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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력 빼가기' 입증 못 한 잡코리아, 민사 1심 패소

법원 "증거 없는 정황만으론 법 위반 인정 어려워"…잡코리아 "항소 여부 밝히기 어렵다"

2025.12.23(Tue) 15:21:41

[비즈한국] 채용 플랫폼 업계에서 벌어진 잡코리아와 리멤버 간 집단 이직 갈등이 민사 손해배상 1심 소송에서도 잡코리아의 패소로 결론 났다. 형사 고발과 공정거래위원회 신고, 전직·유인금지 가처분 신청까지 이어졌던 전방위적 법적 대응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임원의 경쟁사 이직과 다수 직원의 동반 이동이라는 외형만으로는 유인금지 위반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전직 임원 측 손을 들어줬다.​

 

잡코리아에 재직했던 임원 포함 임직원들이 리멤버로 연이어 이직하면서 시작된 이번 갈등은 ‘인력 빼가기’를 둘러싼 적법성 공방으로 번졌다. 이번 판결은 지난해 기각된 가처분 신청에 이어 나온 결과로, 근로자의 직업 선택의 자유 원칙을 재확인했다는 평가다. 

 

잡코리아가 리멤버로 이직한 전직 임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했다. 사진=잡코리아 제공


#“정황만으로는 공모·지시 근거 부족”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88단독(임상은 판사)은 잡코리아가 자사 임원이었던 전직 상무 A 씨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를 지난달 21일 기각했다. 잡코리아는 해당 임원이 경쟁사인 리멤버로 이직한 뒤 자사 팀장 B 씨와 공모해 기존 직원들의 이직을 적극적으로 유도했다며 1억 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A 씨는 잡코리아와 알바몬의 플랫폼영업본부 본부장을 맡았던 임원으로, 2023년 말 퇴사 당시 2년간의 경업금지 및 유인금지 서약을 했다. 지난해 초 리멤버로 이직한 A 씨는 이 사실을 인지한 잡코리아에 경업금지 약정 위반을 인정하고, 대가로 지급받았던 1억 원을 반환하는 합의까지 마쳤다. 다만 이 합의에서도 직원 유인금지 의무는 유지됐다.

이후 잡코리아는 지난해 4월을 기점으로 자사 팀장과 실무 직원 3인이 리멤버로 이직한 점을 근거로 A 씨가 채용 과정에 개입하거나 이직을 지시·공모했다고 주장했다. 잡코리아 측은 법정에서 “고성과자에 해당했던 유인행위 대상 인력이 대거 퇴사함으로써 정상적으로 진행하던 사업에 차질이 생기는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며 “손해액 중 일부인 1억 원과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일부 내부 진술과 채용 절차가 비교적 빠르게 진행된 점도 근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 같은 주장만으로는 유인금지 위반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전직 임원의 이직 후 다수 직원 이탈이라는 정황은 인정했지만, A 씨가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직원들에게 이직을 권유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시각이다.

재판부는 채용 일정이 이례적으로 빠르다고 보기 어렵고, 임원 A 씨가 채용에 직접 개입했다는 객관적 증거도 없다고 봤다. 일부 임직원들이 잡코리아 공식 퇴사일 이전 리멤버로 출근해 근무한 것을 두고도 “퇴사하기 전 연차휴가를 사용하며 출근하지 않는 동안 리멤버에 출근한 것이 전직 임원의 조치 때문이라고 볼 만한 아무런 증거도 없는 점” 등을 미뤄 유인행위와 선을 그었다. 내부 조사 과정에서 언급된 팀장의 발언 역시 전언에 불과해, 직원 빼가기로 단정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

 

#인력 빼가기 공방의 끝은 어디로… 

 

이번 판결은 양사 간 갈등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앞서 잡코리아는 리멤버와 이직 직원들을 상대로 영업비밀 탈취 혐의 형사 고발을 진행했고, 공정거래위원회에 불공정거래 행위로 신고했다. 동시에 전직금지·유인금지 가처분을 신청해 이직 인력의 활동을 제한하려 했지만, 지난해 법원은 “유인행위나 조직적 개입을 소명할 자료가 부족하다”며 이를 기각한 바 있다.


민사 1심에서도 법원의 판단 기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고위 임원의 이직 후 직원들의 이탈이 있더라도 개인의 자유로운 직업 선택에 따른 결과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경쟁을 제한할 만큼의 불법성이 입증돼야 한다는 기준을 적용했다. 법조계에서는 “전직금지나 유인금지 약정이 무의미하다는 뜻보다는, 위반을 주장하려면 지시·공모·개입을 뒷받침하는 명확한 증거가 필요하다는 점이 다시 한 번 확인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잡코리아와 리멤버는 지난해 초 임원 및 임직원 이직을 두고 인력 유인 관련 분쟁을 벌이고 있다. 사진=리멤버 제공


이번 사안은 치열한 채용 플랫폼 시장 경쟁의 단면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후발 주자로 꼽히는 리멤버 등이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가운데, 직원 포섭·이직 권유 등 인력 확보 경쟁도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논란이 불거지고 가처분 신청 등 법적 공방이 본격화하던 시점에 리멤버는 “채용 시장에서 20년 넘게 사업을 영위해 온 회사가 성장세를 보이는 후발 주자를 상대로 네거티브 전략을 펼치며 법적 분쟁으로 비화시키고 있다”며 양사의 갈등을 경쟁 구도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을 드러낸 바 있다.

 

리멤버는 또 “특정 회사 출신의 인력을 의도적으로 채용하려 한 바 없으며 합법적으로 원칙을 준수해 경력 채용을 진행했다”며 “선의의 경쟁이 이뤄져야 할 시장 내에서 후발 주자를 압박하는 분위기를 형성해 나가고 있는 점이 안타깝다”는 시각을 견지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잡코리아가 항소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경업·유인금지 조항의 유효성과 집행 가능성을 상급심 판단에 맡겨 법리를 다시 따져보는 취지다. 다만 잡코리아 관계자는 이번 판결과 관련해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답변이 어렵다”고 밝혔다. 리멤버 역시 개인에 대한 민사 소송이라는 점을 들어 별도의 입장 표명은 하지 않았다.

 

이번 판결은 향후 유사 분쟁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인력 이동이 빈번한 플랫폼·테크 분야에서 기업 간 분쟁이 늘어날수록, 계약 조항보다 실제 행위에 대한 증명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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