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세계 최대 정유사 시노펙(SINOPEC)과 중국항공유료그룹(CNAF)의 합병이 공식화되면서 지속가능 항공유(SAF) 시장의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양사의 합병은 단순한 기업 결합을 넘어 원료 정제부터 항공기 급유에 이르는 전 과정을 통합하는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는 점에서 전 세계 석유화학·항공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특히 탄소 중립 규제 강화로 인해 석유화학 산업의 구조조정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중국이 SAF를 미래 핵심 성장 동력으로 낙점하고 선제적으로 시장 장악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생산과 유통 결합, 중국 항공유 밸류체인 꾸린다
9일 중국 국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 국무원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는 지난 8일 시노펙과 CNAF의 합병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CNAF는 중국 국영 항공유 공급 기업으로 항공유 구매, 운송, 저장, 판매 등의 사업을 한다. 두 기업의 통합은 생산과 유통의 결합을 의미한다.
중국이 이처럼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는 배경에는 전통적인 석유화학 산업의 장기 침체가 자리한다. 경기 둔화와 공급 과잉으로 기존 석유 제품의 수익성이 악화되자, 시노펙은 고부가가치 친환경 제품인 SAF로 사업 구조를 전면 개편하고 있다. SAF는 기존 항공유인 석유를 바이오 연료나 재생합성 연료(재생에너지를 생산한 수소와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화학적으로 합성한 연료) 등으로 대체한 것이다. IATA(국제항공운송협회)는 SAF가 화석 연료 기반 항공유 대비 탄소 배출량을 최대 80%까지 줄일 수 있다고 추정한다.
탄소 배출권 거래제와 국제항공 탄소 상쇄·감축 제도(CORSIA) 등 국제적인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SAF는 이제 정유업계의 핵심 품목이 됐다. 특히 유럽연합(EU)이 지난해부터 역내 공항에서 이륙하는 항공기에 SAF 혼합 사용을 의무화한 터라, 전 세계적으로 SAF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IATA에 따르면 2050년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해 필요한 SAF 물량은 연간 약 4500억 리터에 달한다.
시노펙은 이번 합병을 통해 원료 수급부터 최종 공급까지 이어지는 ‘SAF 밸류체인’을 구축하게 된다. 규모의 경제를 통해 생산 단가를 낮추고, 안정적인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글로벌 표준까지 선점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흔들리는 석유화학, SAF가 ‘돌파구’
중국의 발 빠른 움직임은 국내 정유·석유화학 업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한국 석유화학 산업은 유례없는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 중국의 자급률 상승으로 인한 수출 감소와 글로벌 경기 침체, 그리고 거세지는 탈탄소 압박은 국내 기업들에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 정유 업계 역시 구조조정에서 SAF를 차세대 수익원으로 삼고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SK에너지는 2024년 10월에 국내 최초로 바이오 원료를 기존 정제 설비에 투입하는 ‘코-프로세싱(Co-processing)’ 방식을 통한 SAF 생산 라인을 가동했다.
HD현대오일뱅크는 2024년 6월에 ANA항공(전일본공수)에 SAF를 공급하면서 국내 정유사 최초로 SAF 수출 계약에 성공했다. 지난해 9월에는 대한항공과 인천-고베 노선에 SAF 공급 계약을 맺었다.
GS칼텍스와 에쓰오일도 SAF 전용 설비 투자를 검토 중이다. 국내 기업들은 특히 한국이 세계 항공유 수출 1위 국가라는 강점을 살려, 기존 수출 인프라를 SAF로 전환해 글로벌 시장의 입지를 지키겠다는 전략이다.
#제도적 뒷받침과 원료 확보가 관건
중국이 자국 항공 수요를 기반으로 SAF 표준을 주도할 경우,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 정유사들은 더 큰 경쟁 압박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정유사들이 중국 시노펙과 같은 거대 통합 법인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정책 지원과 원료 수급 문제 해결이 중요하다. 정부는 2024년 ‘석유 및 석유 대체 연료 사업법’을 개정해 SAF 생산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지난해 9월에는 2027년부터 국내 출발 국제선 노선에 SAF 혼합 사용을 의무화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SAF 생산의 핵심인 폐식용유 등 바이오 원료의 안정적인 확보를 위한 국가 차원의 수급망 구축은 과제로 남아 있다.
석유화학 구조조정이라는 난제를 안은 한국 정유업계에는 SAF를 통한 친환경 에너지 전환이라는 과제가 놓였다. 정부와 업계의 긴밀한 공조를 통해 SAF 생산 인프라를 조기에 완공하고, 글로벌 인증과 원료 공급망을 선점하는 것이 한국 정유 업계의 새 길을 여는 핵심 열쇠가 될 전망이다.
김민호 기자
goldmino@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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