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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우주배경복사가 갑자기 달라졌다?!

저주파 관측 결과 3배 이상 더 강한 쌍극자 포착…퀘이사가 한쪽에 쏠려있거나 우주 물리법칙이 틀렸거나

2026.02.09(Mon) 17:45:36

[비즈한국] 매끈매끈하다, 매끈매끈한. 푱푱하다, 푱푱한. 울퉁불퉁하다, 울퉁불퉁한. 카니가 한국어 시험을 대비해 공부하면서 읊조린 한마디가 한동안 사람들의 귓가를 맴돌았다. 그의 남다른 리듬 감각이 한몫했을 것이다. 그런데 난 그의 노랫말을 듣자마자 생뚱맞은 게 떠올랐다. 우주배경복사다. 카니의 노래는 놀라울 정도로 우주배경복사의 본질을 담고 있다. 

 

우주배경복사는 매끈매끈하고, 평평하며, 울퉁불퉁하다. 

 

 

우주배경복사는 빅뱅 우주론의 가장 강력한 증거다. 빅뱅 우주론에 따르면, 우주는 태초에 지금보다 훨씬 높은 밀도로 뭉쳐 있었다. 그만큼 우주는 훨씬 뜨거웠다. 그런데 우주가 갑작스럽게 팽창을 시작했고, 우주의 열기가 사방에 고르게 퍼지면서 식었다. 현재 우주는 절대영도보다 겨우 2.7도 더 높은 아주 낮은 온도로 식어 있다. 빅뱅 직후 뜨거웠던 우주가 품고 있던 열기가 고르게 퍼지고 식으면서 남은 그 잔열의 흔적이 바로 우주배경복사다. 

 

1964년 물리학자 펜지아스와 윌슨은 벨 연구소에서 쓰던 소라껍데기 모양의 안테나에서 이해할 수 없는 잡음을 포착했다. 그 잡음은 아주 약했지만, 하늘 전역에서 모든 방향에서 고르게 포착되었다. 한동안 그들은 정체를 알지 못했지만, 결국 그 신호가 지구도 아니고 우주 자체에서 나오는 신호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처음에 펜지아스와 윌슨이 포착한 우주배경복사는 아주 매끈매끈하다. 우주 전체가 완벽하게 동일한 온도로 고르게 식어있음을 보여준다. 이 매끈매끈함은 우주가 정말 빅뱅 우주론이 말하는 대로, 아주 균일하고 등방하게 우주 전체가 팽창해왔음을 보여준다. 

 

또한 현재 우주가 식은 정도는 우주가 그동안 얼마나 빠르게 팽창했는지를 보여준다. 우주의 운명은 우주를 채우는 물질에 의한 중력, 그리고 우주를 더 팽창시키려는 암흑 에너지의 양에 따라 결정된다. 우주는 경계가 없고 크기도 없다. 그래서 우주의 물질과 에너지는 그 밀도로 표현한다. 우주의 밀도가 너무 높으면 중력이 거세지고 우주는 붕괴한다. 우주의 밀도가 너무 희박하면 우주는 진작 걷잡을 수 없는 팽창과 함께 흩어졌을 것이다. 

 

우주배경복사의 미세한 온도 요동을 보여주는 그림.

 

우주배경복사 관측은 우주가 놀랍도록 정교한 세계라는 것을 보여준다. 지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딱 그 중간의 임계밀도만큼 우주의 물질과 에너지가 채워져있다. 일반물질과 암흑물질이 이 전체 임계밀도의 30%를 차지하고, 암흑에너지가 나머지 70%를 차지한다. 그래서 모두 합해서 완벽하게 임계밀도를 채운다. 이것은 우주 시공간이 완벽하리만큼 평평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주 시공간은 평평하다. 다시 말해 곡률이 없다. 우주에서 빛은 휘어지지 않고 항상 곧게 날아간다는 뜻이다. 우주배경복사는 우주가 매끈매끈할 뿐 아니라, 평평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펜지아스와 윌슨의 첫 관측 이후, 이제 천문학자들은 더 민감한 우주망원경으로 우주배경복사를 관측한다. 지구 전파의 방해를 받지 않고, 훨씬 깨끗하게 우주의 잔열이 분포하는 지도를 그렸다. 가장 최근 플랑크 위성이 그린 지도를 보면 이제 우주배경복사는 마냥 매끈매끈하게 보이지 않는다. 자글자글하고 울퉁불퉁한 모습이 드러난다. 평균에 비해 십만 분의 1도라도 온도가 높거나 낮다면 빨갛고 파랗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즉 우주배경복사는 크게 보면 매끈매끈하지만, 아주 작은 차이까지 예민하게 들여다보면 울퉁불퉁한 차이가 두드러진다. 

 

이 울퉁불퉁한 온도의 차이는 곧 초기 우주의 밀도 차이를 대변한다. 어딘가 우연히 주변보다 밀도가 살짝 높거나 낮았다. 이 작은 밀도의 차이는 작은 중력의 차이를 만든다. 밀도가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점차 물질이 많이 모여들어 결국 더 강한 중력을 만들고, 더 많은 물질이 모여든다. 그렇게 그곳을 중심으로 은하가 탄생하고, 은하단이 빚어진다. 더 예민한 망원경으로 그린 우주배경복사에서 확인되는 울퉁불퉁한 온도 요동, 즉 밀도 요동은 오늘날의 우주 거대구조를 만든 은하의 씨앗 역할을 했다. 

 

이렇게 카니가 노래한 세 가지 표현, 매끈매끈하고, 평평하고, 울퉁불퉁한 것은 정확히 우주배경복사가 말하는 우주의 특징에 부합한다. 천문학자의 입장에서 카니는 의도치 않게 가장 완벽한 우주 진화를 노래한 셈이다. 우주배경복사는 이제 우리의 빅뱅 우주론을 완벽하게 설명하고 증명한다. 하지만 아직 풀리지 않는 유명한 미스터리도 남아 있다. 

 

우주배경복사의 쌍극자 방향을 표현한 그림.

 

우주배경복사는 결국 사방의 우주에서 쏟아지는 전파, 빛을 관측하고 그것을 지도로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빛을 관측할 때는 중요한 문제가 있다. 관측자 스스로의 움직임도 그 빛을 관측할 때 영향을 준다. 우리가 빠르게 나아가는 쪽의 빛은 파장이 더 짧아지는 방향으로 도플러 효과를 겪고, 반대로 우리가 멀리 떠나가는 쪽의 빛은 파장이 더 길어지는 방향으로 도플러 효과를 겪는다. 각각을 청색이동, 적색이동이라고도 부른다. 

 

지구는 태양 곁을 맴돌고, 태양도 은하계를 크게 맴돈다. 우리 은하도 함께 있는 다른 주변의 은하들과 함께 우주 공간을 빠르게 움직인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우주에서 멈춰 있지 않은 관측자다. 그래서 우리가 우주배경복사를 보는 동안 우리는 절반의 하늘을 향해 나아가고, 절반의 하늘은 계속 등 뒤로 멀어지게 된다. 절반은 청색이동을, 나머지 절반은 적색이동을 겪는다. 실제 우주배경복사를 관측하면 이것이 그대로 반영된다. 그래서 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절반은 붉게, 절반은 푸르게 표현된다. 그래서 이를 우주배경복사의 쌍극자라고도 부른다. 

 

누군가는 이 모습을 보고 태극무늬 같다고 이야기하는데, 태극과는 아무 상관없다. 그냥 우주의 절반이 평균보다 더 뜨겁게, 나머지 절반은 더 차갑게 보인다는 걸 보여줄 뿐이다. 입체적인 구의 형태로 관측되는 우주를 평면 지도로 그리려다보니 타원 모양으로 찌그러지게 되었고, 또 우주배경복사에 대해 지구가 나아가는 방향이 은하수 원반에 대해 크게 기울어져 있는데 이 그림은 은하수를 x축에 나란하게 표현하다보니, 뜨겁게 변한 우주와 차갑게 변한 우주의 방향이 약간 틀어져서 표현되면서 마치 태극처럼 보일 뿐이다. 

 

어쨌든 이렇게 반반씩 청색이동과 적색이동을 겪는 우주배경복사 관측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올라탄 이 지구가 우주배경복사에 대해 360km/s의 꽤 빠른 속도로 고공 비행 중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것은 우리 스스로의 움직임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우주배경복사가 아니라, 사실상 우리 입장에서는 거의 정지해있다고 봐도 무방한 아주 아주 먼 거리의 배경 은하를 기준으로 측정해도 이 값은 비슷하게 나와야 한다.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관측은 예상 밖의 결과를 보여준다. 만일 우리가 우주 공간을 가로질러 한쪽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중이라면, 우리는 나아가는 쪽에서 더 많은 수의 은하를 볼 수 있게 된다. 그쪽으로 빛이 더 밝아지는 도플러 효과, 그리고 진행 방향 쪽으로 빛이 휘어지면서 보이게 하는 일종의 광행차 효과가 함께 섞여 벌어지기 때문이다. 이번 분석에서 천문학자들은 저주파 전파를 관측하는 LOFAR 전파 망원경을 활용해 아주 먼 우주 끝자락의 퀘이사와 같은 전파 은하들의 섬광을 관측하고, 그 수를 통계적으로 분석했다. 

 

그러자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기존의 우주배경복사만으로 유추한 것보다 무려 3배 이상 더 강한 쌍극자가 드러났다. 다시 말해 우리가 원래 예상한 것보다 거의 세 배 더 빠른 속도로 우주공간을 질주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당황스러운 결과를 설명할 수 있는 건, 크게 두 가지뿐이다. 우리의 기대와 달리 우주 끝자락에 분포하는 퀘이사가 고르게 분포하지 않고, 유독 한쪽 방향에 쏠려 분포하는 비등방성을 갖고 있거나, 또는 우주거대구조의 형성 과정에 대한 근본적인 물리 법칙을 처음부터 뜯어고쳐야 한다는 뜻일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두 가지 해석 모두 우리의 기대를 벗어난다. 

 

참고

https://journals.aps.org/prl/abstract/10.1103/6z32-3zf4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세종대학교 자유전공학부 조교수로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 ‘날마다 우주 한 조각’, ‘별이 빛나는 우주의 과학자들’, ‘갈 수 없지만 알 수 있는’, ‘우주를 보면 떠오르는 이상한 질문들’ 등의 책을 썼으며, ‘진짜 우주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나는 어쩌다 명왕성을 죽였나’, ‘퀀텀 라이프’, ‘코스미그래픽’ 등을 번역했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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