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바르셀로나, 3월 초. 전 세계 통신 산업이 모이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피라 그란 비아(Fira Gran Via) 전시장은 최신 폰보다 통신 업계에서 발표하는 ‘새 질서’가 더 크게 느껴지는 공간이다. 올해 MWC 2026는 20주년이 되는 기념적인 해로 새로운 질서를 정의하는 주요 아젠다가 무엇일지 세계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그런데 지난 주말 갑작스럽게 이란-이스라엘 전쟁이 일어나면서 행사 시작부터 긴장감이 돌았다. 펠리페 6세 스페인 국왕도 행사장에서 신기술이 아닌 전쟁을 먼저 언급했다. “이 순간에도 중동은 다시 한번 중대한 국면에 처해 있으며, 지역적 분쟁 확대의 명백한 위험이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기술이 분열이 아닌 연결, 배제가 아닌 발전, 대립이 아닌 평화를 위한 도구로 활용될 수 있기를 바란다”는 말로 전시의 시작을 알렸다. 이 발언이 올해 MWC의 분위기를 상징했다.
지난달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전쟁의 파장은 바르셀로나 현장까지 직접 미쳤다. 중동 영공이 폐쇄되면서 카타르항공, 에미레이트항공, 에티하드항공 등 주요 노선이 잇따라 취소됐고, 이란·UAE·카타르 등 중동 유관 기업들의 부스는 상당수 빈자리로 남았다. 매년 중동 통신사와 테크 기업들의 대형 부스로 채워졌던 자리는 올해 현수막만 걸린 채 참가자를 맞지 못했다. 세계이동통신사업자연합회(GSMA) 사무총장 비벡 바드리나트는 개막 당일 패널 토론에서 “우리의 마음은 분쟁의 영향을 받은 모든 이들과 함께한다”고 위로의 말을 전했다. 기술 혁신을 논하는 행사에서 전쟁이 의제의 첫 줄을 차지한 셈이다.
그럼에도, 아니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올해 MWC의 핵심 메시지는 더 선명하게 부각됐다. 스마트폰이 ‘AI를 담는 그릇’이었다면, 이제 통신망 자체가 AI가 되는 방향으로 간다는 것. 그리고 그 변곡점을 상징하는 발표가 바로 독일의 대표 통신사 도이치텔레콤(Deutsche Telekom)의 ‘통화용 AI 어시스턴트’였다.
#“Hey Magenta” 전화 통화에 AI가 끼어드는 순간
도이치텔레콤이 공개한 마젠타 AI 통화 어시스턴트(Magenta AI Call Assistant)는 구조부터 흥미롭다. 보통 AI 기능은 앱(메신저·회의툴)이나 특정 고급 디바이스(이어버드·최신폰)에 붙는데, 도이치텔레콤은 반대로 ‘네트워크 레벨’에 기능을 심겠다고 선언했다. “앱도, 최신 스마트폰도 필요 없다. 오래된 피처폰으로도 된다”는 주장 자체가 유럽 통신사가 원하는 시장 확장 방식, 즉 보급형까지의 확산 방향성을 보여준다.
기능은 직관적이다. 통화 중 실시간 번역(12개월 내 50개 언어 목표), 통화 종료 후 텍스트 요약, 통화 중 필요 시 항공편·호텔·스포츠 등 정보 탐색이 가능하다. 호출 방식도 상징적이다. 통화 중 “헤이 마젠타(Hey Magenta)”라고 말하면 AI가 ‘세 번째 참가자’처럼 들어와 음성으로 응답한다. 도이치텔레콤은 음성 AI 기업 일레븐랩스(ElevenLabs)와 협력해 이 서비스를 구현한 것으로 알려진다. 일레븐랩스는 지난 2월 5억 달러(7388억 원) 규모의 시리즈 D 투자를 유치해 기업가치 110억 달러(16조 2500억 원)를 인정받은 영국의 AI 스타트업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UX보다 권력의 이동이다. 그동안 AI 기능의 ‘관문’은 OS 기업(애플·구글)과 단말 제조사였다. 그런데 이제 통신사가 “네트워크에 AI를 심어서 누구에게나 배포할 수 있다”고 선언한 것이다. 유럽이 강점을 갖는 영역인 ‘규제 준수, 통신 인프라, 데이터 주권’이 AI 시대에도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신호다.
#개인정보·동의·EU 처리: ‘유럽식 AI’의 조건
도이치텔레콤은 도청·감시·데이터 유출과 같은 우려에 대해 “사용자가 호출해야 작동하며, 법과 윤리를 지킨다”는 프레임으로 방어했다. 통화 요약을 위해 녹음이 동반될 경우에도 처리 후 삭제, EU 내 데이터 처리, 독일에서 먼저 시작 같은 문구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 점은 유럽 시장에 진입하려는 스타트업에게 기회인 동시에 도전이다. 기회 측면에서 보면 ‘EU 규제·동의 설계·데이터 거버넌스’를 제품 경쟁력으로 바꿀 수 있다. 반대로 도전이자 부담 측면에서 보면 동의(consent), 투명성, 저장·삭제 정책을 제대로 설계하지 못하면 제품 자체가 시장에 들어갈 수 없다는 뜻이다. 즉 유럽에서 AI는 ‘성능’만이 아니라 컴플라이언스(Compliance) 체계와 이를 구축할 능력이 제품의 기능이 될 것이다. 이러한 혁신에 통신사가 앞장서는 이유도 결국 여기에 있다.
#MWC의 다른 ‘힌트’ AI·위성·6G
올해 MWC의 풍경은 더 거시적이다. 10만 명 이상의 참관객과 2700개 이상의 전시사가 모인 가운데 관람의 핵심은 단말 신제품보다 AI, 위성 인터넷, 6G, 그리고 공급망이었다. 특히 세 가지 장면이 눈에 띈다.
첫째, 위성 인터넷이 통신사의 변방이 아니라 무대 중앙으로 올라왔다는 점이다. 스페이스X 사장인 그윈 샷웰(Gwynne Shotwell)은 MWC에서 2027년까지 2세대 위성 약 1200개를 우주로 발사해 전 세계에 DSL 수준의 속도로 모바일 스타링크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임을 밝혔다.
둘째, 엔비디아(Nvidia)가 내놓은 6G 비전이다. 이는 단순 속도 경쟁이 아닌 ‘AI 네이티브 네트워크’로 재정의됐다. 엔비디아는 MWC를 앞두고 노키아(Nokia)와 함께 유럽·아시아·북미 주요 통신사들과의 AI-RAN 협력을 대거 공개하며 6G 시대의 주도권 경쟁에 직접 뛰어들었다. AI-RAN이란 기지국 기능을 소프트웨어로 구현하고, 엔비디아의 GPU가 AI 연산과 통신망 처리를 동시에 담당하는 구조다. 쉽게 말해 통신망이 ‘똑똑해지는’ 방식이다.
미국의 T-모바일은 엔비디아 AI-RAN 플랫폼 위에서 영상 스트리밍·생성형 AI·AI 영상 자막 생성을 5G와 동시에 구동하는 현장 실증을 마쳤고, 일본의 소프트뱅크는 완전 소프트웨어 정의 방식으로 업계 최초 16레이어 대규모 MIMO(대규모 다중 입력, 다중 출력)를 구현하는 기술 이정표를 세웠다. 인도네시아 최대 통신사 IOH는 동남아 최초 AI 기반 5G 통화를 성공시키며 실시간으로 국경 간 연결과 5G망 위 로봇 원격 제어까지 시연했다.
이번 MWC에서 AI-RAN 관련 데모는 작년의 세 배 수준인 26개로 늘었다. 그 중에는 AI가 신호 포맷 자체를 학습해 기존 대비 약 2배 높은 전송 속도를 구현한 기술, 자율주행 차량이 AI 연산을 기기·엣지·클라우드에 실시간으로 분산 처리하는 데모, GPU를 AI와 통신 워크로드가 공유하면서도 서비스 품질을 유지하는 오케스트레이션 청사진 등이 포함됐다. AI-RAN 얼라이언스 의장 최진성 박사는 “소프트웨어 정의, GPU 가속 아키텍처를 중심으로 통신사·장비사·연구기관이 결집함으로써 AI 네이티브 6G의 토대를 지금 쌓고 있다”고 밝혔다.
유럽과의 접점도 구체적이다. EU 호라이즌 펀딩을 받은 프로젝트 ULTIMO에서 캡제미니(Capgemini)는 엔비디아 AI-RAN 서버와 5G를 결합해 유럽 도시 내 자율주행 셔틀의 대규모 운행 지원 실증을 진행 중이다. 결국 6G는 ‘더 빠른 인터넷’이 아니라 로봇·자율주행·산업 현장이 실시간으로 생각하고 움직이게 해주는 물리 AI의 인프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 기반을 누가 설계하느냐. 즉 OS 기업인지, 통신사인지, 아니면 엔비디아처럼 칩과 소프트웨어를 함께 쥔 플레이어인지가 다음 플랫폼 전쟁의 핵심 질문이 됐다.
MWC에서는 쇼맨십도 빠지지 않았다.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 아너(Honor)가 선보인 “카메라가 움직이며 고개를 끄덕이는” 콘셉트폰은, 사람들이 이제 디바이스의 스펙보다 AI가 인간처럼 반응하는 경험에 더 이끌린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소위 ‘로봇폰’이라고 불리는 이 스마트폰은 세 축의 짐벌 암이 달린 카메라가 사람의 소리를 식별하고 움직임을 추적해 상호 작용하며 작동한다. 마치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이거나 흔드는 등 감정적인 몸짓에 반응하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출 수도 있다. MWC의 무게 중심이 하드웨어에서 인터랙션으로 완전히 이동했음을 체감케 하는 장면이었다.
#MWC 2026에서 발견한 스타트업의 기회
전쟁으로 중동 부스가 비고, 위성 인터넷이 무대 중앙에 서고, 통신사가 AI의 새로운 관문을 자처한 MWC 2026. 그 풍경을 요약하면 이렇다. AI는 앱에서 네트워크로 이동하고, 위성·6G는 연결성의 지도를 다시 그리며, 칩 부족 등 공급망은 혁신의 속도를 현실적으로 제한한다. 그리고 지정학적 불안은 이 모든 것을 더 빠르게 재편하는 촉매로 작용한다. 이번 MWC에서 뽑아낼 수 있는 스타트업 관점의 결론은 꽤 명확하다.
첫째, ‘네트워크 AI’는 새로운 플랫폼이 된다. 텔레콤이 통화 AI를 네트워크에 심는 순간, 스타트업은 질문을 바꿔야 한다. 바로 “어떻게 통신망·통화 UX에 붙는 기능(plug-in)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로. 둘째, 위성·6G·AI 수요는 ‘연결성 스타트업’의 시장을 넓힌다. 위성 인터넷과 6G 담론이 커질수록 스타트업은 모바일 앱보다 연결성이 불안정한 환경에서의 서비스 설계로 이동한다. 물류, 해상, 재난, 국경 지역, 국방·치안 등 특정 버티컬(vertical) 영역에서 기회를 볼 수 있다. 이번 이란 전쟁이 보여주듯, 지정학적 불안이 커질수록 위성 통신 기반의 안정적 연결은 오히려 수요가 더 부각된다.
필자 이은서는 한국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베를린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예술의 도시이자 유럽 스타트업 허브인 베를린에 자리 잡고 도시와 함께 성장하며 한국과 독일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잇는 123factory를 이끌고 있다.
이은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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