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얼마 전 43살의 나이에 KPGA에서 첫 승을 거둔 김재호는 롯데자이언츠의 레전드 ‘미스터 올스타’ 김용희의 아들이다. 김재호는 마지막 라운드 16번 홀에서 현재 롯데자이언츠의 2군 감독인 아버지의 99번 유니폼을 입고 플레이를 했고, 역시 아버지의 유니폼을 입고 우승 트로피를 들었다. 김재호는 아버지에게 감사하고 사랑한다고 말씀드리고 싶다는 인터뷰와 함께 “내 나이가 되면 남는 캐릭터는 낭만밖에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분명 그는 낭만골퍼였고, 데뷔 18년 만에 아버지의 유니폼을 입고 우승한 감동골퍼였다.
골프와 낭만이라, 이 두 개의 친한 듯 어색한 조합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낭만골프란 무엇일까? 골프는 세상의 모든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승부를 내는 게임이다. 누가 더 적은 스코어를 치느냐에 따라 1등과 꼴찌, 승자와 패자가 정해진다. 이 승부욕을 ‘신사의 게임’이란 명함 아래 매너와 에티켓으로 뒤에 숨겨 놓는 것이 골프다.
골프의 낭만을 이야기할 때 언급되는 하나의 역사적인 사건(?)이 있다. 1969년 라이더컵에서 잭 니클라우스(미국)는 토니 재클린(영국)의 1.2m 정도 남은 퍼트를 컨시드를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자네가 실패할 거라 생각하지 않네.”
이 경기는 라이더컵 역사상 가장 멋진 승부이자 낭만적인 장면으로 아직도 언급되고 있다. 골프의 낭만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위로에서 나온다.
KLPGA의 박민지는 왼쪽으로 간 티샷을 찾아 원구로 플레이를 했지만, 그 볼을 찾는 시간이 3분을 넘었을 것이라고 스스로 판단해 중간에 기권을 했다. 누가 그 시간을 쟀던 것도 아니고 중계에 잡혔던 것도 아니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플레이를 계속할 수 있었지만, 박민지는 “골프는 심판이 없는 경기다. 하지만 스스로 알고 하늘이 안다”라고 말하면서 중도에 기권을 했다. 아무도 뭐라고 안 했지만 스스로 심판이 되어 플레이를 중단시킨 박민지도 ‘지킬 것을 지킨다’라는 면에서 ‘지키는 멋’의 낭만으로 보인다.
결국 골프의 ‘낭만’은 다소 상반된 얼굴을 하고 있는 ‘엄격함’과 ‘여유’에서 나오는 듯하다. 골프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나의 ‘골프 롤모델’ 혹은 ‘골프 워너비’였던 선배가 있었다. 한 번은 내 볼이 페널티 구역에 빠졌고 1벌타를 받고 페널티 구역을 건너가서 플레이를 했다. 나는 워낙 초보였고 다른 동반자들도 다 그렇게 해서 아무 죄책감 없이 플레이를 했다. 그다음 홀에서 그 선배도 거의 비슷한 상황이 되었는데, 그는 “여기서 세 번째 샷 할게”라며 말 그대로 정확하게 룰을 지켰다. 본인은 룰을 엄격하게 지키면서도 나의 잘못된 플레이에 대해서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본인은 지키고, 타인에게는 배려한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때 그 선배의 멋진 모습을 기억한다. 그리고 속으로 그를 ‘낭만골퍼’라고 생각한다.
본인만의 드레스 코드, 패션 스타일이 있는 골퍼도 꽤나 낭만적으로 보인다. 1999년 비행기 사고로 고인이 된 미국의 페인 스튜어트는 총천연색 컬러의 니커보커 팬츠를 입었고, 니삭스를 멋들어지게 신었으며, 그만의 플랫캡을 쓰고 플레이를 했다. 그리고 US오픈을 두 번이나 우승했다. 물론 옷만 멋지게 차려입는다고 ‘낭만골퍼’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멋진 옷보다 멋진 것이 멋진 스윙이다. 멋진 스윙보다 멋진 것이 멋진 매너다’라는 문장을 잘 지켜낸다면 분명 낭만골퍼라고 할 수 있다.
어떤 골퍼는 골프를 정복의 대상으로 보지만, 어떤 골퍼는 골프를 즐거움의 대상으로 보고 필드를 걷는다. 좋은 풍경을 만났을 때 사진을 찍고, 동반자 모르게 동반자를 카메라에 담고, 필드 안의 그 시간을 사진으로 공유해 준다. 한마디로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결국 낭만은 마음으로부터 출발한다. 지키는 마음, 배려하는 마음, 즐기는 마음이다. 이 마음들을 낭만으로 전이시키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잔디밭을 걸으며 수양하는 것이다.
‘낭만에 대하여’란 노래의 가사엔 ‘도라지 위스키’가 나온다. 스코틀랜드의 오래된 코스에서 특유의 비바람과 싸우며 라운드를 마치고 클럽하우스에서 코스와 나의 스코어카드를 번갈아 바라보며 지난 라운드를 회상하며 스카치 위스키 한잔을 마신다면, 꽤 낭만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필자 강찬욱은?
광고인이자 작가. 제일기획에서 카피라이터로 시작해 현재는 영상 프로덕션 ‘시대의 시선’ 대표를 맡고 있다. 골프를 좋아해 USGTF 티칭프로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글쓰기에 대한 애정으로 골프에 관한 책 ‘골프의 기쁨’, ‘나쁜골프’, ‘진심골프’, ‘골프생각, 생각골프’를 펴냈다. 유튜브 채널 ‘나쁜골프’를 운영하며, 골프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와 생각을 독자 및 시청자와 나누고 있다.
강찬욱 작가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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