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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국의 천지인] 양을 지켜야 할 개가 양 우리를 넘보다니!

기무사의 '계엄령 검토' 사태를 보면서 한국군을 돌아보다

2018.07.12(Thu) 09:05:04

[비즈한국] 국군기무사령부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안이 기각될 경우에 대비해 계엄을 검토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동원 계획이 구체적이고, 국회가 위수령 폐지법안을 가결할 경우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서 기간을 번다는 방안까지 나와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런 군대로는 냉혹한 국제사회에서 국가의 생존마저 보장할 수 없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지난 10일 서울 용산 국방부청사 브리핑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송 장관은 독립적인 수사단을 구성해 기무사 계엄령 검토 문건 관련 내용을 엄정하게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임준선 기자


군대와 관련된 필자의 기억은 초라하다. 특히 말년 병장 시절, 소대원 전원 음주를 주동한 사건으로 열흘 영창을 다녀왔다. 부대를 수호해야 할 위병 조장으로서 술을 구입·반입하고, 일부가 대취할 정도로 마셨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이었다. 

 

사실 고참들이 몰래 술을 마시는 것은 관례였는데, 아무리 군대라도 술만은 평등하게 먹자는 것이 내 신조였다. 이순신 장군이 즐겨 읽던 병서인 ‘오기(吳起)병법’에는 “필승의 군대는 상하가 부자(父子)처럼 결합한 군대”라고 쓰여 있다. 병들은 형제일진대, 한두 달 차이로 살벌한 상하관계를 가르는 것은 가소롭지 않은가. 

 

그러나 영창에 들어서는 순간 신참 헌병이 걸레 같은 수감자복을 던지며 한 쌍욕은 너무 길어서 기억조차 할 수 없고, 겨울임에도 수감실에는 모기가 바글바글해서 끔찍했다. ‘왜 같은 병인데 모기와 한편이 되어 저렇게 살벌하게 욕을 해대지?’ 참으로 의아했다. 훈련을 나가면 한겨울에도 여단장용 화장실 구덩이를 따로 팠으니, 장교와 사병의 상하 단절은 말할 나위도 없다. 25년 전 일이니 요즈음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병장 시절 슬픈 일을 하나 겪었는데, 사격 훈련 중에 신참 하나가 그만 정신줄을 놓아버렸다. 큰 사고는 나지 않았지만 그 친구는 결국 정신질환으로 제대할 수밖에 없었다. 이름은 잊었지만 참으로 훤칠한 친구였다. 위병조장 근무를 서고 있을 때 부모님이 찾아와 하소연했다. 왜 당신들의 아이가 그렇게 되었는지 알고나 싶다는 것이다. 중대장과 인사계를 찾으니, “​없다고 하고 돌려 보내”​란다. 이해하기 힘들었다. 부하에게 천륜을 어기는 거짓말을 종용하다니. 

 

역시 오기는 “부하들이 자기 우두머리가 옳다고 여기는 군대는 이긴다”고 말했다. 작은 부대를 이끄는 이에 불과하지만, 나는 그들을 옳기는커녕 나쁜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이 국민을 속이고 도망친 것보다 작지만, 부하를 버리고 나 몰라라 하는 점에서 뭐가 다른가. 전투가 벌어진다면 나는 그런 이들을 위해 충성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정말 충격은 제대 후에 찾아왔다. 군 장성들이 전시작전권 반환을 말하는 군통수권자에게 대드는 것이 아닌가. 거기에 더해 퇴역 장성들은 거리로 몰려나와 공공연히 작전권 반환을 반대했다. 순간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북한이 우리 군을 ‘괴뢰군(꼭두각시 군대)’이라고 비난할 때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믿었다. 그러나 작전권을 원하지 않는 장군이 꼭두각시가 아니면 누가 꼭두각시인가. 

 

오기는 이렇게 말했다. “결단을 못하는 장수가 이끄는 군대는 반드시 패한다.” 그런데 결단 자체를 거부하는 장군이 이끄는 군대라면? 그들은 오로지 미국이 제공하는 더 좋은 무기만 믿는다. 물론 그 구입 비용은 자기 주머니에서 나가지 않는다. 25년 전 당시 우리의 봉급은 군용 담배 몇 보루 값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본 한국군은 병법의 기본에 전혀 맞지 않았다. 국제사회가 자선조직이 아니라면 군대 없이 나라가 설 수 없다. 이상적인 나라를 꿈꾸는 사람들은 그래서 이상적인 군대를 꿈꿨다. 플라톤과 소크라테스가 꿈꾼 군대는 “적에게 한없이 사납고 동포에게 한없이 유순한 수호자 집단”이었다. 한없이 사나운 동시에 그만큼 유순하기는 쉽지 않으므로, 이들 수호자들은 특별한 교육을 받고 특별한 자질을 갖춰야 했다. 말하자면 오직 양을 보호하는 일에만 특화된 유능한 양치기 개 집단이 군대다. 

 

그런데 어쩐지 이 나라의 양치기 개들은 늑대를 막는 것보다 양 우리로 들이닥치는 데 오히려 더 유능했다. 

 

시민사회단체는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기무사 해체를 요구했다. 사진=박정훈 기자


물론 ‘국가의 수호자로서 비상사태에 대비하지도 못하는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회의 견제를 어떻게 피할 것인지 명시한 점, 민정의 수호자인 경찰을 배제한 점만 봐도 그런 반박은 어불성설이다. 

 

한(漢)나라 건국의 군사적인 주역 한신(韓信)은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고사의 주인공으로 유명하다. 초나라 항우를 꺾어 통일 제국을 만들어주니 주인 유방이 그를 사냥개처럼 삶아버렸다는 이야기다. 그는 애초에 쿠데타를 일으킬 생각이 없었던 듯하지만, 가끔 수가 틀리면 ‘쿠데타를 일으킬 수도 있어’라는 암시를 주곤 했다. 인구가 반으로 줄어드는 동란을 거쳐 막 평화의 시기가 도래했는데, 쿠데타를 일으킬 가능성을 내비친다고? 한신 개인이 실정법을 어겼는지는 불분명하지만 그가 평화를 바라는 시대정신을 우롱한 것은 사실이다. 

 

우리 헌정사에서 양치기 개가 두 번이나 우리로 뛰어들어 양을 학살했다. 오늘 또 한 마리가 슬그머니 양 우리를 엿본다. 국가의 생존과 민주주의의 미래를 위해 가차없이 응징해야 한다. 개는 억울해서 항변할 것이다. “늑대가 있는지 살피고 있었다구요.” 그러면 죽을 만큼 더 패야 한다. “늑대는 우리 밖에서 막는 거야.”

 

필자 공원국은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중국지역학을 전공했으며, 중국 푸단대학교에서 인류학을 공부하고 있다. 생활·탐구·독서의 조화를 목표로 십 수년간 중국 오지를 여행하고 이제 유라시아 전역으로 탐구 범위를 넓혀, 현재는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서 현지 조사를 수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춘추전국이야기 1~11’, ‘옛 거울에 나를 비추다’, ‘유라시아 신화기행’, ‘여행하는 인문학자’ 등 다수가 있다.

공원국 작가·‘춘추전국이야기’ 저자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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