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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법대로!' 금감원-보험사 즉시연금 전면전, 끝까지 가나

보험사 "일단 법원 판단부터" 내세우자, 금감원도 소송지원 등 압박 수위 높여

2018.08.21(Tue) 15:52:21

[비즈한국] “금융감독원 결정에 보험사가 이 정도로 강경 대응하는 건 이례적이다. 금융당국에 반기를 들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금융사 고위 임원이 최근 ‘즉시연금’ 논란을 둘러싼 보험업계 반응을 이렇게 전했다. 그는 “금감원이 금융사 감독 권한을 가진 기관인 만큼, 결정이 다소 불만스럽더라도 웬만하면 받아들이는 게 보통이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확산된 게 놀라울 뿐”이라고 덧붙였다. 

 

금융감독원과 보험업계가 즉시연금 미지급금을 두고 사실상 전면전에 돌입했다. 의견 차이를 넘어 소송 대리전으로까지 번졌다. 최종 판단은 법원에서 가려지게 됐지만, 금감원과 보험업계의 줄다리기는 지속될 전망이다.

 

즉시연금 논란을 두고 금감원과 보험업계의 줄다리기가 팽팽하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지난 16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보험사들을 작심 비판하며 “소비자가 부당하게 취급받는 것은 감독자로서 수용하기 어렵다. 우리는 우리대로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즉시연금은 보험료를 한 번에 모두 납부하고 매월 이자를 연금처럼 받는 보험 상품이다. 2000년대 초반 출시돼 10년 이상 가입하면 세금 면제, 은행이자보다 높은 금리 등의 혜택이 알려지면서 인기를 끌었다. 

 

발단은 한 건의 민원이었다(관련기사 '윤석헌 금감원' 첫 타깃은 생보사 즉시연금, 무기는 일괄구제). 한 가입자가 삼성생명 만기환급형 즉시연금(매월 이자를 받다가 만기 때 처음 냈던 원금을 받는 상품)에 가입했는데, 매달 받던 연금액이 갑자기 줄어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가입자는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위에 민원을 제기했고 지난해 11월 분조위는 검토결과, 약관에 연금액이 줄어들 수 있다는 내용이 제대로 명시되지 않았고 설명도 없었다며 그동안 적게 준 보험금(미지급금)을 모두 돌려주라고 권고했다. 삼성생명은 지난 2월 이 결정을 수용해 조정안이 확정됐다.

 

# 보험업계 “법원 판단부터

 

논란은 금감원이 만기환급형 즉시연금 상품에 ‘일괄구제’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히면서부터 확대됐다. 보험사들에게 그동안 지급하지 않았던 만기환급형 즉시연금 보험금을 앞서의 분조위 결정대로 모두 지급하라는 권고다. 보험사마다 상품 약관이 비슷했고, 앞서의 가입자와 유사한 민원이 잇따르기 시작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금감원에 따르면 일괄구제 대상은 20여 개 보험사, 유사 사례 16만여 건이다. 규모는 업계 1위 삼성생명에서만 약 5만 5000명, 지급액은 4300억 원이다. 2, 3위 한화생명(약 850억 원), 교보생명(700억 원) 등 보험업계 전체를 모두 합치면 8000억~1조 원에 달한다. 일괄구제할 경우 보험사들은 이 보험금을 한꺼번에 지급해야 한다. 

 

삼성생명은 지난 7월 26일 이사회를 열고 즉시연금 가입자 1건에 대한 분쟁조정 결과를 수용했다. 하지만 금감원의 일괄구제 권고는 거부하고 법원의 판단을 받기로 결정했다. 삼성생명 측은 “지급 규모가 크고 법리적 쟁점이 있어 이사회가 결정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다”고 밝혔다.

 

지난 13일에는 즉시연금 가입자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채무부존재 확인소송도 냈다. 보험사가 추가로 지급해야 할 돈이 얼마인지를 법원에서 가려보겠다는 목적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삼성생명 관계자는 “민원에 대한 권리·의무 관계를 빨리 확정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화생명도 지난 9일 분쟁조정 결과를 거부하는 의견서를 금감원에 최종 제출했다. 한화생명이 거부한 분쟁조정은 1건이다. 한화생명 측은 “삼성생명과 약관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법원의 판단을 받아보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법리적 논쟁이 해소되면 그 즉시 같은 유형의 가입자들에게 일괄적으로 조치하기로 했다. 소송 제기 등 구체적인 내용은 검토 중이다.

 

나머지 일괄구제 대상 보험사들도 조만간 지급 여부 등 향후 대응을 결정할 전망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아직까지 결정을 내리지 않은 보험사들은 법리적인 검토를 진행하는 동시에 다른 보험사들의 움직임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미지급금 규모가 상대적으로 적은 보험사들은 금감원의 요구를 받아들인다는 방침”이라며 “보험사마다 약관 내용이 다르고 지급 규모도 제각각이라 보험사 공동 대응 없이 각자 판단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차분하게​ 압박수위 높이는 금감원

 

최근 보험사들의 움직임에 대해 금감원 사정을 잘 아는 금융권 관계자는 “보험사들이 분조위 권고를 거부한 데 이어 가입자 개인에게 소송까지 제기한 것을 두고 ​금감원이 ​공식적으로는 차분하게 대응했지만, 내부적으로는 분노를 표현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금감원은 단호한 조치를 취한다는 방침이다. 약관대로 한다는 것. 일부 보험사가 금감원 결정에 대해 “보험의 기본 원리에 충실했기 때문”이라고 항변하지만, 금감원은 “기본적인 원리를 왜 약관에 명시하지 않았느냐”고 맞서고 있다. 

 

실제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제5조를 보면 “약관의 뜻이 명백하지 않은 경우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되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약관은 보험사가 만들고, 보험 관련 지식과 이해도 역시 보험사가 가입자보다 유리하기 때문이다. 앞서 이를 인용한 대법원 판례가 다수 있는 것도 금감원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금감원은 즉시연금 소송과 관련한 조치도 진행 중이다. 민원인 소송지원제도를 8년 만에 가동했다. 분조위로부터 미지급금 지급 결정을 받았음에도 보험사에게 돈을 돌려받지 못한 민원인이 그 대상이다. 변호사 비용 등 소송비용 최대 3000만 원을 지원한다. 소송을 제기한 보험사에 대해 검사한 결과나 내부 자료도 적극 법원에 제공할 방침이다. 

 

업계에서는 당국의 소송지원을 두고 보험사에 대한 경고라는 시각이다. 금감원의 소송지원으로 법정공방이 시작되면 당국과 보험사간 대리법정소송이 시작되는 셈이다. 과거 소송지원은 은행과 증권사 분쟁에 한 차례씩 이뤄졌지만, 금감원 ‘등판’과 동시에 금융사가 소송을 포기해 끝까지 간 적은 없다.

 

즉시연금 분쟁조정을 신속하게 신청·처리하는 시스템도 별도로 마련한다. 이름과 생년월일, 상품명만 입력하면 분쟁조정이 신청된다. 지금까지는 민원인 신상과 민원 내용을 구체적으로 적어야 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가입자에게 분쟁조정 신청을 유도할 순 없지만, 최대한 신청을 많이 받을 수 있도록 하려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조정 신청이 접수되면 절차에 따라 보험사에 통보한다. 조정 결과를 통보받은 보험사는 건별로 20일 안에 수용 여부를 정해야 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들의 조정 결과 수용 여부를 떠나 이 시스템 자체만으로 보험사에게 압박이 된다”고 평가했다.

 

다만 금감원은 올해 10월 부활할 것으로 보이는 종합검사 대상에 삼성생명이나 한화생명은 포함하지 않을 것으로 전해졌다. 그 밖에 보복으로 비칠 수 있는 조치도 당분간 하지 않을 방침이다. 

문상현 기자 moon@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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