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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림 탐식다반사] 조금 더 오래 맛보고 싶은 그 '조기찌개'

조기 비린내 진득히 녹은 칼칼한 국물…해방촌 사람들처럼 오래된 식당 역시 수명 다해가

2018.08.21(Tue) 14:47:44

[비즈한국] 조기찌개를 좋아한다. 찌르르하게 짜고, 기침이 나올 정도로 맵고, 무엇보다도 해풍에 슬쩍 말린 조기의 비린내가 진득하게 녹아든 그 칼칼한 국물에는 마성이 있다. 흰살 생선이 숙성된 비린내가 숫제 젓갈 같은 감칠맛으로 승화되어 독특하기 짝이 없는 향을 낸다. 고린내를 폴폴 풍기는 그 시뻘건 국물을 떠 마시면 입안이 쪼그라들 정도로 위축되는데, 그게 맛이다.

 

비린내가 긍정적인 고린내로 승화되어 묘하게 각인되는 마성의 조기찌개. 사진=이해림 제공

 

이 지독한 국물에 맛을 들인 것이 중학생 때다. 한창 햄버거에 중독될 여중생치고 괴이한 입맛이었겠으나, 알 게 뭔가. 엄마가 그걸 자꾸만 끓여줬는데. 사람 입맛이라는 게 알고 보면 그리 까탈스럽지가 않다. 자꾸 먹여 맛 들이게 하면 결국은 좋아하게 되는 법이다. 어디까지나 맛있는 것일 때의 얘기지만 말이다.

 

백화점 명절선물세트에 들어 있는 것 같은 으리으리한 몸집의 조기는 감히 찌개에 쓰는 것이 아니다. 위풍당당하게 구워 제일 비싼 접시를 꺼내 모셔 먹을 일이다. 찌개에 들어가는 조기는 그보다 훨씬 초라해야 옳다. 손바닥 남짓한 조기 몇 마리가 두툼해 보이는 국물에 둥둥 떠 있어야 한다. 국그릇에 담으면 꽁지나 대가리가 삐죽 튀어 나오는 정도가 적당하다. 

 

찌개를 할 줄만 알면, 만들기도 쉽다. 육수 내서 무 넣고 양파 넣고 조기 깔고 양념장 만들어 넣고 끓이다가 대파, 청양고추로 마무리하면 되는 간단한 메뉴다. 고사리를 넣는 경우도 많다는데 우리집은 그렇게 먹어본 적이 없어서 나야 모르겠다.

 

찌개는 할 줄 아는데, 굳이 조기찌개를 손수 해 먹을 생각은 하지 못했다. 더 이상 냉장고에 조기를 쟁여 두고 사는 세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마성에 지배당한 지도 오래이니 이따금 조기찌개에 입맛이 동하기도 했지만 찾아 먹을 일도 없었다. 막상 찾으면 하필 근처에 파는 곳이 도통 없다. 조기찌개 먹겠다고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나갈 일도 아니고. 

 

동네에 사는 만화가와 술을 마시다 조기찌개 얘기가 나왔다. 또 조기찌개가 불현듯 당긴 참이었다. 연배가 비슷한 그도 어지간히 그 마성에 사로잡혀 살았던 모양이었다. 해방촌 ‘고창집’을 추천 받았다. 아니, 소개 받았다. 어디 한 열 군데를 비교해 최고로 꼽아 소개한 것이 아니라 딱 한 곳 있는 곳을 알려준 터라 추천이라기엔 옹색한 것이었다.

 

해방촌. 남산 남향 자락을 차지하고 재개발된 용산의 번쩍이는 마천루를 바라보는 낡은 동네다. 최근 ‘백종원의 골목식당’​까지 포함해 여러 차례 부흥의 계기가 다녀갔지만 정작 확 떠오르지는 못했다. 아무런 도시계획 없이 자연 발생한 촌락이 제멋대로 도시화된 동네라 발전도 쉽지 않다. 

 

해방 후, 그리고 휴전 후 해외에 있던 난민이 돌아와서 세우고, 월남한 실향민들이 채우고, 경제부흥기에 이촌향도한 사람들이 잠시 자리 잡으려고 머물렀지만, 결국 잠시가 평생이 되었다. 평생은 결코 은유가 아니다. 청춘 한 토막에 역사에 휩쓸려 해방촌으로 온 이들이 결국 해방촌에서 생을 마치고 있다. 그 동네 오래된 식당 역시 수명이 다해간다.

 

고창집도 그 끝을 예감한다. 부부가 해방촌에 와 아이 둘을 키우고 식당을 주름살처럼 이어왔다. 낯선 이웃들이 가족이 되고 친척이 되어 몇 십 년 단골로 이 식당을 드나들었다. 그냥, 동네 단골 많은 흔한 식당이다. 말끔하고 쾌적한 인테리어의 반대말로 묘사할 만한 낡은 식당이고, 가게 곳곳에 세월의 때도 지울 수 없이 배겨 있다. 

 

메뉴판에도 시간이 쌓여 있다. 두루치기와 오삼불고기, 낙지볶음이나 닭도리탕, 삼겹살부터 육회에 홍어회, 무침, 찜과 애에 애탕까지, 안 되는 것 빼고 다 된다. 아마도 남도의 지역색이 묻어나는 메뉴를 위주로 하다가 동네 장사를 보고 평이한 메뉴들을 불려왔을 것이다.

 

봄에 담근 황석어젓으로 가을에 담가 묵힌 김치. 사진=이해림 제공

 

요즘 생겨난 정신없는 식당들과 달리 어느 음식을 주문해도 사람의 손길이 거쳐 있다는 게 차이다. 단지 오래된 입맛 그대로 음식을 하느라 요즘 식당들처럼 반제품에 의존하지도 않고, 간장 하나도 시판제품보다 더 좋은 것을 찾아 쓴다. 그마저도 예전엔 장까지 담갔다고 한다. 

 

김치는 물론 사다 쓰지 않고, 봄엔 황석어젓을 담고 가을엔 김장을 담아 남도 맛이 진한 묵은지를 제철 반찬 사이에 툭 놓는다는 것이 특출 난 점이다. 호불호는 갈린다. 그래도 보존해야 할 캐릭터의 김치다.

 

올여름 어느 날 밑반찬으로 나온 참외무침. 반찬은 그때그때 풍부한 제철 재료를 써서 손끝으로 만든다. 사진=이해림 제공

 

그런 식당인지라 조기찌개 같은 고루한 메뉴도 용케 있는 것이다. 그런 식당이라서 감사하게도, 조기찌개를 팔아주는 것이다. 한겨울 엄동설한에 비린내는 기대보다 적은 말끔한 조기찌개를 흡입하며 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얼마나 서로 익숙한 사이인 지를 봤고, 동네 단골들이 밤마다 모여들어 하루를 마무리하는 모습을 보았다. 

 

염서에 땀 흘리며 냉동 삼겹살을 구우면서는 허리가 아프나 무릎이 아프나 이제는 투정할 짝을 잃어 풀이 죽은 할머니의 적적함을 봤다. 그리고 할머니를 살피러 온 동네 단골들의 무심한 척하는 따끈한 마음도 봤다. “그렇게 많이 아프셔서 어째요. 은퇴하고 집에서 편히 지내시면 좋겠지만…. 식당이 사라지면 너무 서운한데요”라는 무의미한 말을 뱉어봤지만 별 수는 없었다. 

 

식당을 하며 음식을 손끝 안 닿은 데 없이 만들어낸다는 것은 평생 했던 사람이나 하는 일이지, 이제 와서 새로이 누군가 시작할 만한 일이 아니다. 특히 이런 작은 식당에선 혼자 일해야 하다 보니 너무 고되다. 할머니에게는 이 평생 해온 힘든 일을 이어 맡을 이가 없다. 용하다는 병원을 찾아 다녀가며 다만 버틸 뿐이다.

 

식당엔 시간이 두텁게 쌓여 있고, 할머니가 아픈 다리를 쉬는 평상에서 잘 보이는 곳에 부부의 시간들이 곱게 걸려 있다. 사진=이해림 제공

 

시간이 흐르고, 주름이 깊어지면 사라지고야 말 것들이 우리 주변에 있다. 서운한 이별을 언제나 예감한다. “자주 올게요. 병원 잘 다녀오세요.” 흔한 말로 덧없는 약속을 할 따름이었다. 쿰쿰한 조기찌개를, 그 독특한 향취의 김치를 맛볼 날의 끝을 앞당겨 아쉬워하며. 

 

필자 이해림은? 패션 잡지 피처 에디터로 오래 일하다 탐식 적성을 살려 전업했다. 2015년부터 전업 푸드 라이터로 신문, 잡지 등 각종 매체에 글을 싣고 있다. 몇 권의 책을 준비 중이며, ‘수요미식회’ 자문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페이스북 페이지에서도 먹는 이야기를 두런두런 하고 있으며, 크고 작은 음식 관련 행사, 콘텐츠 기획과 강연도 부지런히 하고 있다. 퇴근 후에는 먹으면서 먹는 얘기하는 먹보들과의 술자리를 즐긴다.

이해림 푸드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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