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여천NCC의 재무가 악화되면서 대주주인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은 여천NCC의 공급 가격을 놓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 공급 가격에 합의하더라도 최근 석유화학업계가 불황임을 감안하면 앞날이 밝지 않다.

여천NCC는 한화그룹과 DL그룹이 합작해 설립한 석유화학 기초원료 생산 업체다. 현재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이 지분을 50%씩 갖고 있다. 여천NCC는 2010년대 석유화학업계 호황에 힘입어 고속성장했다. 당시 국내 기업 연봉 1위 타이틀을 거머쥐었을 정도다.
하지만 2020년대 들어 석유화학업계가 불황에 빠지며 여천NCC도 실적 부진을 피하지 못했다. 2022~2024년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고, 올해 상반기에도 1567억 원의 영업손실을 거뒀다. 이 추세라면 올해도 적자를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 연이은 적자로 인해 재무구조도 악화됐다. 여천NCC의 부채비율은 2022년 6월 말 217.88%에서 올해 6월 말 338.04%로 3년 새 120.16%포인트(p) 늘었다. 부채총액은 올해 6월 말 기준 2조 3570억 원에 달한다.
결국 최대주주인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이 지원에 나섰다. 두 회사는 최근 여천NCC에 각 1500억 원, 총 3000억 원을 대여하기로 결정했다. 여천NCC는 최근 부도 가능성까지 언급됐는데, 자금을 대여 받아 일단 부도 위기에서 벗어나게 됐다.
그러나 지원 과정에서 한화그룹과 DL그룹이 신경전을 벌였다.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이 공급 가격을 놓고 이견을 보인 것. 여천NCC의 공급 가격은 여천NCC, 한화솔루션, DL케미칼 등 세 회사가 협상해 결정한다. 기존 계약이 지난해 12월 만료된 후 신규 가격에 대해 협상 중이지만 아직도 진전이 없다. 결국 올해 1월부터 임시가격으로 거래하면서 가격 협상이 완료된 이후 정산하기로 했다.
여천NCC가 생산하는 제품은 에틸렌, 이소부텐, C4R1 등이다. 에틸렌은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 양 사에, 이소부텐과 C4R1은 DL케미칼에만 공급한다. 다만 에틸렌은 한화솔루션 공급 물량이 DL케미칼보다 약 두 배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솔루션은 에틸렌 가격에, DL케미칼은 이소부텐과 C4R1의 가격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의 갈등도 제품 가격 문제가 바탕에 깔려 있다. 양 사가 여천NCC 제품을 지나치게 저렴한 가격에 매입하면서 여천NCC의 경영 악화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DL그룹은 “여천NCC의 자생을 위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단가로 에틸렌을 거래해왔지만 한화는 여천NCC가 손해 볼 수밖에 없는 가격을 고수한다”며 “한화는 올해 초부터 대주주 의무를 망각하고 여천NCC 외에 다른 석유화학 회사와 에틸렌 구매를 위해 접촉하는 등 여천NCC의 어려움을 가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반면 한화그룹은 “여천NCC는 올해 초 국세청 세무조사에서 DL에 판매하는 에틸렌, C4R1 등의 제품을 저가 공급해 법인세 등 추징액 1006억 원을 부과받았는데, 이 중 DL과의 거래로 발생한 추징액이 96%인 962억 원”이라며 “한화가 공급 받고 있는 에틸렌 가격은 DL이 거래하는 가격과 동일하며 2025년 상반기 현재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는 가격 수준”이라고 반박했다.
오윤재 한국신용평가 수석애널리스트는 “주력 제품인 에틸렌과 프로필렌의 공급 과잉 기조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인 점을 감안하면 중단기 이익창출력은 큰 폭으로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저조한 현금창출력, 연 800억 원가량의 이자부담 등을 고려했을 때 단기간에 유의미한 수준의 재무안정성 회복은 쉽지 않을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장미수 한국기업평가 선임연구원은 “비우호적 업황으로 실적 개선이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된다”며 “중단기 영업 현금흐름 부진으로 잉여 현금 창출여력이 제한적일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여천NCC의 재무가 다시 악화되면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의 갈등도 재점화될 수 있다. 특히 DL케미칼은 재무가 그렇게까지 안정적이지는 않아 여천NCC에 대한 대규모 지원은 부담스러울 수 있다. DL케미칼의 부채총액은 지난해 말 연결 기준 6조 69억 원, 부채비율은 339.54%다. 실제 DL케미칼은 여천NCC에 자금을 대여하기 위해 20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이번과 같은 상황에서 대주주가 지원을 하지 않으면 여천NCC의 앞날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 양 사에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여천NCC 스스로 실적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석유화학업계에서는 업황이 회복하더라도 여천NCC가 2010년대의 영광을 되찾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과거와 달리 현재는 다수의 중국 업체가 뛰어들어 출혈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국내 기업을 살펴보더라도 에쓰오일(S-Oil)이 ‘샤힌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등 경쟁사가 늘어나고 있다. 샤힌 프로젝트는 울산광역시에 총 9조 2580억 원을 투자해 석유화학 생산 시설을 구축하는 사업으로 2026년 완공 예정이다.
어찌 됐건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은 여천NCC의 자생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자생 외에는 뚜렷한 해결책도 보이지 않는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정부에서 준비 중인 석유화학 산업 위기 극복을 위한 산업구조 재편 방안에 적극 협력하고 여천NCC 정상화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DL케미칼 관계자도 “한화와 공동으로 운영하는 TFT를 통해 여천NCC에 대한 경영상황을 꼼꼼히 분석한 뒤에 실질적인 경쟁력 강화 방안과 제대로 된 자생력 확보 방안을 도출·실행해 나갈 방침”이라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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