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아이돌의 얼굴과 이름을 무단으로 활용한 비공식 굿즈가 공식 상품보다 싼 가격을 앞세워 온·오프라인에서 판매되고 있다. 팬덤 내 소량 제작·나눔 문화를 넘어 수익을 목적으로 판매하는 상품이 늘면서 아티스트 권리 침해와 소비자 혼동 우려가 커지고 있다.
팬덤 안에서 굿즈를 직접 만들어 소량 판매하거나 나누는 문화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생일 카페 특전, 콘서트장 나눔, 소량 제작 포토카드 등은 팬덤 내부의 자발적 활동으로 소비됐다. 아티스트의 초상과 이름을 허락 없이 쓴다는 점에서 법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지만 기획사들도 이러한 팬 활동을 대체로 묵인해왔다.
문제는 소량 제작과 나눔을 넘어 수익을 목적으로 한 대량 제작·판매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와 쿠팡 등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비공식 굿즈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종류도 다양하다. 아이돌 사진뿐 아니라 그룹명, 로고 등을 활용한 포토카드와 키링, 스티커 등이 판매되고 있다.
오프라인 판매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26일 서울 명동 지하상가 매장에서는 아이돌 사진을 활용한 비공식 굿즈가 매장 진열대에 놓여 있었다. K팝 아이돌 사진과 로고 등으로 만든 포토카드와 키링, 달력이 대부분 1만 원 이하에 팔렸다.
비공식 굿즈가 문제되는 이유는 퍼블리시티권 침해 소지가 있어서다. 퍼블리시티권은 유명인의 이름, 얼굴, 예명 등 인격적 요소가 가진 경제적 가치를 통제할 수 있는 권리다. 그러나 비공식 굿즈는 권리자 허락 없이 포토카드나 키링, 스티커로 만들어 판매한다. 아티스트의 유명세와 시장 가치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행위다.
행정 조치도 나왔다. 지식재산처는 지난 3월 아이돌 그룹 멤버들의 명칭과 초상을 무단 사용한 굿즈를 제작·판매한 업체 4곳에 부정경쟁방지법을 적용해 첫 시정명령을 내렸다. 대상 상품은 포토카드, 학생증형 카드, 스티커 등이었다. 시정명령에는 판매 중단, 보유 상품 폐기, 동일·유사 방식 판매 금지, 재발 방지 교육 이수가 포함됐다.
비공식 굿즈에는 저작권과 상표권 문제가 뒤따른다. 공식 사진이나 앨범 이미지를 그대로 사용해 굿즈를 만들면 저작권 침해 소지가 있다. 그룹 로고나 공식 상표를 함께 쓰면 상표권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상품 형태나 판매 방식이 공식 굿즈로 오인될 경우 소비자 혼동도 발생한다.
소비자 보호 문제로도 번진다. 공식 상품보다 싼 가격은 구매력이 낮은 학생 팬에게 매력적인 선택지가 된다. 팬덤 문화를 잘 모르는 보호자는 자녀 선물용으로 구매하면서도 공식 상품인지 확인하기 어렵다. 실제 온라인 후기에는 자녀 선물용으로 샀다는 글과 저렴한 가격 때문에 구매했다는 글이 적지 않았다.
외국인 관광객도 같은 문제에 노출된다. 명동 같은 관광 상권에서 아이돌 사진과 그룹명이 붙은 상품은 K팝 기념품처럼 소비될 수 있다. 공식·비공식 구분이 어려운 관광객에게 비공식 굿즈가 공식 상품처럼 팔리면 소비자 혼동은 더 커진다. 품질과 출처가 불분명한 비공식 굿즈가 K팝 공식 상품처럼 소비될 경우 K팝 시장의 신뢰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이날 명동에서 비공식 굿즈를 둘러보던 멕시코에서 온 바네사 씨는 “간판에 K팝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어 공식 제품을 취급하는 줄 알았다”며 “미리 알았다면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상업적으로 판매되는 비공식 굿즈에 대한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하이브는 지난 4월 BTS 미국 투어를 앞두고 미국 법원에 무허가 굿즈 판매자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하이브는 2019년과 2021년 BTS 공연 때도 유사한 법적 조치를 통해 임시금지명령과 압수 명령을 받아냈으며 공연장 주변에서 다량의 위조·침해 굿즈도 압수했다. 주요 기획사들도 소속 아티스트 지식재산을 무단 사용한 상품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
상업적 목적의 비공식 굿즈 판매는 정당화되기 어렵다. 다만 공식 굿즈를 둘러싼 팬들의 불만도 이 시장이 커진 배경으로 꼽힌다. 높은 가격과 짧은 판매 기간, 랜덤 구성은 팬들이 반복해서 지적한 문제다. 원하는 멤버의 상품을 얻기 어려운 구조가 이어지면서 더 싸고 쉽게 살 수 있는 비공식 굿즈로 수요가 옮겨간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공식 굿즈 가격이 높고 수량이 제한되거나 랜덤 방식으로 판매되면 팬 입장에서는 갈증이 생길 수밖에 없다. 팬심을 과도하게 수익화하는 구조가 비공식 굿즈 수요로 이어지는 측면도 있다”며 “K팝 산업이 팬심을 상술로만 이용하는 방식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 비공식 굿즈가 양산된 상황에 대해 엔터테인먼트 업계 또한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원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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