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한·미 간 관세 협상이 타결됐다. 미국이 8월 1일(현지시각)부터 모든 한국산 제품에 부과하기로 예정된 25%의 관세율이 적용 이틀을 앞두고 15%로 최종 확정됐다. 영국(10%)보다는 높지만 한국에 앞서 관세협상이 타결된 EU(유럽연합), 일본과 같은 수준이며 필리핀(19%), 베트남(20%)보다는 낮다.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이번 관세협상의 최대 수혜는 조선업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한국과 미국 간 무역협정 합의 소식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대한민국과 무역협정에 완전히 합의했다는 소식을 전하게 돼 기쁘다”면서 “한국이 미국과의 무역에 완전히 개방적이며 자동차와 트럭, 농산물 등 미국산 제품을 수용하기로 했다”고 적었다.
이재명 대통령도 페이스북에 “이번 협상으로 정부는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미국 관세를 주요 대미 수출 경쟁국보다 낮거나 같은 수준으로 맞춤으로써 주요국들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대통령실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구체적인 협상 결과를 발표했다. 한국은 총 3500억 달러(487조 원) 규모의 미국 투자 펀드를 조성할 예정이다. 투자 펀드에서 발생한 수익의 90%를 미국이 갖기로 했는데 이는 일본과 동일한 수준이다. 앞서 일본은 미국과 관세 협상에서 5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으며 한국과 마찬가지로 투자 수익의 90%를 미국이 챙기기로 했다.
이번 관세 협정으로 조선업계가 가장 수혜를 볼 것으로 전망된다. 투자 펀드의 40%가 넘는 1500억 달러가 조선 분야에 활용될 예정이어서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한·미 조선협력 펀드 1500억 달러는 선박 건조, MRO(유지·보수·정비),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한다”고 말했다.
조선은 이번 관세 협상 기간 미국이 가장 큰 관심을 보인 분야 중 하나다. 이에 정부 협상단은 지난 25일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관세 협상에서 국내 민간 조선사의 미국 투자는 물론, 이를 지원하는 보증과 대출 등의 금융혜택이 포함된 수십조 원 규모의 ‘마스가(MASGA)’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마스가는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라는 뜻을 담고 있다.
한국은 지난해 기준 중국에 이은 선박 신규 수주 점유율 2위 국가다. 반면 미국은 점유율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어 트럼프 정부는 조선업 재건을 주요 목표로 내걸었다. 이번 관세협정을 통해 국내 조선의 미국 진출에 힘이 실리게 된 것이다.
김용민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한화가 인수한 필리조선소를 비롯한 미국 현지 조선소들은 시설 노후화로 대규모 CAPEX(자본적 지출)가 절실한데 국책은행 지원으로 노후 조선소 현대화가 가속화될 수 있다”면서 “대미투자 관점에서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태도를 유지한 HD현대 산하 조선업체들도 향후 미국 조선업 진출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고 전망했다.
투자 펀드의 나머지 2000억 달러는 반도체와 원전, 2차전지, 바이오 등 분야를 위해 조성된다. 투자와 별도로 앞으로 3년 6개월 동안 1000억 달러 규모의 미국의 LNG(액화천연가스)와 다른 에너지 상품도 구매할 것으로 알려졌다. 구입처를 중동에서 미국으로 변경하고 기존에 구매하던 규모여서 큰 부담은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관세 협정에서 타결된 관세율 15%는 일반 수출품목에 일괄 적용된다. 상호관세가 타결되면서 이와 별도로 품목별 관세가 부과되는 분야에 어느 정도의 관세가 적용될지 관심이 쏠린다.
먼저 주력 수출품목 중 하나인 자동차에 대해서는 관세율 15%가 적용될 예정이다. 지난 4월3일부터 관세율 25%가 적용 중이었던 만큼 자동차업계는 한시름 덜게 됐다.
다만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체결 이후 관세율 0%를 적용받아왔던 것과 비교하면 한국 자동차의 가격 경쟁력 약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과 동일한 15%의 관세를 적용받게 됐지만 일본은 과거 미국과 FTA 협정에서 관세율 2.5%를 적용받아왔기 때문에 이번 관세협정을 통해 한국 자동차는 이전과 비교해 일본보다 2.5%의 관세가 더 붙는 결과가 됐다.
반도체와 의약품에 대해서는 다른 국가와 비슷한 수준으로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 실장은 “반도체와 의약품 품목관세는 최혜국 대우를 받는 것으로 적시했다”고 설명했다. 당초 트럼프 대통령은 반도체에 25%, 의약품에 최대 200%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이후 EU와는 관세율 15%에 합의했다. 따라서 최대 관세율은 15%가 될 것으로 보인다.
농산물에 대해서는 한·미간 미묘한 시각 차이가 드러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농산물의 완전한 개방을 언급했지만 대통령실은 쌀과 소고기 시장에 대해서는 추가 개방하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밝힌 상황이다.
김 실장은 “국내 농산물 제품의 99.7%가 개방돼 있고 10개 내외의 종목만 유보돼 있다”면서 “쌀과 소고기가 유보돼 있지만 우리가 미국 소고기 제1 수입국이라는 점을 많이 공감해 줬다”고 부연했다.
이 밖에 철을 비롯해 구리, 알루미늄 등 철강 분야에 대해서는 기존 관세율 50%가 유지될 전망이다.
이번 관세협상 결과를 놓고 증권업계에서는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정여경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대미투자와 미국산 제품 구매금액을 기준으로 보면 한국은 협상을 잘한 것으로 해석된다”면서 “EU, 일본과 동일한 관세율이 적용돼 국내 수출에 불리했던 요인이 제거됐을 뿐만 아니라 자동차 품목관세율 인하로 자동차 수출 낙폭은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기타 품목은 기본관세 10%에 관세율 5%p(포인트)가 추가되기에 하반기 수출은 상반기보다 둔화될 수 있다”고 바라봤다.
임재균·이정욱 KB증권 연구원 역시 “관세 협상이 마무리되고 불확실성이 완화되면서 소비 및 기업심리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최영찬 기자
chan111@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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