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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욱의 나쁜골프] 스코어 자랑할 때 '찐'을 붙이는 골퍼의 속마음

'일파만파, 양파, 멀리건, 컨시드' 뺀 마음 속 '진짜 스코어' 잊지 말아야

2026.01.05(Mon) 14:27:00

[비즈한국] 언제부턴가 단어 앞에 ‘찐’을 붙이기 시작했다. ‘찐맛집’ ‘찐부자’ ‘찐남매’ 같은 것들이다. ‘찐’은 ‘찐’만으로도 누군가의 주장에 강조점을 찍어주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게다가 “찐이야”는 어떤 논쟁의 마침표를 찍어 준다. 그렇다. ‘찐’은 ‘진짜’를 더 진짜라고 내세우고, 더 진짜처럼 들리게 해주는 아주 유효한 말이다.

 

골프에서도 ‘찐스코어’라는 것이 있다. 어떤 골퍼가 ‘라베’ 혹은 라베에 가까운 스코어를 기록했다고 치면, 본인의 스코어를 찍어서 누군가에게 자랑한다. 단톡방에 있는 잠정적 동반자들은 일단 축하를 해주고 놀라움을 표한다. 이때 라베를 한 골퍼는 “이거 찐스코어야” “첫 홀 일파만파 아니고 멀리건도 없었어”라고 덧붙인다.

 

아마 그 방에 있는 누군가는 이미 첫 홀 스코어가 과연 일파만파인지를 의심스럽게 훑어봤을 것이다. 그중 누군가는 그 스코어를 못 믿는 눈치다. “언제 그 실력 좀 보여줘”라며 은근한 검증까지 시도한다. 골프는 매너 스포츠다. 그 매너의 첫 번째 덕목은 ‘신뢰’다. 하지 말라는 것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런데 우리는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 다른 사람의 입에서 불러주는 스코어를 믿지 못할 때가 있다.

 

골프 스코어는 얼마든지 줄일 수 있지만 스스로 알고 있는 정직한 점수까지 속일 수는 없다. 사진=생성형 AI

 

그것은 바로 ‘가짜 스코어’가 있기 때문이다. ‘찐스코어’의 반대니 ‘가스코어’ ‘뻥스코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일명 스코어 마사지다. 한 캐디는 말한다. “제가 고객님들 스코어, 10타는 그냥 줄여드릴 수 있어요.” 캐디가 줄여줄 수 있는 스코어는 라운드 곳곳에 존재한다. 1번 홀부터 시작한다. 1번 홀을 마치고 캐디가 골퍼들에게 하는 말이 바로 “스코어 제대로 적을까요?”다. 제대로 안 적는다는 것은 맘대로 적는다는 것인가.

 

첫 홀 스코어는 ‘올파’로 인쇄되어 있어요. 이 말, 골퍼라면 너무나 익숙한 말이고, 이 말에 기대어 첫 홀이라도 파를 은근히 바라기도 하지 않는가. “저는 더블 이상은 안 적어요”라는 캐디도 있다. 그래서일까. 스코어카드를 손으로 적었던 시절, 유난히 더블에 해당하는 ‘2’를 멋지게 썼던 캐디를 만난 적도 있다. 파4에서 쿼드러플 보기, 양파를 쳤는데 더블을 적었다면 한 홀에서 벌써 두 타를 줄인 것이다. 

 

양파 역시 주말 골퍼들끼리 정한 ‘맥시멈 스코어 룰’ 아닌가. 타이거 우즈도 마스터스 토너먼트 파3 12번 홀에서 7개 오버, 10타를 쳤고, 골프클럽 브랜드의 이름으로도 쓰인 전설의 골퍼 토미 아머(Tommy Armour)는 파5 홀에서 23타, 18개 오버를 친 적도 있다. 그나마 주말 골퍼들의 스코어가 아무리 못 쳐도 144타에 정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양파 제도’ 때문이다. 아니, 덕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양파’의 고마움을 망각한 채 스코어카드에 있는 그대로의 ‘양파’를 적는 걸 대단히 꺼려하고 피하고 싶어 한다. 결국 “캐디님, 이번 홀 스코어 잘 부탁합니다”로 스코어는 줄여진다.

 

오늘 나의 스코어가 진짜 스코어가 아닌 이유 중에 살짝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멀리건’이다. “오늘 몇 개 쳤어. 점수 좋았어.” 이렇게 말하고 마치 논문의 주석처럼 다는 말이 “멀리건은 하나 썼어…”다. 물론 대한민국 골프장의 멀리건은 ‘캐디의 자비’에 달려 있다. 진행에 압박을 받는 골프장 캐디는 멀리건도 짜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캐디는 ‘라운드 캐디’가 아니라 ‘스코어 캐디’라고 불릴 만도 하다.

 

컨시드를 받지 않으면 도대체 성공률이 얼마나 될지 의심스러운 거리의 컨시도도 남발된다. 볼을 건드리고 움직이고 좋은 데에 놓고 치는 것, 적당히 룰을 위반하는 것으로 스코어는 또 줄여진다. 물론 주말 골퍼들끼리의 라운드에서 특히 ‘명랑 골프’라는 기치를 걸게 되면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다만 이 스코어가 나의 진짜 스코어가 아니라는 걸 잊지는 말자는 것이다. AI로 만들어진 이미지를 자꾸 보다 보면 어떤 것이 진짜인지 헷갈린다. 때론 가짜가 더 진짜 같을 때가 있다.

 

골퍼들에게도 가짜 스코어가 더 진짜 같을 때가 있지 않을까. 진짜 골프는 스코어카드가 아니라 내 마음속의 진짜 스코어에 있다.

 

​​​필자 강찬욱은? 광고인이자 작가. 제일기획에서 카피라이터로 시작해 현재는 영상 프로덕션 ‘시대의 시선’ 대표를 맡고 있다. 골프를 좋아해 USGTF 티칭프로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글쓰기에 대한 애정으로 골프에 관한 책 ‘골프의 기쁨’, ‘나쁜골프’, ‘진심골프’, ‘골프생각, 생각골프’를 펴냈다. 유튜브 채널 ‘나쁜골프’를 운영하며, 골프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와 생각을 독자 및 시청자와 나누고 있다.​​​ ​  

강찬욱 작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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