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전체메뉴
HOME > Target@Biz > 비즈

[알쓸비법] 정보는 떠나고, 책임은 남는다…쉬운 '비밀 관리'의 조건

하도급법·부정경쟁법의 한계와 중소기업 현실…배임죄 폐지론 전에 메워야 할 정보보호 공백

2025.12.08(Mon) 15:49:31

[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알쓸비법)’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기업의 정보 유출 유형은 크게 외부와 내부로 나뉜다. 기업의 정보 관리는 사업의 유지와 존속을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다. 사진=생성형 AI

 

사업의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는 정보다. 정보는 외부에서 탈취하기도 하고 내부에서 유출하기도 한다. 외부에 의한 탈취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대표적인 사례는 하도급 거래에서 원사업자가 거래상 지위를 남용해 수급 사업자에게 기술 자료를 요구하는 경우다. 원사업자가 수급 사업자의 기술을 다른 협력업체에 제공하거나 본인의 기술개발 등에 사용하는 경우 등은 모두 불공정하도급 거래 행위로서 하도급법에 따라 행정제재 대상이 된다. 이러한 유형은 외부의 요구로 정보를 뺏긴 사례다. 

 

내부에서 정보를 유출하는 사례엔 어떤 것이 있을까? 회사에서 기술 개발을 담당한 임직원이 이직하는 과정에서 회사의 정보를 복사한 후 경쟁업체나 자신의 사업에 사용하는 경우다. 이러한 행위는 영업비밀 침해행위로서 부정경쟁방지법에 의해 민·형사 책임을 부담할 수 있다.

 

이렇듯 특별법까지 제정해 회사의 주요 정보를 보호하는 제도를 시행하는 건 그만큼 회사의 정보를 관리하는 것이 사업의 유지와 존속을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기업이라면 자금과 인력이 충분하므로, 위와 같은 제도를 활용해 주요 정보를 보호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이러한 제도를 활용하는데 적지 않은 부담을 느낀다. 개별 법률이 요구하는 요건을 충족하고 그 사실을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부정경쟁법은 보호의 대상으로서 ‘영업비밀’을 인정하기 위한 요건으로 비공지성, 경제적 유용성, 비밀 관리성을 요구한다. 비공지성이란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지 않아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비밀관리성이란 정보를 비밀로 구분해 인적, 물리적, 법적 수단에 의해 유지하는 상태를 말한다.

 

형식적으로 보면 당연한 요건처럼 보이지만 실제 소송에서 이를 입증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우선 비공지성 요건 때문에 일반인은 물론 업계 종사자라면 비교적 쉽게 입수하거나 추론할 수 있는 정보라면 영업 비밀로 인정받지 못한다.

 

또한, 업계에서 여러 정보와 경험을 조합하면 추측할 수 있는 정보, 다른 업체와 교섭하는 과정에서 주고받은 정보라면 비공지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제조, 콘텐츠, 플랫폼 등 분야를 막론하고 인력 이동이 잦은 분야는 정보 순환과 교환이 잦으므로 비공지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또한 암묵적, 추상적인 노하우 등으로 구성된 정보는 보호 대상을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없어 영업 비밀로 인정받을 수 없다.

 

비밀관리성 역시 입증하기 만만치 않다. 최근 법 개정을 통해 관리의 정도로서 ‘상당성’, ‘합리성’ 등의 문구가 삭제돼 문언 상으로는 보험의 범위가 넓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다고 법원의 판결이 이전보다 더 넓게 영업 비밀을 인정하는 것 같지는 않다. 비밀관리성의 구체적인 내용은 문서에 비밀 표시를 하고, 기술적·물리적 조치를 통해 접근·관리를 통제하며, 내부규정을 통해 임직원에게 보안유지 의무를 부과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필자의 경험에서는 중소기업이 위와 같은 모든 절차와 과정을 지킨 것을 거의 본 적이 없다.

 

기업의 주요 정보 보호를 위해서는 보호조치 실시에 비용과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는 우리나라 기업 문화와도 무관하지 않다. 전반적으로 절차 준수보다는 업무의 효율성을 중시한다. 역할과 권한(R&R)이 명확하지 않아 하나의 프로젝트에 여러 인력을 중복 투입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방식은 단기간 내 성과를 내는 데 도움이 되지만, 분쟁 예방을 위한 사전 정보 관리에서는 취약할 수밖에 없다.

 

법원의 입장은 ‘평소 비밀로 인식하거나 비밀로 관리하지 않았던 정보를 사후적으로 영업비밀로 보호하는 것은 어렵다’라는 것이다. 중소기업은 ‘모든 절차를 형식적으로 지키면 정상적인 업무 수행이 어렵다’라며 현실적인 한계를 말한다. 이처럼 양측 입장이 다르다 보니 대기업이나 최첨단 기술 분야가 아닌 이상 영업 비밀 제도의 활용 실적은 저조하다.

 

하도급법상 기술자료 보호 제도는 수급 사업자의 보호를 위해 여러모로 요건을 완화했고,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술자료 분야에서 하도급법 집행을 천명했기 때문에 과거보다 보호 사례가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하도급법은 원칙적으로 공정거래위원회가 집행하는 법률이고, 이러한 행정조사, 처분은 당사자들이 권리로서 주장할 수 있는 구제 수단이 아니어서 개별 수급 사업자가 침해 발생 시 즉각적이고 실효적인 구제를 주장할 수 없다는 구조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특히, 공정거래위원회가 하도급법 위반을 인정해 원사업자를 제재한다고 수급 사업자의 손해가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수급 사업자는 원사업자를 상대로 민사상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해야만 한다는 점에서 한계점이 분명하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정보 탈취, 유출 분야에서 업무상 배임의 법리는 중요하다. 대법원 2018도4794 판결은 “회사 직원이 경쟁업체에 유출하거나 스스로의 이익에 이용할 목적으로 퇴사 시 회사에 반환하거나 폐기할 의무가 있는 자료를 반환하거나 폐기하지 않는 경우, 그 자료가 반드시 영업 비밀에 해당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적어도 불특정 다수인에게 공개돼 있지 않아 보유자를 통하지 아니하고는 이를 입수할 수 없고, 보유자가 자료 취득이나 개발을 위해 상당한 시간, 노력, 비용을 들인 것으로 이를 통해 경쟁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정도의 영업상 주요한 자산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그와 같은 행위는 업무상 배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그리고 서울중앙지방법원 2021가단5196919 판결은 커플매니저가 결혼정보회사에서 퇴사하면서 470명의 고객 정보를 유출한 것은 불법행위가 성립한다고 보고 2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명령했다. 의정부지방법원 2015고단3911 판결은 상조회사 고객관리팀 팀장이 퇴사 후 다른 회사를 위해 고객 모집 및 관리를 하면서 종전 회사의 고객 정보를 사용한 것이 임무에 위배되며, 고객 정보 파일로 시장 교환 가격 상당의 재산상 이익을 취득했고, 고객 정보 파일을 유출 당한 피해 회사의 매출액 감소분을 재산상 손해를 가한 것으로 보고 피고인에 대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결국 회사 정보를 보호 받기 위해 업무상 배임의 법리는 매우 중요하다. 최근 배임죄 폐지론이 논의되고 있으나, 제도의 폐지에 앞서 정보 보호 측면에서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보완책을 반드시 먼저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회사도 주요 정보에 대해서는 보호조치 실시에 비용과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비밀로 관리될 정보를 따로 구분해 보관하고, 기술적 조치를 통해 접근과 사용을 통제하며, 반출·사용 이력을 관리하고, 취업규칙 등 내부 규정을 통해 사내 구성원에게 비밀유지의무를 부과해야 한다. ‘비밀 구분 및 표시→접근 및 반출 통제→사용 이력 관리’, 이 기본적인 단계만 갖춰도 정보 보호의 실효성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writer@bizhankook.com

[핫클릭]

· [알쓸비법] '플랫폼 규제' 앞에서 흔들리는 공정위…법원은 왜 잇따라 제동을 거나
· [알쓸비법] 인테리어 리뉴얼, '브랜드 유지'인가 '부당 강요'인가
· [알쓸비법]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 추진…공정위 규제 로드맵 살펴보니
· [알쓸비법] 온라인 모욕, 고소할 수 있을까? 증거 확보와 법적 절차 A to Z
· [알쓸비법] 기업 규제, 이제는 개인 책임까지…공정거래법 새 흐름


<저작권자 ⓒ 비즈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