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골프는 술에 관대하다. 물론 프로들의 대회가 아닌 아마추어 골퍼들끼리의 라운드에서 그렇다. 라운드가 시작하기도 전 식당 테이블에 소주 병이 놓여 있기도 하고, 전반 9홀을 마치고 들른 스타트하우스의 테이블 위엔 막걸리나 맥주가 올려져 있다. 어떤 골퍼는 막걸리 한 잔을 시원하게 들이키고 “이 맛에 골프하지” “난 막걸리 마시러 라운드하지”라고 말하기도 한다. 세상의 어떤 스포츠가 중간에 술을 마시는가. 테니스 중 혹은 탁구 중에 한 세트를 마치고 맥주 한 잔 하고 다시 시작하지는 않는다.
골프의 본향은 스코틀랜드다. 골퍼들은 디 오픈이 열리는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를 비롯한 스코틀랜드의 링크스 코스를 마치 성지순례하듯 여행하고 라운드를 한다. 스코틀랜드 하면 또 바로 떠올리는 것이 스코틀랜드 위스키, 스카치다. 꽤 많은 골퍼들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스코틀랜드에서 라운드를 하고 스코틀랜드 위스키 증류소를 투어하는 것이다. 당연히 그 옛날 스코틀랜드의 골퍼처럼 위스키를 마치 세계대전의 군인들의 수통 같은 플라스크에 담아 라운드 중 꺼내서 한 모금씩 마시는 것도 포함된다.
1457년 스코틀랜드의 국왕 제임스 2세는 골프 금지령을 내렸다. 병사들이 골프에 빠져 활쏘기 연습을 게을리하고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스코틀랜드의 위스키 역시 세금과 밀주 문제로 역사적으로 금지와 허용의 규제가 반복되었다. 지금은 스코틀랜드의 대표적인 문화 아이콘이 한때는 ‘나쁜 것’ ‘해로운 것’으로 인식되었으니, 문화는 결국 물건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을 받아들이는 시대가 만드는 것임을 증명했었다.
골프와 위스키는 여러 가지 면에서 얽혀 있다. 초창기 세인트앤드루스의 코스는 22홀이었다. 그러다가 18홀로 정비되었는데, 그 이유가 위스키 1병에서 18잔이 나오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물론 유력한 설이 아니고 ‘썰’에 가깝지만 스코틀랜드의 거센 비바람과 추위, 척박한 링크스 코스에서 한 홀에 위스키 한 잔씩 마시며 라운드를 한다는 이야기는 제법 그럴듯하게 들린다.
최근 한국에서도 크게 유행하는 위스키 칵테일 ‘하이볼’ 역시 골프와 연관이 있다. 골퍼들이 몇 시간의 라운드 동안 ‘하이볼’을 마시다 보면 심하게 취해서 볼이 엉뚱하게 ‘high ball’이 된다는 데에서 그 말이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이 역시 유력한 설은 아니지만 ‘그럴 수도 있겠네’라는 생각은 충분히 든다.
미국이나 유럽의 골프장에 가면 클럽하우스 레스토랑 한편에 ‘바(bar)’가 있다. 18홀 라운드를 마친 골퍼들이 ‘위스키 한 잔’ ‘맥주 한 잔’을 마시는 곳이다. 골퍼들은 이곳을 ‘19번 홀’이라고 부른다. 그만큼 골프는 술에 관대하고 술을 부른다. 발렌타인, 조니워커, 커티샥, 산토리 같은 위스키 브랜드들이 수많은 상금을 걸고 골프대회를 열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태국에서 열린 유러피언투어 조니워커 클래식에서 영건 타이거 우즈는 두 번이나 우승하기도 했었다.
선수들 중에 ‘술’ 하면 빠질 수 없는 선수가 바로 메이저 우승자이자 ‘악동 골퍼’ 존 댈리(John Daly)다. 존 댈리는 동료 선수들의 진술에 의하면 술이 덜 깬 상태로 라운드를 하기 일쑤였고, 심지어 라운드 중에도 술을 마시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존 댈리가 술을 조금 자제했다면 그의 커리어는 더 풍성하고 길었을 것이라는 의견도 분분하다.
독특한 의상과 한국에서도 유행했던 퍼터를 칼집에 넣는 듯한 세리머니로 유명한 푸에르토리코 출신 PGA의 전설 치치 로드리게스는 첫 마스터스 출전을 앞두고 너무 긴장해서 그 긴장을 풀기 위해 푸에르토리코산 럼 1병을 마셨다고 한다. 그는 비록 82타의 저조한 스코어를 기록했지만 “난 정말 행복했다”고 말했다. 주말 골퍼들 중에도 긴장감을 완화시키기 위해 술을 마신다고 말하는 골퍼들이 있다. 중간 인 타임에 맥주 한 잔을 마시면 긴장이 풀리면서 퍼팅이 잘 된다는 골퍼도 있다.
하지만 과음은 말 그대로 과유불급이다. 라운드 중 마신 술의 양을 무용담처럼 말하지만 듣는 사람은 이를 무용담으로 듣지 않는다. 약간의 음주 역시 운전을 안 해도 되는 사람에게만 허용된다. 운전자의 음주는 절대 안 된다. ‘지금 마시면 이따는 괜찮겠지’라는 생각 역시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골프는 음주에 관대하지만 음주운전은 세상 어디에서도 관대해서는 안 된다.
필자 강찬욱은? 광고인이자 작가. 제일기획에서 카피라이터로 시작해 현재는 영상 프로덕션 ‘시대의 시선’ 대표를 맡고 있다. 골프를 좋아해 USGTF 티칭프로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글쓰기에 대한 애정으로 골프에 관한 책 ‘골프의 기쁨’, ‘나쁜골프’, ‘진심골프’, ‘골프생각, 생각골프’를 펴냈다. 유튜브 채널 ‘나쁜골프’를 운영하며, 골프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와 생각을 독자 및 시청자와 나누고 있다.
강찬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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