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대산 1호’ 프로젝트 승인을 계기로 국내 석유화학 산업의 본격적인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정부와 업계는 이번 구조조정을 통해 공급과잉 문제를 해소하고, 고부가가치·친환경 산업으로 체질을 개선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탄소 중립을 위한 실질적인 산업 전환 대책이 미흡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구조조정이 단순한 생산량 감축에 머물지 않고 진정한 ‘전환’으로 이어지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짚어본다.
#LNG에 의존하게 되면 글로벌 규제에 뒤처져
정부는 2월 25일 대산 1호 프로젝트 참여 기업을 위한 대규모 지원 패키지를 발표했다. 이번 사업재편의 핵심은 롯데케미칼이 대산 사업장을 분할해 HD현대케미칼과 합병하고, 110만 t 규모의 NCC(나프타 분해시설) 가동을 중단하는 것이다. 주주사인 HD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은 각각 6000억 원씩 총 1조 2000억 원의 자구 노력을 이행해 재무 건전성을 높이고, 정부는 이에 화답해 금융·세제·원가 절감 등을 아우르는 2조 1000억 원 이상의 맞춤형 지원을 제공하기로 했다.
정부는 사업재편을 통해 온실가스 저감량을 2025년 27만 t에서 2035년 210만 t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기후 관점의 전환 노력이 미흡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현재 방안으로는 생산량 축소에 따른 자연 감소분 외에 뚜렷한 탄소 감축 방안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원 패키지에 포함된 원가 절감 방안이 오히려 화석연료 의존도를 고착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정부는 분산에너지특구 제도를 활용해 한국전력 대비 4~5% 저렴한 전기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행 ‘분산에너지법’에는 LNG 열병합 발전도 분산에너지원에 포함된다. 기업들이 비용 절감을 이유로 재생에너지 PPA(전력구매계약) 대신 LNG 발전을 택할 경우, 장기적으로 탄소 감축과는 거리가 먼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
연료용 LNG 직도입 설비 범위 확대도 화석연료 의존도를 심화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정부는 기업의 연료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기존 NCC 설비에만 허용하던 직도입 LNG 사용을 혼합 자일렌(MX, Mixed Xylene) 등 일부 다운스트림 설비까지 확대한다고 밝혔다.
LNG 공급 계약은 통상 10년 이상 장기 계약으로 체결되는 경우가 많아, 한번 도입하면 중도에 탄소 배출 구조를 바꾸기 어려운 ‘잠금 효과(Lock-in effect)’가 발생할 수 있다. 기업이 전기화 설비 투자보다 저렴해진 LNG 연료에 안주한다면, 갈수록 강화되는 글로벌 탄소 규제에 뒤처질 위험이 크다.
비영리 에너지기후정책 싱크탱크 ‘넥스트’의 김수강 연구원은 “기존 공정을 전기화하는 설비에 투자하지 않고 LNG에만 의존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탄소 배출 감축에 소극적인 전략”이라며 “현재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만 봐도 LNG 가격이 장기적으로 안정적일 것이라 전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원료 대체만으론 ‘한계’
이번 프로젝트의 친환경 전략은 바이오 나프타, 폐플라스틱 재활용, 에탄 도입 등 원료 대체 중심으로 짜여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법은 현실적인 벽이 여럿이다.
동·식물성 유지와 바이오매스 등의 원료는 수급이 불안정하고 수입 의존도가 높아 공급망 관리에 취약하다. 바이오매스 유래 원료 및 소재 개발 기술의 상용화 시점도 2030~2040년대로 전망되는 만큼, 당장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등 화학적 재활용 기술 역시 대규모 상용화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여기에 전 세계적인 일회용품 사용 제한 정책으로 플라스틱 수요가 급감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원료 대체를 통한 친환경 제품 생산이 안정적인 수익과 수요로 이어질지도 불투명하다.
기존 나프타 대비 탄소 배출을 최대 50%까지 낮출 수 있는 에탄 분해 공정(ECC)도 생산 측면에서는 한계를 안고 있다. ECC는 기존 NCC에 비해 생산 가능한 제품군이 단순하다. NCC가 다양한 기초 유분은 물론 방향족 계열 제품까지 아우르는 폭넓은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 있는 반면, ECC에서는 방향족 화학 제품 생산이 불가능하다. 탄소 배출 저감 측면에서는 유리하지만, 이번 구조조정이 목표로 하는 고부가가치 제품 다각화에는 제약이 따른다는 얘기다.
#탄소 절감 위해 공정 혁신 필요
이번 지원안의 가장 큰 허점은 공정의 근본적인 탈탄소화를 이끌 기술적 대안이 빠져 있다는 점이다. 석유화학 산업 온실가스 배출의 약 70%는 NCC에서 발생한다. 섭씨 800도 이상의 고온에서 나프타를 분해하기 위해 막대한 양의 화석연료를 태워야 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친환경 전환을 위해서는 이 공정의 연료를 전기로 대체하는 ‘NCC 전기화’가 핵심 과제다. 기후에너지환경부의 ‘2035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계획에서도 NCC 전기화가 주요 과제로 명시됐지만, 정작 실행 단계인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빠졌다.
해외 주요 석유화학 기업들은 이미 NCC 전기화 기술을 파일럿·실증 단계까지 끌어올렸다. 독일 바스프(BASF), 사우디아라비아 사빅(SABIC), 영국 린데(Linde) 등 세 기업은 2021년 공동 개발·실증 협약을 체결한 데 이어, 2024년에는 세계 최초로 대규모 전기 가열로 파일럿 플랜트를 준공하고 운영에 들어갔다. 미국 다우(Dow)와 유럽 쉘(Shell)도 2022년부터 전기 가열로 실험 장치(e-cracker)를 구축해 가동하고 있다.
김아영 기후솔루션 석유화학팀 연구원은 “바스프는 실증을 통해 기술적 제약이 없음을 확인하고 이제 경제성을 따지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며 “반면 한국은 아직 실험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말했다.
산업용 히트펌프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산업용 히트펌프는 폐열을 흡수한 뒤 전기로 온도를 높여 공정에 필요한 열원으로 활용하는 설비로, 이미 상업화 단계에 있어 현장에 즉각 도입할 수 있다. 그만큼 석유화학 산업의 단기적이고 안정적인 탈탄소화를 이끌 실용적인 수단으로 주목받는다.
전문가들은 원료 대체는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수단에 불과하다고 입을 모은다. 탄소 배출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공정 부문의 혁신 없이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이 요원하다는 것이다. 이번 지원 패키지가 기업들의 단기적인 경영난 해소에는 기여할 수 있겠지만, 기후 위기 시대에 걸맞은 산업 경쟁력을 갖추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석환 기후솔루션 석유화학팀장은 “대산 1호는 과잉 생산 해소에 초점을 맞춘 부담 완화책에 그치고 있다”며 “진정한 산업 경쟁력을 갖추려면 탄소 절감을 위한 실질적인 전환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민호 기자
goldmino@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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