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반도체 초호황은 역설적으로 삼성전자 노사에 전례 없는 긴장을 불러왔다. 경쟁사와의 보상 격차에서 비롯한 불만이 임계점을 넘은 사이 세를 불린 과반 노조가 탄생했다. 법적 근로자대표 지위를 확보한 노조는 상위 노조에 기대지 않고 임직원 권익만을 챙기겠다는 실용주의를 내세운다. 역대급 실적 속 보상 원칙에 대한 회의, 실리로 무장한 새로운 노조의 등판. 삼성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 위에서 이번 파업은 어디로 향할까.
50년 넘게 지속된 삼성 ‘무노조 경영’ 원칙의 종식 이후 삼성전자 노동조합이 두 번째 파업에 나선다. 2024년 7월 파업은 사상 첫 총파업이라는 상징성이 있었지만 실제 참여는 5000여 명 규모로 제한적이었다. 노사 간 이익 공유와 공정 보상을 띄운 노조는 “이번엔 다르다”고 말한다. 반도체 슈퍼사이클 국면에서 불거진 이번 갈등은 단순한 노사 갈등을 넘어 ‘누가, 얼마나 가져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시장과 사회에 던졌다.
#‘만년 2등’의 반란과 ‘비교 우위’ 상실이 갈등의 원인
이번 갈등의 발단은 ‘라이벌’ SK하이닉스의 행보에서 시작됐다는 평가다. 지난해 9월 SK하이닉스 노사는 영업이익의 10%를 초과이익분배금(PS) 재원으로 활용하기로 합의하고 기존 기본급 1000%로 묶여 있던 지급 상한선을 전격 폐지했다.
반도체 시장은 글로벌 단위로 인재 확보 총력전이 벌어지는 분야다. 불황기에는 고용 유지 수준으로 주춤했으나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 급증에 따라 2024년 무렵 인재 확보 경쟁이 심화했다. 이 가운데 HBM 시장을 선점한 SK하이닉스가 파격적인 보상안을 내놓자 삼성전자 내부의 비교 심리는 박탈감으로 전환됐다. 메모리 사업부 소속 조합원 A 씨는 “과거에는 ‘그래도 삼성이 최고’라는 자부심으로 버텼지만 기술력과 보상에서 밀렸다는 위기감이 있다”며 “우리 가치가 시장에서 어떻게 평가받느냐의 문제”라고 토로했다.
반도체 호황과 맞물리며 SK하이닉스의 성과급이 최대 7억 원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자 삼성전자 내부에는 이 같은 분위기가 빠르게 확산됐다. 최승호 삼성그룹 초기업노조 삼성전자 지부 위원장은 “조합원들이 노조에 지지를 보내는 가장 주된 동력원은 보상 체계에 대한 불신과 경쟁사 대비 박탈감이다. 성과를 냈는데도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인식이 쌓였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첫 교섭 회의록에도 “성과급 지급 공식을 바꾸지 않으면 올해 성과급이 경쟁사의 8분의 1 수준에 그칠 수 있다”는 노조의 발언이 담겼다.
또 첫 파업 이후에도 회사가 노조를 실질적인 대화 파트너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 갈등의 기초 토대를 이루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4시간 365일 가동되는 반도체 라인에서 3교대로 근무하며 연차조차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희생’을 회사가 비용으로만 치부하고 있다는 것.
협상에서 노조는 영업이익 신기록 경신 시에만 지급하는 ‘기네스 조건’이나 주식 지급안 등 사측이 제시한 안을 거부했다. 최 위원장은 “직급별로 보상을 차등화하겠다는 안은 조합원들을 갈라치기 하려는 의도로 판단했다”며 “마지막 교섭 때는 올해 영업이익을 시장 전망치 300조 원의 3분의 2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200조 원 미만으로 이야기했다. 수치를 낮게 잡아 보상 규모를 축소하려는 명백한 ‘사기 교섭’이다”라고 주장했다.
#내부 격차·협력사 소외·국민 정서 ‘괴리’ 시각도
노사 간 ‘강 대 강’ 대치가 이어지는 가운데 조직 내부와 산업 생태계 전반에서는 미묘한 입장 차가 감지된다.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사업부 간 체감 온도는 엇갈린다. 반도체를 담당하는 DS부문과 비(非)DS 부문 간 수익성과 입지 차이가 커지고 있는 데다 노조 구성 및 요구사항이 DS부문에 집중되면서 공감대를 충분히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시각이다. DX 부문 과장급 직원은 “회사 전체 실적이 반도체 호황에 크게 기대고 있는 만큼 성과 배분 방식에 대한 조정이 필요한 것은 맞다”면서도 “향후 다른 사업군에 대해서는 어떤 전략을 갖고 있는지 설득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외부 시선과의 간극도 무시하기 어렵다. 국내 근로자 중 상위 소득군에 속하는 삼성전자 직원들의 파업을 바라보는 일반 직장인들의 반응은 마냥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중견기업에서 재직 중인 직장인 B 씨는 “성과에 따른 보상 요구가 이해는 되지만 국내 핵심 대기업인 삼성전자에, 그 중추인 반도체 라인이나 가능한 행보 아니겠냐”며 “그 결과가 1년에 수억 원 수준의 성과급이라면 일반 연봉을 받는 직장인들에게 공감을 얻기는 쉽지 않을 거 같다”고 말했다.
다만 이를 단순히 이기주의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반론도 존재한다. 국내 20대 대기업 소속 30대 직원 박 아무개 씨는 “상위 기업에서 보상 수준이 올라가야 산업 전반의 임금 기준도 함께 상승하는 측면이 있다”며 “단순히 ‘과도한 요구’로만 볼 문제는 아니다”라고 했다.
반도체 생태계 하부 구조 역시 이번 파업의 영향권에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망에는 1차 협력사 1000여 개, 2·3차 포함 시 1700개 이상의 기업이 연결돼 있다. 삼성전자 협력회사 관계자는 “원청 생산이 멈추면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곳은 협력사와 임직원들”이라며 “삼성전자의 성과는 협력사로 일부 공유된다. 논의가 원청 내부에만 머무르는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도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파업 앞두고 역대급 긴장감…대안은 없나
이번 파업 예고는 2024년 5000여 명이 참여했던 일시적 파업과는 차원이 다른 위기감을 조성하고 있다. 노조는 이번에는 3만~4만 명 수준의 대규모 인원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한다. 블룸버그 등 외신들도 삼성전자의 이익 배분 갈등을 보도하며 대규모 이익 공유 요구가 미래 투자 재원 확보와 주주 가치 제고 사이에서 어떤 결론을 낼지 주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감정적 대립을 넘어 보상 체계의 ‘시스템화’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송헌재 세종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이번 파업 예고는 2024년 당시보다 위기감이 훨씬 더 크다. 글로벌 패권 경쟁 속에서 한국 반도체가 살아남기 위한 ‘시스템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송 교수는 대안으로 성과급 산정 기준의 객관화, 경영 실적 악화 시 리스크를 공유하는 ‘구간형 성과공유제(Cap·Floor·Clawback)’, 그리고 노·사·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독립 중재 위원회’ 상설화를 제시했다. 이어 “기업은 혁신을 멈추지 않고 노동자는 그 성과를 정당하게 누리는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키는 것만이 대한민국 경제가 파고를 넘을 유일한 길”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30일 1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을 통해 “노조와의 대화를 우선으로 원만한 해결을 추진하겠다”면서도 “전담 조직과 대응 체계를 통해 생산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화의 문은 열어두되 파업 현실화에 대비한 공급망 연속성 계획(BCP) 가동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현장에서는 “클린룸 공정 특성상 숙련 인력 공백을 완전히 메우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노조는 정부와 경영진의 압박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지난 27일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발언과 관련해 노조는 “반도체 인재 처우 개선이 곧 국익이다. 정부가 이중잣대를 버리고 인재 주도권 확보를 위한 전향적인 투자와 환경 조성에 나서야 한다”며 항의서한을 냈다. 앞서 김 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반도체는 대규모 투자가 지속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구조”라며 파업에 우려를 표한 바 있다.
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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