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알쓸비법)’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보는 사람의 입장과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공정거래법을 적용하는 영역에서 법 위반이 확인되면, 그에 따라 회사에 부과하는 제재 수위는 가볍지 않다. 혐의가 제기되면 규제기관으로부터 조사를 받는데, 이 자체가 상당히 고역이다. 조사·심의를 거쳐 시정명령·과징금 등 행정제재를 받게 되고 고발까지 있는 경우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과정에서 법 위반사실을 언론에 노출하면 관련 사안에 대한 민원이 빗발치고 부정적인 여론이 조성된다.
그럼에도 법 위반행위를 반복하는 이유는 왜일까?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나 냉정한 마음으로 판단해 보면 모두 비슷한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즉, 아무리 회사를 무겁게 처벌하더라도 그 위반행위에 직접 관여한 개인이 무사하다면 법 위반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집단주의를 강조하는 동아시아에서 관찰되는 모습인데 회사 내부의 충성·결속을 최우선시해 회사에 이익이 됐다면 그 자체로 환영받는다. 원인이 된 행위가 법에 위반되는지 남에게 피해를 줬는지를 묻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정서다. 또한 먹고 살려고 회사 일을 했을 뿐인데 회사 일로 개인이 처벌한다는 것은 불합리하다고도 생각한다.
최근까지의 실무와 관행은 회사가 처벌을 받는 경우에도 극히 예외적인 사안을 제외하고는 행위에 직접 관여한 개인은 처벌 받지 않았다. 오히려 위법한 행위로 이익이 발생했다면 ‘일머리가 있다’고 칭찬을 받고 승진했다. 그러다 보니 업계에서 사람을 만나면 법령 준수는 현업을 모르는 한가한 소리로 치부했고, 오히려 법령과 규제를 회피하고 단기간 내 최대한의 효율을 거두는 사람이 환영받았다.
최근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기업의 영업활동에 대한 개인의 책임이 무거워졌다는 것을 여러 사정을 통해 감지하고 있다. 예를 들어, 가격담합 등 위법행위로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경영진은 회사에 대해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한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다.회사 경영진은 회사의 의사결정을 지배한다. 따라서 잘못된 경영과 판단으로 회사에 손해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경영진에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냐는 의문이 있었다.
이러한 사정을 감안해 주주가 회사를 대신해 소송을 제기하는 주주대표소송 제도가 도입됐다. 제도에 따라 시멘트, 부탄가스, 건설, 철강 등 여러 업계에서는 대표이사나 임원진이 회사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
판례를 보면 가혹해 보이는 내용도 있다. 이사가 가격담합에 관한 의사결정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대표이사, 업무 담당 이사의 업무 집행을 전반적으로 감시해야 하는 의무를 위반했다면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했다. 즉 회사의 업무는 대표이사, 업무 담당 이사의 지휘 하에 분업적이고 조직적으로 이뤄지므로, 이사의 감시 의무는 본인이 직접 집행하는 업무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업무 집행 전반에 미친다. 따라서 다른 경영진은 물론 피용자가 집행하는 업무도 감시 의무의 대상이 된다고 한다.

설령 회사가 가격담합을 통해 이익을 얻었다고 해도, 얻은 이익은 회사에 배상해야 하는 손해액에서 공제하지 못한다. 이와 관련한 대법원 2024다316391 판결에는 인상 깊은 구절이 있다. 재판부는 “회사는 기업 활동을 하면서 범죄를 수단으로 하면 안 된다. 이사가 회사 업무를 집행하면서 법령을 위반한 경우, 설령 위반 행위로 회사에 이득이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그 이득을 손해액에서 공제하는 것은 이사의 위반행위로 인한 위법한 이득 보유를 그대로 승인하고, 그 범위만큼 이사의 책임을 면제함으로써 이사의 법령 위반행위와 회사의 범죄를 조장하게 되므로 결코 허용될 수 없다”라고 명시했다.
최근 자주 나오는 의견은 강력한 규제에 대한 비판이다. 규제 강화가 능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규제가 지나치다는 취지의 의견은 꼭 공정거래법 영역에서만 제기되는 것은 아니고, 건설업계, 제조업계 등 산업 전반에서도 들리는 의견이다. 규제 일변도 접근이 단기적으로는 법 적용이 되는 모습을 보여줄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개인의 창의를 억누르고 시장의 자율적 기능을 훼손한다는 목소리다.
이런 사정을 예견한 것인지, 대법원 판결은 앞서 본 개인의 책임을 강화한 사안에서 책임주의 원칙을 조화시키기 위한 대안을 제시했다. 이는 회사와 개인의 과제이자 향후 목표라고 볼 수 있다.
대법원은 회사의 목적이나 규모, 영업의 성격 및 법령 규제 등에 비춰 높은 법적 위험을 예상하는 업무와 관련해서는 제반 법규를 체계적으로 파악한다. 그 준수 여부를 관리하고 위반 사실을 발견하면 즉시 신고 또는 보고해 시정조치를 강구할 수 있는 형태의 내부통제 시스템을 구축해 작동하는 방식으로 감시 의무를 이행할 수 있다는 취지로 판시했다.
물론 이러한 시스템이 허울에 그쳐, 봐주기 위한 구실이 되면 안 된다. 내부통제 시스템을 합리적으로 구축하고 정상적으로 운영했는지는 어떠한 제도를 도입했고 어떠한 직위가 있다고 해서 곧바로 긍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제도의 내용이나 직위에 부여한 임무가 무엇인지, 그러한 제도를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있는지, 임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했는지를 가려 판단한다.
이러한 대법원 판시에 따라 2024년 제정 공정거래위원회 고시는 ‘공정거래 자율준수제도’, 즉 CP(Compliance Program)를 도입·운영하면서 일정 등급 이상을 취득하는 경우 과징금을 감경하고, 직권조사를 면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마치 한 쌍의 바퀴가 균형을 이루며 굴러가듯, 공정거래법 적용 분야에서는 규제 강화와 동시에 사전 리스크 예방에 대한 혜택도 도입했다.
이상과 현실이 조화를 이룬 발전된 모습으로 보이지만 여기서 앞으로 제기할 문제를 짚어본다면 위와 같은 CP는 상당한 인력과 비용이 투입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 공정거래법 준수 또는 제재 면제 수준에서 필연적으로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더 나아가 회사의 규모에 따라 법 집행 의식에서도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CP 활성화는 환영받을 일이지만, 앞으로 이러한 이슈가 제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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