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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스타트업열전] 지금 VC들이 스타트업으로 돌아가는 까닭

주디스 다다의 '랑독' 합류가 보여준 유럽 벤처 생태계 변화

2026.06.29(Mon) 10:55:56

[비즈한국] 유럽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흥미로운 인사 이동이 나왔다. 독일 벤처캐피털 비저너리스(Visionaries)의 제너럴 파트너였던 주디스 다다(Judith Dada)가 베를린 인공지능 스타트업 랑독(Langdock)의 공동대표로 합류한다는 소식이다. 랑독은 기업들이 오픈에이아이(OpenAI), 앤트로픽(Anthropic), 구글 제미나이(Google Gemini), 미스트랄(Mistral) 등 여러 인공지능 모델을 하나의 플랫폼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기업용 인공지능 운영 플랫폼이다.

 

독일 VC 비저너리의 주디스 다다 제네럴 파트너(가운데)가 자신의 포트폴리오사인 랑독의 공동대표가 된다. 사진=Visionaries Club

 

이 소식이 유럽 스타트업계에서 주목받은 이유는 단순히 유명 투자자가 스타트업으로 이직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다다는 랑독의 공동대표가 되면서도 비저너리스의 시니어 파트너 역할을 계속 유지한다. 즉 투자자에서 스타트업 운영자로 완전히 전향한 것이 아니라, 벤처캐피털과 스타트업 최고경영자의 경계 위에 서게 된 것이다.

 

#유럽 VC 이동=유럽의 전략적 의제

 

유럽에서 벤처캐피털 투자자가 스타트업 운영 역할로 이동하는 일은 최근 조금씩 늘고 있다. 그러나 현직 투자자가 자신이 투자한 포트폴리오 회사의 대표급 역할을 맡고, 동시에 투자사와의 관계도 유지하는 것은 여전히 드문 일이다. 그래서 다다의 이동은 단순한 커리어 전환이라기보다, 인공지능 시대의 유럽 벤처캐피털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읽힌다.

 

비슷한 사례는 이미 독일에서 한 번 있었다. 독일 벤처캐피털 프로젝트 에이(Project A)의 공동창업자인 우베 호르스트만(Uwe Horstmann)은 2025년 독일 방산 스타트업 스타크(STARK)의 대표가 됐다. 스타크는 드론과 무인 방산 시스템을 개발하는 기업으로, 세쿼이아 캐피털(Sequoia Capital), 나토 이노베이션 펀드(NATO Innovation Fund), 인큐텔(In-Q-Tel), 프로젝트 에이 등으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호르스트만은 독일 예비군 장교 출신이자 유럽 방산 스타트업 투자의 대표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스타크의 대표가 된 것은 투자자가 단순히 자본을 공급하는 역할을 넘어, 유럽 안보와 기술 주권이라는 거대한 의제 안으로 직접 들어간 사례였다.

 

2025년 스타크 CEO로 선임된 우베 호르스트만. 그는 스타크의 초기 설립과정에 큰 역할을 한 투자자이기도 하다. 사진= stark-defence

 

다다와 호르스트만의 사례에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단순 소비자 앱이나 일반 기업용 소프트웨어 기업이 아니라, 유럽의 전략적 의제가 걸린 영역으로 이동했다는 점이다. 하나는 인공지능, 다른 하나는 방산이다. 두 분야 모두 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고객 신뢰, 정부와의 관계, 규제 이해, 자본 조달, 산업 내러티브가 함께 필요하다. 이런 분야에서는 좋은 투자자가 단순한 조언자에 머무르기보다 직접 회사를 대표하고 시장을 설득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VC와 스타트업 사이 이동 ​활발

 

사실 지난 1~2년 사이 유럽에서는 벤처캐피털에서 스타트업 운영자로 이동하는 사례가 눈에 띄게 늘었다. 유럽 스타트업 전문 매체 시프티드(Sifted)는 2025년 “유럽 벤처캐피털 투자자들이 이사회 회의실을 떠나 스타트업으로 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많은 젊은 투자자들이 벤처캐피털을 떠나 인공지능 스타트업, 개발자 플랫폼, 성장팀, 전략·재무팀, 최고경영진 보좌역 역할로 이동하고 있다. 레이크스타(Lakestar)의 수석투자심사역이 인공지능 튜터링 스타트업 프락티카(Praktika)로, 화이트스타(White Star)의 투자자가 인공지능 데이터 스타트업 엔코드(Encord)의 성장팀으로, 헤도소피아(Hedosophia)의 투자자가 개발자 플랫폼 깃팟(Gitpod)의 최고경영진 보좌역으로 이동한 사례가 소개됐다.

 

이 현상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유럽 벤처캐피털 생태계 자체가 성숙 단계에 들어선 것이 다. 2021년, 스타트업 투자 열풍 속에서 벤처캐피털은 가장 매력적인 커리어 중 하나였다. 그러나 금리가 오르고, 스타트업 기업가치가 조정되고, 펀드 결성이 어려워지면서 벤처캐피털 업계의 속도감도 떨어졌다. 특히 초기 커리어 투자자들에게는 몇 년간 투자 기회를 검토하고, 미팅을 하고, 투자 검토 보고서를 쓰는 일이 실제 회사를 만드는 경험보다 덜 매력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둘째, 인공지능이 이 흐름을 가속화하고 있다. 인공지능은 단순한 새로운 산업 분야가 아니라 제품 개발, 영업, 조직 운영, 비용 구조, 고객 도입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다. 과거 서비스형 소프트웨어 시대의 투자 공식이 인공지능 시대에는 그대로 통하지 않는다. 투자자가 바깥에서 회사를 분석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실제 제품을 만들고, 배포하고, 고객의 반응을 보고, 일주일 단위로 실험을 반복하는 현장 감각이 중요해졌다. 그래서 일부 투자자들은 “보는 사람”이 아니라 “만드는 사람”이 되기를 선택했다.

 

셋째, 유럽의 기술 주권 담론이 커지고 있다. 인공지능, 방산, 에너지, 반도체, 양자기술처럼 유럽이 미국이나 중국에 지나치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 강해지고 있다. 이 분야의 스타트업은 단순히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만으로 성장하기 어렵다. 정부, 대기업, 연구기관, 규제기관, 국방·산업 고객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여기서 네트워크와 내러티브를 가진 투자자가 직접 대표나 공동대표 역할을 맡는 것은 시장에 강한 신호를 줄 수 있다.

 

#한국 스타트업계는?

 

한국에서는 2025년 투자자가 스타트업 창업가가 되면서 갑론을박이 된 사례가 있었다. 류중희 퓨처플레이(FuturePlay)의 대표가 대표직에서 물러난 뒤 로보틱스 파운데이션 모델 스타트업 리얼월드(RLWRLD)를 창업한 일이다. 리얼월드는 2025년 210억 원 규모의 시드 투자를 유치하며 출범했고, 이후 전략적 투자자 중심으로 추가 자금을 조달하며 피지컬 인공지능 분야의 대표 스타트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글로벌 테크 매체 테크크런치에서도 리얼월드의 투자 소식을 발빠르게 전했다. 사진=techcrunch

 

류중희와 주디스 다다의 사례는 비슷해 보이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다. 류중희 대표는 벤처캐피털 대표를 사임하고 다시 창업가가 된 경우다. 반면 다다는 현직 벤처캐피털 파트너가 포트폴리오 회사의 공동대표가 되면서도 투자사와의 연결을 유지하는 구조다. 따라서 이해상충의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다다 사례가 더 복잡하다. 

 

벤처캐피털 투자자가 특정 포트폴리오 회사의 대표가 되면, 투자자의 시간과 네트워크가 한 회사에 집중되는 것 아니냐고 물을 수 있다. 펀드 출자자들은 핵심운용역의 역할 변화가 펀드 운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물을 수 있다. 후속 투자 라운드에서는 기업가치 산정, 지분비례 후속투자권, 기존 투자자 참여, 경쟁사 투자 같은 논란이 생길 수 있다.

 

그럼에도 이 흐름을 단순히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오히려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인공지능과 로보틱스처럼 기술 전환 속도가 빠른 분야에서, 투자자는 계속 바깥에서 평가자 역할만 해야 하는가. 창업 경험이 있는 투자자가 다시 창업자가 되는 것은 생태계에 해로운가, 아니면 오히려 더 큰 문제를 풀기 위한 자연스러운 순환인가.

 

한국 스타트업계는 오랫동안 “창업자”, “벤처캐피털(VC)”, “액셀러레이터(AC)”, “대기업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의 역할을 비교적 분명하게 구분했다. 그러나 딥테크와 인공지능 시대에는 이 경계가 흐려질 가능성이 크다. 좋은 창업자가 투자자가 되고, 좋은 투자자가 다시 창업자가 되며, 성공한 스타트업 운영자가 다시 펀드를 만들고, 벤처캐피털이 특정 기술 영역의 회사 설립과 성장에 깊이 개입하는 일이 더 많아질 수 있다. 이는 생태계가 성숙하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다만 전제는 분명하다. 경계가 흐려질수록 거버넌스는 더 선명해져야 한다. 투자자가 창업하거나, 포트폴리오 회사의 대표가 되거나, 기존 투자사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펀드 출자자 고지, 핵심 인력 조항, 이해상충 관리, 기존 포트폴리오와의 경쟁 여부, 펀드 자원 사용 범위, 의사결정권 조정은 명확해야 한다. “좋은 비전”이나 “큰 기술 전환기”라는 명분만으로 넘어갈 수 없는 문제다.

 

다다의 랑독 합류는 유럽 인공지능 생태계에 강한 메시지를 던졌다. 유럽의 인공지능 주권을 말하려면 투자자도 더 이상 관찰자로만 머물 수 없다는 메시지다. 프로젝트 에이의 호르스트만이 스타크로 이동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유럽의 벤처캐피털 투자자들이 스타트업 현장으로 들어가는 흐름은 단순한 커리어 유행이 아니라, 기술 전환기에 투자자의 역할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더 많아질 것이다. 특히 인공지능, 로보틱스, 방산, 에너지, 바이오, 반도체처럼 자본과 기술, 산업 고객, 정책 네트워크가 동시에 필요한 분야에서 그렇다. 중요한 것은 누가 벤처캐피털이고 누가 창업자인지를 고정적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역할이 바뀔 때 그 책임도 함께 바뀌는지, 그리고 그 변화가 생태계의 신뢰를 높이는 방식으로 관리되는지다.

 

결국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투자자는 회사를 평가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회사를 만드는 사람인가. 유럽에서는 그 답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그 변화는 한국 스타트업계에도 곧 도착할 것이다.

 

필자 이은서는 한국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베를린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예술의 도시이자 유럽 스타트업 허브인 베를린에 자리 잡고 도시와 함께 성장하며 한국과 독일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잇는 123Factory를 이끌고 있다.​

이은서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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