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이 SK하이닉스 지분 5% 이상을 보유했다는 공시가 나오자 시장이 즉각 반응했다. 2월 2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통해 블랙록은 SK하이닉스 주식 3640만7157주, 지분율 5.0%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준일은 2월 10일이며, 지분율이 5%를 넘어서면서 ‘5% 보고’ 의무가 발생했다.
이번 공시는 단순히 “큰손이 들어왔다”는 뉴스에 그치지 않는다. 블랙록이 SK하이닉스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것은 2018년 5월 이후 약 7년 9개월 만이라는 점이 상징적이다. 시장은 이를 ‘반도체 업황(사이클) 기대’와 ‘한국 자본시장 구조 개혁(정책) 기대’가 같은 방향으로 맞물리기 시작한 신호로 해석한다. 실제로 공시 당일 SK하이닉스 주가는 장중 신고가를 경신했고, 주가 급등이 지수에 미치는 영향이 큰 종목 특성상 코스피도 강하게 반응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블랙록의 투자 성격은 ‘경영참여’가 아니라 ‘단순 투자’로 분류된다. 블랙록 측은 장내 매수를 통해 지분을 늘렸고, 특별관계자까지 합산해 14개 주체가 보유분을 구성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렇다고 시장의 해석이 과장이라고만 보기도 어렵다. 패시브 자금의 성격이 강한 글로벌 운용사일수록, “한 국가 시장이 디스카운트를 줄일 조건이 갖춰졌는지”와 “해당 국가의 대표 업종이 이익 사이클에 진입했는지”를 동시에 본다. 블랙록이 ‘지금’ SK하이닉스에서 5%를 다시 넘긴 타이밍이 관심을 받는 이유다.
정책 축은 ‘밸류업’이 중심에 있다. 한국거래소는 기업이 자율적으로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하도록 제도를 운용해 왔고, 2026년 1월 말 기준 누적 공시 기업이 177개사(코스피 131, 코스닥 46)까지 늘었다고 밝혔다. 거래소는 또 2026년 1월 22일부로 가이드라인·해설서를 개정해, 수치 목표 제시가 어렵다면 성장 전략·방향성 등 정성적 목표로도 공시가 가능하도록 문턱을 낮췄다. 밸류업이 “하라 마라”의 규제가 아니라 “공시를 통해 시장과 소통해 평가받는 구조”로 확산되는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밸류업이 외국인 자금에 영향을 주는 지점은 결국 ‘주주환원’이다. 거래소가 발표한 월간 현황 자료에는 SK하이닉스의 대규모 자기주식 소각 결정(12.2조 원 규모)과 현금배당 계획, 삼성전자의 자사주 취득 및 배당 등 굵직한 환원 움직임이 함께 언급된다. 국내 기업들이 “실적이 좋을 때 무엇을 시장에 돌려주는지”가 데이터로 축적되면, 외국인 입장에서는 한국 시장의 리레이팅(평가 상향) 논리가 훨씬 선명해진다. 특히 반도체는 업황이 좋아지면 현금흐름이 빠르게 개선되는 업종인 만큼, 환원정책의 가시화가 투자 논리의 ‘마지막 퍼즐’이 되기 쉽다.
여기에 ‘자사주 소각 의무화’라는 제도 변화 가능성까지 겹친다. 2월 2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1소위에서 이른바 3차 상법 개정안이 통과됐는데, 신규 취득 자사주는 1년 내 소각을 원칙으로 하고 기존 보유 자사주도 법 시행 후 1년 6개월 내 소각하도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아직 법제화의 최종 단계가 남아 있지만, 시장에는 “자사주가 더 이상 지배력 방어용 ‘곳간’이 아니라 주주환원 수단으로 정리되는 방향”이라는 신호로 읽힌다. 이 흐름은 밸류업과 정합성이 높고, 글로벌 기관투자가가 선호하는 ‘예측 가능한 규칙’에 가깝다.
코스닥 상장폐지 개혁도 같은 프레임에서 움직인다. 정부는 코스닥 부실기업의 신속·엄정 퇴출을 내걸고 2026년 2월부터 2027년 6월까지 집중관리기간을 운영하며, 시가총액 요건 상향과 동전주(주가 1000원 미만) 정리 등 상장폐지 요건을 단계적으로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요지는 “상장만으로 생존하는 한계기업을 시장에서 더 오래 버티게 두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충격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장 신뢰 회복과 디스카운트 축소를 겨냥한 구조 개편으로 해석될 수 있다. 외국인 자금은 대개 ‘개별 종목’보다 ‘시장 구조’가 바뀌는 시점에 더 크게 움직인다.
결국 블랙록의 5% 공시는 “반도체가 좋아서”만도, “정책이 좋아서”만도 아닌, 두 축이 동시에 돌아가기 시작했다는 신호에 가깝다. 서울경제는 블랙록의 SK하이닉스 5% 복귀를 2018년 이후 처음이라는 점과 함께, 반도체 밸류에이션(예: PER)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분석을 인용하며 ‘업황 기대’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조선중앙일보도 블랙록이 4대 주주로 복귀했다는 점과 함께 투자친화 조치에 대한 낙관이 지수에 반영되는 흐름을 전했다.
다만 이 신호를 ‘확정’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블랙록은 어디까지나 단순 투자 목적을 공시했고, 5% 보고는 적극적 경영 참여를 의미하지 않는다. 정책 역시 방향은 분명해졌지만, 실제로 기업들이 얼마나 일관되게 환원과 거버넌스 개선을 실행하느냐에 따라 시장의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그럼에도 이번 공시가 주말 해설의 소재가 되는 이유는 명확하다. 외국인 자금이 한국 주식시장을 볼 때의 핵심 질문, “구조적으로 디스카운트가 줄어드는가”와 “대표 업종 이익이 늘어나는가”에 동시에 ‘예스’가 붙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블랙록의 5% 복귀는 단순한 지분 공시 이상의 무게를 갖는다.
우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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