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그래도 지구는 돈다!” 흔히 갈릴레오가 재판장을 나오면서 이런 혼잣말을 속삭였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그런 말을 했다는 증거는 없다.) 정말 우주에 있는 건 무엇이든 돈다. 지구도 돌고, 달과 태양도 돌고, 우리 은하도 돌고 있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태초에 각운동량을 아주 미미하게나마 갖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 전체 시스템을 구성하는 모든 입자들의 움직임을 모두 평균 냈을 때 완벽하게 그 어떤 방향으로도 회전하지 않고 전체 각운동량이 완벽하게 0으로 상쇄되는 것이 오히려 더 어색하다. 게다가 우주의 모든 천체는 원래 더 거대하게 퍼져 있던 입자들이 중력으로 작게 모여들면서 만들어진다. 그러면서 회전 반경은 더 작아지고 전체 각운동량을 보존하는 과정에서 회전 속도는 더 빨라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주에 있는 모든 것은 빙글빙글 돌고 있다.
그렇다면 우주 전체는 어떨까? 이런 식이라면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 전체도 각운동량이 0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사실 이러한 질문은 천문학 역사에서 아주 오랫동안 이어져왔다. 확실한 답은 모른다. 다만 아직까지 우리 우주가 회전하고 있다는 낌새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만약 우리 우주가 회전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대담한 가정을 받아들인다면, 지금껏 풀리지 않는 현대 우주론의 가장 지긋지긋한 미스터리가 시원하게 해결될 수도 있다. 우주가 정말 회전하고 있다면 우주의 팽창률이 관측 방식에 따라 다르게 나오는 ‘허블 텐션’이라는 난제가 간단히 설명되기 때문이다.
사실 우주가 통째로 회전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1949년 한 비범한 수학자가 제시했다. 철학자 겸 수학자로도 잘 알려진 쿠르트 괴델은 아인슈타인의 중력 방정식을 활용해 굉장히 색다른 해를 찾아냈다. 그는 우주가 투명한 유체와 같은 매질로 가득 차 있다고 가정했다. 괴델은 이 매질을 ‘먼지’라고 불렀다. 그리고 매질로 가득 찬 우주가 통째로 회전하는 우주 모델을 만들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질량을 가진 존재는 주변 시공간을 왜곡한다. 그런데 여기에 질량 덩어리가 회전하는 효과를 더하면 조금 더 극적인 효과가 추가된다. 이불 위에 볼링공을 올려두고 공을 회전시킨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볼링공의 회전과 함께 이불도 따라 꼬여들어간다. 실제로 우주 시공간에서 회전하는 모든 물체는 주변 시공간을 더 꼬집듯이 끌고 간다. 이것을 프레임 드래깅(Frame dragging)이라고 한다. 이 효과는 별 두 개가 붙어 있는 쌍성의 펄사에서도, 목성 곁을 스윙바이하는 탐사선들의 궤적에서도 확인된다.
괴델의 상상처럼 우주가 정말 통째로 회전하고 있다면, 당연히 프레임 드래깅 효과가 우주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시공간 자체가 회전에 의해 더 끌려가다보니 결국 우리가 봤을 때 더 먼 우주와 가까운 우주의 시공간이 왜곡되는 정도에 차이가 생긴다. 이 효과까지 고려해줘야 먼 우주에서 가까운 우주에 이르는 우주의 팽창률, 허블 상수를 더 공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최근 괴델의 과감한 상상을 실제로 테스트한 놀라운 논문이 발표되었다. 현대 우주론에서 천문학자들을 골치 아프게 하는 난제 중 하나로 허블 텐션을 꼽을 수 있다. 허블 텐션은 우주의 팽창률을 보여주는 허블 상수 값이 관측 방식에 따라 다르게 나오는 문제를 이야기한다.
우주 속 은하들이 얼마나 빠르게 멀어지고 있는지, 거리에 따른 은하들의 후퇴 속도를 비교하는 관측에 따르면 허블 상수는 대략 73km/s/Mpc 정도로 나온다. 이건 가장 전통적이고, 가장 직접적으로 우주의 팽창률을 구하는 방식이다. 많은 천문학자들은 이 방식 자체에 치명적인 문제는 없다고 믿고 있다. 물론 은하까지의 거리를 구하는 데 큰 오차가 있을 수 있고, 실제로 최근에는 그런 의문을 제기하는 연구도 나왔지만, 허블과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으로 연이어 대대적으로 은하를 관측한 결과 허블 상수는 계속 비슷한 수준으로 나왔다.
빅뱅 직후 아주 높은 온도로 뭉쳐 있던 초기 우주가 균일하게 팽창하면서 식는 과정에서 우주 전역에 남긴 미미한 전파 신호를 통해서도 우주의 팽창률을 알 수 있다. 초기 우주의 빅뱅 잔열에 해당하는 이 전파 신호를 우주 배경 복사라고 한다. 가장 최근 플랑크 위성의 관측에 따르면 허블 상수는 67km/s/Mpc 정도로 나온다. 은하의 후퇴 현상을 직접 관측해서 추정한 값에 비해 더 작다. 즉 은하들의 후퇴 현상으로 파악한 우주의 팽창이 우주 전체 열기가 식으면서 남긴 흔적으로 추정한 팽창에 비해 더 빠르게 보인다는 것이다.
두 관측 방식의 차이가 처음 거론되기 시작한 20년 전까지만 해도 천문학자들은 그렇게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두 방식 모두 오차가 컸고, 대략 오차 범위에서 측정값이 겹쳤기 때문이다. 점차 오차가 줄어들고 관측 방식이 정밀해지면서 하나의 값으로 수렴하겠거니 기대했다. 하지만 이후 20년간 벌어진 일은 정반대였다. 은하의 후퇴 현상, 우주 배경 복사 각 방식으로 추정한 허블 상수 값의 오차는 크게 줄었지만, 둘의 차이는 더 극명해졌다. 분명 똑같은 우주의 팽창을 뒤쫓고 있지만, 서로 다른 두 우주를 보는 것 같은 이 난감한 문제를 허블 텐션이라고 한다.

이번 논문은 어쩌면 우주가 통째로 회전하기 때문에 가까운 우주와 먼 우주가 실제로 허블 상수가 다르게 관측될 수 있다는 흥미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논문의 핵심 결과를 담은 그래프를 보면 굉장히 흥미롭다. 그래프의 엑스축은 빅뱅 이후 흘러온 우주의 시간을 나타내고, 와이축은 우주가 진화하면서 허블 상수가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보여준다.
그래프에서 가장 아래에 그려진 두 가지 검은색 점선은 각각 초신성에 기반한 은하 관측, 우주 배경 복사로 추정한 두 가지 허블 상수 측정치를 보여준다. 아주 살짝 차이가 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차이가 앞서 소개한 허블 텐션이다. 두 값 모두 바로 지금, 현재 시점의 우주 팽창률, 지금 시점의 허블 상수를 나타낸다.
그러나 우주가 팽창하면서 허블 상수도 달라졌다. 그래프에서 파란색 선은 오늘날 천문학자들이 가장 신뢰하는 우주의 표준 모델인 ΛCDM 모델을 기반으로 구한 허블 상수의 변화 과정을 보여준다.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를 반영한 가장 표준이 되는 모델이다. 그리고 그래프에서 녹색과 보라색은 이번 논문에서 우주가 회전할 것이라는 모델에서 회전 속도를 조금씩 다르게 가정했을 때 허블 상수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그래프의 왼쪽과 오른쪽에 따로 더 자세히로 그려진 인셋(inset) 이미지를 보면, 각각 우주 배경 복사가 처음 퍼지기 시작한 극초기 시점의 우주와 오늘날 시점의 우주에서 각 모델에 따른 허블 상수가 실제 관측 결과와 얼마나 잘 들어맞는지를 보여준다. 초기 우주의 입자 밀도가 옅어지고 태초의 빛이 퍼져나가면서 우주 배경 복사가 퍼져나가기 시작한 순간, 극초기의 우주에서는 기존의 ΛCDM 모델이나 회전하는 우주 모델이나 모두 허블 상수 값이 비슷하다.
하지만 현재로 오면서 그 차이가 크게 벌어진다. ΛCDM 모델로 구한 결과인 파란색 선과 회전 우주 모델을 적용한 녹색, 보라색 선이 뚜렷하게 갈라진다. ΛCDM 모델의 결과는 살짝 낮은 67km/s/Mpc을 지나는데 이건 딱 우주 배경 복사 관측으로 추정한 허블 상수와 일치한다. 하지만 회전 우주 모델을 적용한 결과는 그보다 살짝 높은 73km/s/Mpc 정도 구간을 지나는데 이건 딱 은하들의 후퇴 현상을 직접 관측해서 추정한 허블 상수와 일치한다! 이번 논문은 은하를 직접 관측해서 추정한 우주의 팽창률은 비교적 가까운 우주의 모습을 보여주고, 우주 배경 복사로 본 우주는 훨씬 먼 거리에 이르는 우주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추정한다.
괴델의 모델처럼 우주가 통째로 회전하고 있다면 거리에 따라 우리가 보게 되는 우주의 모습은 정말 다를 수 있다. 즉 허블 텐션은 정말 우리가 관측 방식에 따라 조금씩 다른 우주를 보고 있었기 때문에 생긴 결과일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 관측되는 허블 텐션을 설명하려면, 즉 은하들의 후퇴 현상으로 본 우주의 팽창률이 73km/s/Mpc 정도로 관측되려면 우리 우주가 통째로 얼마나 빠르게 회전하고 있어야 할까? 굉장히 느리다. 우주가 대략 5000억 년에 한 바퀴 도는 수준으로 아주아주 느리게 회전하고 있다면 지금의 허블 텐션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왜 우리가 그동안 실제 관측으로 우주 전체의 회전을 느끼지 못했을지 충분히 이해해볼 수 있다.
이번 논문이 제시하는 우주 전체의 회전 속도가 너무 턱없이 느려서 실망스러운가. 더 놀라운 이야기가 남아 있다. 5000억 년에 한 바퀴 도는 우주의 회전 속도는, 회전하는 우주가 가질 수 있는 가장 빠른 한계 속도와 일치한다! 만약 우주가 이보다 더 빠른 각속도로 회전하게 되면 시공간이 뒤엉키면서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등 모든 물리 법칙이 무너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우주가 하필이면 이론적으로 가질 수 있는 가장 빠른 회전 속도로 돌고 있다고 가정했을 때, 현재 남아 있는 우주론의 많은 난제가 깔끔하게 해결된다! 단순한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귀를 쫑긋하게 만드는 결과다.
이 흥미로운 우연은 지난번에 소개한 ‘블랙홀 우주론’을 다시 떠올리게 만든다. 우리 우주가 어쩌면 또 다른 거대한 블랙홀 속에 갇힌 세계일지 모른다는 가설 말이다. 빅뱅 직후 우주나 블랙홀이나 결국 모든 질량이 한 점에 모여 있는 특이점으로서 물리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데에서 시작된 아이디어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블랙홀도 빠른 스핀을 갖고 있는데, 마찬가지로 우리 우주도 블랙홀 안에 갇혀 있다면 당연히 스핀을 갖고 있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 또 다른 우연이 숨어 있다. 정말로 우주가 통째로 블랙홀에 갇혀 있다고 가정하고, 지금 우주의 전체 질량을 고려해 이 정도로 무거운 블랙홀이 가질 수 있는 사건의 지평선이 얼마나 큰지를 계산해보면 얼추 현재 우리가 파악한 관측 가능한 우주의 크기와 비슷하다!
우주 전체의 지평선 크기도, 우주 전체의 회전 속도도, 정말 우리 우주가 블랙홀 안에 갇힌 세계라고 가정하면 모든 설명이 들어맞는 것처럼 보인다. 다만 아쉽게도 우리 우주가 정말 통째로 회전하고 있는지를 관측으로 검증하는 건 매우 어렵다. 우리가 우주 안에 있기 때문이다. 주변 시공간과 함께 우리도 비슷한 속도로 회전하고 있다면 아무리 주변을 살펴봐도 우주가 정말 돌고 있는지 알아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또 이론적으로 제시한 우주의 회전 속도도 턱없이 느리다. 정말 이번 가설이 맞다고 하더라도 우주가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만 5000억 년이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현재 우주의 나이는 138억 년밖에 안 된다. 앞으로 우주가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의 36배에 달하는 세월은 더 보내야 겨우 한 바퀴를 돌 수 있다. 아무리 먼 우주의 은하들을 계속 지켜보더라도 정말 그 천체들이 보이는 위치가 미세하게 틀어지고 있는지를 겨우 몇 년 관측해서는 알아챌 수 없다.
간접적인 방법을 생각해볼 수는 있다. 만약 우주 전체의 각운동량이 0이 아니라면 우주에서 빚어진 모든 은하를 평균 내면 결국 특정한 한쪽 방향으로 미미하게나마 회전하는 성분을 공유하고 있어야 한다. 우주 전체 은하들의 회전 방향이 무작위로 분포하는지, 아니면 정말 특정한 방향성을 갖고 있는지를 통계적으로 확인해볼 수 있다. 최근에 소개한 연구도 바로 이런 가능성에 주목했다(관련 기사 [사이언스] 우주가 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는 까닭).
솔직히 최근까지만 해도 천문학자들은 이런 주장에 굉장히 회의적이었다. 전통적으로 우주는 별다른 방향성을 갖지 않고 그저 모든 것이 고르게 분포하는 세계라고 생각해왔다. 이러한 관점을 천문학에서는 코페르니쿠스 원리라고 부른다. 우주의 그 어떤 곳도 특별할 게 없다는 관점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런 관점도 조금씩 의심받고 있다. 우주 전역에서 관측 가능한 우주 전체 크기와 비교해 무시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한 규모에 걸쳐 은하 밀도가 더 높거나 낮게 분포하는 뚜렷한 초거대 구조가 계속 발견되고 있다. 심지어 우주 배경 복사 관측을 보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수상한 방향성이 드러난다. 마치 우주의 절반은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나머지 절반은 우리를 향해 멀어지는 듯한 모습이 확인된다. 우리 태양계 자체 움직임을 빼더라도 이런 이해할 수 없는 방향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 최근 들어 밝혀지는 이러한 정황들은 정말 우리 우주가 한 치의 오차 없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균일한, 코페르니쿠스 원리가 적용되는 세계인지에 의문을 품게 만든다.
“그래도 우주는 돈다.” 갈릴레이의 재판 이후 400년이 지난 지금, 인류는 다시 한번 우주의 회전을 둘러싼 새로운 재판장 앞에 서게 되었다. 그 400년 사이, 고민해야 하는 우주의 크기는 훨씬 거대해졌다. 이번엔 우주 전체의 회전이니 말이다.
참고
https://academic.oup.com/mnras/article/538/4/3038/8090496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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