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우주거대구조의 필라멘트 사이에 아무것도 없이 거대하게 텅 빈 공간이 있다. 보이드다. 수억 광년 너비에 이르는 거대한 공간 안에 은하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것이 목동자리 보이드다. 지름 3억 광년에 이르는 거대한 공간에 보통은 은하 2000~3000개는 있어야 하지만, 그 안에서 은하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천문학자 그레고리 앨더링은 만약 우리가 이런 거대한 보이드 한가운데에 살고 있었다면, 1960년대가 되도록 우리 은하 바깥에 다른 은하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았을 거라 이야기했다. 은하를 단위로 우주의 진화를 연구하는 은하 천문학자로서 정말 끔찍한 이야기다.
그런데 이 황량한 보이드 한복판에서 발견된 아주 미스터리한 은하가 있다. 국부 보이드에서 발견된 왜소한 은하 NGC 6789다. 겉보기엔 볼품없어 보이는 작고 왜소한 불규칙한 은하처럼 보이지만, 이곳은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가장 놀라운 미스터리를 품고 있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이 휑한 보이드에서 별이 폭발적으로 탄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은하 NGC 6789의 존재는 일찍이 1983년부터 알려졌다. 지구에서 1200만 광년 떨어진 이 은하는 크기는 작지만 선명한 푸른빛을 띠고 있다. 그 안에서 아주 어린 별들이 폭발적으로 태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은하를 푸르고 밀도가 높은 작은 은하라는 뜻에서 Blue Compact Dwarf Galaxy, BCD라고 부른다.
이 작은 은하는 전체 질량의 4%에 달하는, 거의 태양 질량의 1억 배에 달하는 아주 많은 별이 지난 6억 년 사이에 태어났다. 이 정도면 폭발적인 별 탄생 은하를 가리키는 스타버스트 은하라 부를 만하다. 문제는 이렇게 별이 많이 생기려면 지속적으로 주변에서 새로운 가스 물질이 공급돼야 하는데, 이 은하는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다.
보통 은하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는 공간에서는 은하들이 서로 부딪치고 충돌할 때, 한꺼번에 많은 가스 물질이 유입된다. 그러면서 오랫동안 별이 별로 태어나지 않고 잠잠하게 늙어가던 은하들도 오랜만에 푸르고 선명한 빛을 뿜어내며 회춘하는 듯한 시기를 겪기도 한다. 자신의 크기에 맞먹는 비슷한 규모의 은하와 충돌할 때, 또는 훨씬 작은 위성은하가 통째로 자신을 향해 달려들 때, 은하가 품고 있던 가스 물질의 밀도가 빠르게 증가해 효율적으로 새로운 별을 만들어낸다. 어쨌든 새로운 별이 지속적으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은하 안에 높은 밀도로 가스가 반죽되고 뭉쳐지는 조건이 만들어져야 한다. 보통은 은하 간 상호작용, 은하끼리의 충돌이 이런 변화를 일으킨다.
하지만 NGC 6789는 그런 흔적을 보이지 않는다. 적어도 기존 관측에선 별다른 충돌의 흔적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더 깊게 NGC 6789 일대를 바라보기 위해, 마치 쌍안경처럼 생긴 2m 쌍둥이 망원경(TTT, Two-meter twin telescope)를 활용해 NGC 6789를 겨냥했다. 기존 관측에선 흐릿한 NGC 6789의 중심부만 볼 수 있었지만, 더 깊은 관측을 통해 NGC 6789 주변에 넓게 퍼진 별빛의 흔적까지 세밀하게 담아냈다.
이번 추가 관측에서도 NGC 6789는 별다른 충돌의 징후를 보이지 않는다. 은하 외곽의 더 흐릿한 영역까지 더 넓게 퍼진 모습을 확인했지만 은하 가장자리는 그저 둥글게 퍼진 왜소 타원 은하의 형태를 하고 있을 뿐이다. 은하가 비교적 최근에 다른 작은 은하와 충돌하거나 스쳐지나가면서 중력 상호작용을 했음을 보여주는 별이 길게 이어진 조석 꼬리, 별이 둥근 껍질 형태로 퍼지는 구조 등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번 추가 관측을 통해 NGC 6789은 최근에 별다른 충돌을 단 한 번도 겪지 않은 완벽하게 고립된 은하였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그렇다면 대체 NGC 6789는 어디에서 신선한 가스를 공급받는 것일까? 어쩌면 NGC 6789는 우주거대구조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뒤집는 계기가 될지 모른다. 사실은 보이드가 완전히 텅 빈 공간이 아니라면? 그 안에 밝게 빛나는 별들로 채워진 은하는 없더라도, 일반적인 광학 관측에선 모습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가스 구름, 가스 필라멘트가 가득 채워져 있다면? 우연히 NGC 6789가 가스 필라멘트 주변에 있었고, 그로부터 지속적으로 가스가 유입되는 가스 강착(gas accretion)이 꾸준히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면 NGC 6789의 이상하리만큼 높은 별 탄생율이 설명된다.
실제로 이 은하는 별들이 지속적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치곤 화학 조성에서는 무거운 금속 원소의 함량이 비교적 낮게 나온다. 이 작은 은하를 향해 외부에서 지속적으로 신선하고 새로운 가스 물질이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은하 안에서 새로운 별이 탄생하고 초신성이 터지면 계속 금속 원소로 오염되어야 하지만, 바깥에서 신선한 가스가 꾸준히 유입되면서 금속 원소가 희석될 수 있다. 이렇게 은하를 향해 주변 우주거대구조를 따라 차갑고 신선한 가스 물질이 유입되는 것을 차가운 가스 강착(Cold gas accretion)이라고 한다. 이는 은하가 한창 빚어지던 먼 옛날 초기 우주에서 초기 은하들에게 폭발적인 별 탄생을 일으킨 주요 원인으로 추정한다. 어쩌면 NGC 6789는 여전히 그 모습을 비슷하게 보여주는 놀라운 현장일지 모른다.
NGC 6789는 은하가 새로운 별을 꾸준히 만들어내고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다른 은하와의 상호작용, 충돌이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무도 없는 텅 빈 보이드 한복판에서도 은하는 홀로 살아남을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가스 필라멘트의 도움을 받아 거기서 유입되는 가스 물질을 집어삼키며 외롭지만 찬란한 자신만의 시간을 이어나간다. 이건 우리에게 아주 놀라운 단서를 제공한다.
만약 이 가설이 사실이라면 NGC 6789는 우주가 태어난 이래로 단 한 번도 때 묻지 않은 가장 순수한 가스 물질을 집어삼키는 현장이 된다. 텅 빈 보이드에서는 별다른 은하가 없기에 그 안에서 초신성이 터지면서 가스 물질이 오염될 일도 없었다. 보이드를 채운 가스 물질은 우주가 탄생하던 그 순간의 성분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가스 물질의 화학 성분을 파악하고 어떻게 분포하고 흘러가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면, 우리는 빅뱅 직후 우주가 가장 순수하던 시절의 모습을 추억할 수 있게 된다. 마치 태양계 끝자락에 얼어붙은 소행성과 혜성에서 태양계가 처음 형성되던 당시의 순수한 흔적을 찾아내고 태양계의 유년기를 상상하듯, 우리는 보이드를 채우고 있을지 모르는 순수한 가스 물질을 통해 우주의 가장 어린 시절, 그 유년기의 끝을 상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참고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2515-5172/ae1cbe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세종대학교 자유전공학부 조교수로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 ‘날마다 우주 한 조각’, ‘별이 빛나는 우주의 과학자들’, ‘갈 수 없지만 알 수 있는’, ‘우주를 보면 떠오르는 이상한 질문들’ 등의 책을 썼으며, ‘진짜 우주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나는 어쩌다 명왕성을 죽였나’, ‘퀀텀 라이프’, ‘코스미그래픽’ 등을 번역했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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