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인공지능 산업의 폭발적 성장으로 ‘전기 먹는 하마’라 불리는 데이터센터 수요가 폭증하고 있지만, 전력 공급 체계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엔비디아의 최첨단 GPU를 26만 장 확보하더라도 이를 가동할 전력이 없다면 ‘깡통 센터’에 불과하다는 성토가 업계에서 터져나오는 이유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원전 기업과 손잡고 직접 전력 확보에 나선 가운데, 한국에서도 발전사와 기업이 직접 전기를 거래하는 전력구매계약(PPA)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물 없는 수영장 된 데이터센터, 해법은 PPA
이해민 조국혁신당 의원실이 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한 ‘AI 데이터센터의 현실적인 전력공급 방안 토론회’에서는 전력 수급 문제로 고민 중인 국내 AI 데이터센터 산업 실태가 드러났다. 토론회에 참석한 민간 전문가들과 기업 관계자들은 AI 데이터센터가 일반 데이터센터보다 훨씬 많은 전력을 소모함에도 현재 전력 공급 인프라는 이러한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입을 모았다.
조정민 SK브로드밴드 부사장은 “GPU는 확보할 수 있지만 이를 가동할 전력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데이터센터는 껍데기에 불과하다”며 “수영선수에게 물이 없는 수영장을 제공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유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박종배 건국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전력구매계약(PPA) 활성화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박 교수는 “국내 데이터센터의 약 70%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고, 호남권 및 제주권은 재생에너지 공급 과잉 지역이므로 비수도권으로 분산이 필요하다”며 “AI 데이터센터와 인근 발전기 간 직접 구매를 허용해 송전망 건설 부담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전력 확보를 기술 경쟁력의 핵심 변수로 보고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메타(Meta)는 비스트라, 오클로, 테라파워 등 주요 에너지 기업들과 2035년까지 총 6.6GW 규모의 원자력 발전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대형 원전 5~6기에 맞먹는 용량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24년 스리마일섬 원전 1호기 재가동 계약을 맺었다. 아마존은 최근 5년 연속 세계 최대 재생에너지 구매자로 자리매김했고, 2024년에는 원전 인근에 위치한 탈렌에너지 데이터센터를 인수해 PPA를 체결했다. 구글 역시 ‘실시간 무탄소 에너지 사용’이라는 문샷 목표 아래 PPA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들은 재생에너지뿐 아니라 원자력 발전으로까지 PPA의 범위를 넓히며 에너지 조달 안정성을 확보하고 있다. 글로벌 빅테크에게 에너지는 이제 단순히 비용이 아니라 AI 주권을 좌우하는 전략 자산이 됐다.
#우리나라는 ‘재생에너지’만 PPA 가능
반면 한국의 PPA 제도는 여러 제약에 묶여 활성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행법상 직접 계약은 재생에너지만 가능하도록 규정했으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2024년 기준 10.6%로 OECD 평균(32%)에 크게 못 미친다. 데이터센터 수요자로서는 여전히 한국전력 전기요금 체계가 더 경제적인 경우가 많다.
2024년 6월 시행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은 분산에너지 특화지역에서 재생에너지 외에도 집단에너지(LNG 포함), 중소형 원자로(SMR) 사용을 허용했다. 그러나 아직 관련 고시가 제정되지 않아 실제 계약 사례는 없는 상황이다. 데이터센터 업계 관계자는 “강원이나 전남에서 PPA를 추진하려 해도 고시가 없어 불가능하다는 답을 받는다”고 전했다.
임장혁 기후솔루션 연구원은 “현 제도로는 여러 발전사업자와 여러 수요자가 계약하는 ‘N 대 N’ 구조가 불가능하다”며 “발전사업자가 다양한 상품을 만들고 수요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AI 데이터센터 특별법’ PPA 물꼬 틀까
AI 데이터센터 전력 문제를 해결할 입법적 대안도 제시됐다. 이해민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진흥에 관한 특별법’은 전력 계통 여유가 있는 비수도권에 데이터센터를 구축할 경우 발전사업자가 직접 전기를 공급할 수 있도록 ‘직접 전력거래 특례’를 부여하는 내용을 담았다. 인허가 타임아웃제 도입, 전력계통영향평가 면제 등도 포함됐다.
다만 PPA 확대를 둘러싼 ‘체리피킹’ 논란은 여전하다. 대형 데이터센터가 한전 체제를 이탈해 저렴한 전기를 직접 구매할 경우, 전력망 유지 비용이 결국 국민 부담으로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다. 이 때문에 에너지 당국은 PPA 확대에 신중한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AI 산업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망 이용료 현실화와 투명한 비용 분담 모델을 통해 PPA를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에너지 확보 전략이 곧 AI 경쟁력으로 직결되는 시대, 한국의 선택지가 시험대에 올랐다.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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