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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왱알앵알] 출발지도 목적지도 없는 이색 러닝대회, 직접 뛰었다

하반신 장애인에 기부하는 '윙스포라이프 월드런'…올해 우승은 88.95km 달린 미국인

2018.05.08(Tue) 15:45:14

[비즈한국] 여름이 훌쩍 다가왔다. 옷소매가 팔꿈치 위로 올라가고 저녁 잔디밭에 돗자리가 깔린다. 공원엔 산책하는 사람들 사이로 뜀박질하는 사람들이 비껴간다. 러닝 시즌임을 느낀다. 

 

러닝 대회가 하나둘 열린다. 5km, 7km, 10km, 20km, 42.195km 뛰는 구간과 거리는 대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실력을 보이기 위해, 누군가는 가족이나 친구와 추억을 만들기 위해 대회에 참가한다. 

 

2018 윙스포라이프 월드런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이 캐처 카에 잡히자 손을 들어 환호하고 있다. 사진=윙스포라이프 월드런 제공

 

출발지도 목적지도 없는 러닝 대회가 있다. ‘윙스포라이프 월드런(wings for life world run)’은 ‘뛰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뛴다’는 슬로건만 존재한다. 한국에서 뛰어도 되고 미국에서 뛰어도 된다. 서울에서 뛰어도 되고 부산에서 뛰어도 된다. 얼마나 뛸지, 어디에 도착할지도 마음먹기에 달렸다.

 

방식은 간단하다. 윙스포라이프 월드런 애플리케이션(앱)이 깔린 스마트폰을 가지고 뛴다. 뛰는 속도와 거리가 측정된다. 시작 30분 후 앱상에 존재하는 가상의 차인 ‘캐처 카’가 따라온다. 캐처 카에게 잡히면 끝난다. ‘경찰과 도둑’ 놀이에서 내가 도둑이고 캐처 카가 경찰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단, 도둑 캐릭터는 내가 실제로 뛴 만큼만 도망간다. 

 

대회 참가 목적은 척수 손상으로 하반신 장애가 온 사람을 응원하는 것이다. 대회를 주최한 윙스포라이프 재단은 오스트리아와 영국에 연구소를 두고 척수 손상으로 하반신 장애를 갖게 된 사람을 지원한다. 윙스포라이프 월드런 참가비 18달러는 모두 재단에 기부된다. 

 

한강을 끼고 달리자 색다른 야경이 나타났다. 사진=박현광 기자

 

혼자 뛰면 외롭지 않을까? 새로운 형태의 러닝 대회가 궁금해 직접 뛰어봤다. 여의나루역 2번 출구 앞 광장에서 성산대교까지 강을 낀 구간을 뛰기로 결정했다. 대략 5km 구간이다. 목표는 10km로 잡았다. 성산대교를 반환점으로 광장으로 다시 돌아오기로 했다.

 

출발 시간은 한국 시각으로 지난 6일 오후 8시였다. 전 세계 각국 참가자가 동시에 같은 시각에 시작한다. 유럽시간을 기준으로 삼다 보니 한국은 저녁이 됐다. 운동을 좋아하지만 입사 후 찐 10kg 살이 10km 뜀박질을 허락할지 의문이었다.

 

앱에서 시작 카운트다운이 끝나자 21.04km가 표시됐다. 캐처 카와 떨어진 거리였다. 캐처 카가 나를 따라잡을 준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뛸 의욕이 났다. 강에서 바람이 솔솔 불었다. 얇은 겉옷을 입으면 걷기 딱 좋을 만큼 서늘했다. 그래선지 연인이 많았다. 맞잡은 손을 결승선 통과하듯 뚫고 지나가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3km쯤 뛰었을까. ‘이걸 왜 한다고 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숨이 차기보다 배 근육이 뭉쳐서 고통스러웠다. 그동안 꺾은 술잔이 떠올랐다. 간신히 호흡을 가다듬고 주위를 둘러봤다. 환하게 켜진 국회가 왼쪽으로 지나가고 있었고 불 켜진 다리가 야경을 수놓고 있었다. 

 

30분이 넘어가자 캐처 카가 출발했다. 사진=애플리케이션 캡처

 

휴대폰을 수시로 확인했다. 캐처 카는 멈춰 있었다. 4km를 조금 넘겼을 때 30분이 지나고 캐처 카가 출발한다는 신호가 떴다. 살짝 마음이 조급했다. 목표했던 10km를 못 채우는 건 아닐까. 휴대폰을 잠시 넣어두고 뛰는 데에 집중했다. 성산대교 반환점을 돌고 한참을 달려 휴대전화를 봤다. 뛴 거리 7km, 캐처 카는 20km 이상 떨어져 있었다. 캐처 카 속도를 알 수가 없어 혼란스러웠다. 힘이 떨어진 몸은 ‘캐처 카야, 제발 날 잡아줘’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꾸역꾸역 10km를 채웠다. 캐처 카는 여전히 21km 떨어져 있었다. 알고 보니 이번 대회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이 뛴 거리는 88.95km였다. 그는 미국인이었다. 대회 참가 증명서를 받은 것도 아니고 기념품을 받은 것도 아니지만 뿌듯했다. 운동했다는 뿌듯함뿐 아니라 기부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느리지만 가상의 캐처 카가 따라오니 외롭지는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세빛섬에선 150여 명이 함께 뛰었다고 했다. 실제로 대회를 운영하는 에너지드링크 회사 ‘레드불’이 사람을 불러 모은 것이다. 대회가 끝나고 참가자들은 이태원 한 클럽에 모여 레드불이 기획한 애프터파티를 진행하기도 했다.  

 

‘내가 이걸 왜 한다고 했지?’​ 10km를 뛰고 쓰러졌다. 사진=박현광 기자

 

양태현 레드불 마케팅 담당자는 “레드불이 한국에서 대회를 기획한 건 올해가 처음이다. 정확한 집계는 나오지 않았지만 200명 이상 참여한 것으로 파악한다. 작년 40여 명에 비교해 크게 증가했다”며 “우리 대회 콘셉트를 설명하기가 어려웠지만 이번에 사람들의 호응이 있어 고무적이다. 다음 대회를 잘 꾸려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2014년 시작된 이 대회는 올해로 5년째를 맞았다. 영국, 호주, 대만 등지에서 활발하게 이뤄지고 정해진 구간에서 실제 캐처 카가 따라오기도 한다. 2014년 전 세계에서 5만 3000여 명이 참가했고, 2015년 이후 10만 명이 넘는 사람이 꾸준히 참가하고 있다. 

박현광 기자 mua123@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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