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라운드 날이 정해지고 그중 누군가가 부킹을 하면 제일 먼저 궁금한 게 어느 골프장이냐다. “구장이 어디야?”라고 먼저 묻기도 할 만큼 플레이할 골프코스가 궁금하다. 때론 본인이 좋아하는 코스일 수도 있고, 예전에 아주 몹쓸 경험을 했던 그래서 다시는 오고 싶지 않았던 곳일 수도 있다. 그러다가 부킹 문자를 받았을 때, 평소에 가보고 싶었던, 혹은 아주 좋은 코스라고 명망이 자자한 코스 이름을 보게 된다. “와” 하는 탄성과 함께 “여기 가보고 싶은 곳이었는데…” “누구 덕분에 꿈의 구장을 가게 되었네” 같은 칭송을 보내고 그날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그리고 여기저기 찾아본 사전 정보, 이를테면 대한민국 100대 코스 중 몇 위 같은 평판을 기대하며 코스에 나선다. 대부분 이런 평가들은 매우 주관적이거나 허황된 것은 아니라서 대체로 기대에 충족하지만, 가끔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
‘생각보다 별론데…’ ‘여기가 왜 이렇게 유명하지?’란 생각이 든다. 몇 홀 지나면 뭔가 대단한 게 나오겠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결국 별다른 특별함을 보지 못한 채 라운드가 끝났다. 그린피도 비싼데… 거리도 꽤 먼데… 내가 너무 과하게 기대한 것일까? 라는 생각과 함께 돌아온다. 그리고 한참 후에 그 구장에서 다시 라운드가 잡혔다. 이미 한 번 경험을 했기 때문에 그 코스에 대해 대단한 호들갑을 떨지도 않고 비교적 담담하게 코스에 나간다. 그런데 이번엔 지난번과는 달랐다. 그 코스가 맞나 싶을 정도로 훌륭했다. ‘여기가 왜 이렇게 유명하지’라는 생각은 ‘그래, 명성이 높을 만하네’로 바뀌었다. 똑같은 코스인데 왜 이렇게 다른 코스가 된 걸까?
이런 경우, 가장 많은 이유는 바로 계절이다. 아무리 좋은 코스도 잔디가 누래지면 풍경이 바뀐다. 잔디가 채 올라오기 전인 3월과 4월의 코스는 제아무리 명문 코스라고 하더라도 그 진가를 보기가 어렵다. 잔디가 푸르러지면 모든 코스가 예쁜 자태를 뽐내지만, 탑 티어의 코스는 그 풍광이 더 멋지고 격차는 완연하게 존재한다. 좋은 코스는 좋은 계절에 더 빛난다. 또 골프코스가 대대적인 정비 작업 — 그린 에어레이션이나 페어웨이 보수 같은 작업 중일 때의 코스는 완벽히 준비되어 있을 때의 코스와는 또 다르다.
그러니까 단 한 번의 방문으로 그 코스를 평가하지는 말자. 적어도 한 번은 더 가보자. 다시 가보면 분명 다른 게 보인다.
어떤 동반자가 있다. 분명 매너가 좋은 골퍼라고 들었다. 이번에 잘 사귀어서 이 팀이 좀 오래 갔으면 좋겠다는 주선자의 말도 들었다. 실력도 비슷하니 게임도 재밌게 할 수 있을 것 같다고도 했다. 그래, 실력이 비슷하고 인성이 서로 맞는 한 팀을 만들기가 쉬운 일인가. 잘해봐야지라는 마음으로 라운드에 나갔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랑 맞지를 않는다. 분명 나쁜 사람은 아닌데, 아니 좋은 사람 같은데 이상하게 나와는 좀 어긋나는 느낌이다. 골프를 너무 진지하게, 조금은 심각할 정도로 대하고, 한 샷 한 샷 지나치게 신중하다 보니 플레이 시간도 좀 긴 것 같다. 정상적인 플레이어와 슬로 플레이어의 경계에서 왔다 갔다 하는 느낌이다. 아무래도 나랑은 안 맞는 것 같다.
왠지 이번 라운드가 그와의 처음이자 마지막 라운드란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 조금 뒤에 다시 그와 라운드를 하게 된다. 물론 썩 마음에 내키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번엔 달라 보였다. 골프를 대하는 심각해 보이는 태도는 진심으로 골프를 사랑하는 진중함으로 보였다. 한 샷 한 샷 신중함 끝의 결과를 보니, 나도 저 정도의 신중함을 가져야겠구나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분명 같은 사람이고 같은 골퍼인데 이번엔 달라 보였다. 앞으로 이 사람과 골프를 하면 많이 배우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내가 먼저 다음 라운드 약속을 제안한다.
그렇다. 다시 가면 다르게 보이고, 다시 가면 다른 사람이 보인다. 물론 모든 경우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단 한 번의 경험으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다. 첫인상이 전부는 아니다. 골프 코스도, 골프 동반자도 두 번째 인상이란 게 있다. 한 번만 더 가보자. 한 번만 더 같이 플레이해보자. 그리고 판단하자.
필자 강찬욱은?
광고인이자 작가. 제일기획에서 카피라이터로 시작해 현재는 영상 프로덕션 ‘시대의 시선’ 대표를 맡고 있다. 골프를 좋아해 USGTF 티칭프로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글쓰기에 대한 애정으로 골프에 관한 책 ‘골프의 기쁨’, ‘나쁜골프’, ‘진심골프’, ‘골프생각, 생각골프’를 펴냈다. 유튜브 채널 ‘나쁜골프’를 운영하며, 골프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와 생각을 독자 및 시청자와 나누고 있다.
강찬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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