽤나 큰 왜소행성으로 봐줄 만하다.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현재까지 밝혀진 궤도를 거꾸로 따라가면 대략 1930년대 이 천체가 지구에 가장 가까운 거리에 접근했었다는 점이다. 명왕성이 처음 발견된 시기와 비슷한데, 아쉽게도 명왕성에 비해 너무 작다 보니 당시에는 그 모습이 미처 포착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건 2017 OF201가 그리는 타원 궤도가 쏠린 방향이다. 그동안 알려진 다른 TNO와 달리 정반대 방향으로 궤도가 쏠려 있다. 이것은 그동안 TNO들의 비대칭한 궤도 분포를 플래닛 X 존재의 가장 중요한 근거로 주장하던 천문학자들에게 매우 당황스러운 발견이 될 수 있다. 이번에 새로 확인된 2017 OF201의 궤도는 그러한 주장을 단 한 번에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논문에서 천문학자들은 간단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2017 OF201의 존재 자체가 플래닛 X 가설을 부정한다는 결과를 보여준다. 플래닛 X가 있다고 가정하면 지금의 2017 OF201의 궤도는 절대 유지되지 않는다. 마이크 브라운을 비롯해 천문학자들이 추정하는 플래닛 X의 질량과 궤도를 적용한 모델에서 2017 OF201를 추가하면 짧게는 수백만 년, 길어봤자 2억 년 안에 2017 OF201는 플래닛 X에 의한 지속적인 중력적 영향으로 궤도가 극단적으로 찌그러지고 결국 태양의 중력 영향권 바깥으로 튕겨져 날아가야 한다. 2017 OF201가 지금의 궤도를 유지할 수 있는 경우는 단 하나밖에 없다. 플래닛 X가 없는 경우다. 설령 플래닛 X가 어딘가 숨어 있더라도, 적어도 현재까지 알려진 궤도상에는 존재해서는 안된다.
태양계 아홉 번째 행성, 플래닛 X를 기대하던 상황에서 이번 발견은 상당히 충격적일 수 있다. 단 하나의 사례만으로 TNO가 한쪽 방향으로만 쏠린 궤도를 갖지 않을 수 있다는 가장 확실한 반박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명왕성 궤도 너머 아주 먼 거리에 천왕성, 해왕성 수준으로 육중한 또 다른 행성이 숨어 있다면 반드시 그 중력이 외곽 소천체들의 궤도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따라서 2017 OF201가 오랜 세월 안정적으로 궤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건 그동안 막연하게 기대했던 플래닛 X의 존재 가능성에 큰 의문을 남긴다.
물론 희망을 버리기는 이르다. 2017 OF201가 정확히 언제부터 태양계 외곽에 새로운 멤버로 합류했는지는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플래닛 X가 존재하기를 기대하는 편에 서서 약간의 ‘희망 회로’를 돌려보자면 2017 OF201가 상대적으로 최근에 태양계 외곽에서 유입되었거나 또는 최근 태양계 근처를 지나간 다른 인접 천체의 중력 섭동으로 인해 원래의 궤도를 벗어나 지금의 궤도를 갖게 되었을 가능성도 아직은 배제할 수 없다.
이번 주장은 우주를 어디까지 보는지에 따라 우리가 머릿속에 그리는 우주의 모습이 얼마나 극단적으로 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TNO를 충분히 발견하지 못해서 우연히 그들이 비슷한 방향으로 쏠린 궤도를 그린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 반대편에 무언가 육중한 행성이 하나 더 숨어 있는 태양계를 그렸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아직 태양계 전체를 다 샅샅이 살펴보지 못해서 생긴 일종의 관측적 편향(Bias)일 수도 있다. 이처럼 우주는 우리가 어디까지, 얼마나 보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과연 태양계 외곽에는 아직 우리가 찾지 못한, 그리고 당당히 새로운 행성으로 이름을 올릴 수 있는 덩치 큰 플래닛 X가 숨어 있을까? 여러분은 어느 쪽에 베팅을 하고 싶은가? 플래닛 X가 정말 숨어 있고 우리가 결국 그것을 발견하게 되는 쪽에? 아니면 플래닛 X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쪽에?
참고https://ui.adsabs.harvard.edu/abs/2025MPEC....K...47C/abstract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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