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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토 드 뮤지끄] 생강 타르트가 소환한 '주현미'

오래된 한국 가요 직접 불러 기록하는 트롯의 여왕

2019.04.15(Mon) 18:14:58

[비즈한국] 음악과 디저트에는 공통점이 있다. 건조하고 반복적인 일상을 입가심하기에 적당하다는 것. ‘가토 드 뮤지끄(gâteau de musique)’는 우리에게 선물처럼 찾아온 뮤지션과 디저트를 매칭해 소개한다.

 

게으른 사람은 서울 서교동에서 연희동까지 걸어가는데 반년이 넘게 걸린다. 인스타그램은 소식을 알려주지만 거기까지 데려다 주지는 않았다. 낙엽을 밟고 갈 줄 알았던 그 길을 벚꽃잎을 밟으며 갔다.

 

반년이 걸려 도착한 곳은 ‘재인(Patisserie Jaein)’이다. 게으르고 무거운 엉덩이를 꾹꾹 밀어낸 쁘띠가토는 바로 ‘생강’이다. 생강이 들어간 쁘띠가토가 너무 궁금했다.

 

생강을 왜 넣었을까. 무슨 맛이 날까. ‘생강’은 크렘 브륄레(crème brûlée, 차가운 크림 커스터드 위에 얇고 파삭한 캐러멜 토핑을 얹은 양과자) 타르트다. 빠각 부서지는 캐러멜 밑에 바로 그 생강 크림이 들어있다.

 

재인의 생강. 사진=이덕 제공

 

궁금증을 한 번에 해결하기 위해 아주 크게 한 입 깨문다. 잘 구워진 캐러멜 토핑이 깨지며 빠득, 이어서 입 안 가득 차갑고 융단같이 부드럽고 묵직한 질감의 크림이 가득 찬다. 그리고 생강향이 솔솔 올라온다.

 

이 느낌이 익숙하다. 달달한데 생강향. 생강향이 나면서 달달해. 평소 별 관심이 없어 좀처럼 돌아보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봉인이 캐러멜 토핑처럼 파삭 깨졌다. 거기엔 ‘생강센베’를 먹으며 텔레비전 앞에 앉아 ‘가요톱텐’을 보는 어린이가 있었다.

 

30년 전 가수는 어디서 볼 수 있을까. 30년 넘게 활발하게 활동하는 가수는 어디서 볼 수 있을까. 기대와는 다르게 방송사들은 이러한 콘텐츠를 살리는 기획에 능숙하지 못하다.

 

그렇다면 직접 기획하면 그만이다. 지금은 유튜브 시대. ‘재인’이 연희동에서 첫 양과자를 구웠던 것과 비슷한 시기에 ‘주현미TV’ 채널이 시작됐다.

  

 

이렇게 출사표를 던진 후 4개월 만에 60개의 영상을 업로드 하신다.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있고, 조금은 노력을 해야 접할 수 있는 것이 있다. 편의점의 과자와 프랜차이즈 빵집의 빵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라면, ‘재인’의 쁘띠가토는 연희동까지 가는 노력을 해야 먹을 수 있다.

 

아이돌 음악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라면, 다른 음악은 조금 노력을 해서 찾아야 들을 수 있다.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에서 모든 욕구가 충족이 된다면 굳이 멀리 나갈 이유가 없다.

 

가요톱텐에서 1위를 했던 노래. 주현미 - 신사동 그 사람(1988)

 

주현미는 ‘주현미 TV’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으로 찾아왔다. 주현미의 공연에 함께하는 밴드의 밴드마스터인 이반석이 연주하는 기타와 역시 같은 밴드의 키보디스트인 김태호가 함께 하는 영상에는 35년 넘게 프로로 활동한 가수가 보여줄 수 있는 품격과 여유로 가득하다.

 

주현미 - 강남달(1929)

 

동시에 이 채널은 주현미의 거대한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주현미는 이반석, 김태호의 연주와 함께 오래된 한국 가요를 직접 부른다. 비단 노래를 부르는 것뿐 아니라 각 영상마다 이 노래의 작곡가, 작사가, 가수, 레이블, 시대 배경 등의 이야기가 촘촘하게 적혀있다. 한국의 오래된 가요를 직접 불러 기록하는 것이다.

 

노래뿐 아니라 이야기까지 함께 엮어서. 무려 90년 전의 음악부터. 노래를 들으며 글을 읽고 있으면 역사책에는 미처 기록되지 않았을 당시의 생활상이 냄새를 풍기는 듯 느껴진다. 해방 이전, 한국전쟁 이전의 삶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주현미 - 봄날은 간다(1953)

 

우리는 언제나 새로운 이야기를 기다린다. 재미있고 흥미롭고 새로운 이야기는 젊은 힙스터의 몫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내 생각이 또 틀렸다. 지금 가장 재미있고 새로운 이야기는 바로 ‘주현미 TV’에 있다. 지금은 생소한 사운드와 스타일, 그리고 이 땅에 있었던 이야기들.

 

슈프림 바지를 입고 베이퍼맥스를 신은 힙스터가 거칠게 마감된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를 한 카페 안에서 다리를 까닥이며 화면에 엄지손가락을 눌러 잠금을 해제하고 ‘주현미 TV’를 흥미롭게 보는 상상을 한다. 이 아코디언 소리와 절묘하게 떨리는 주현미의 목소리에 푹 빠질 것이다.

 

필자 이덕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두 번의 창업, 자동차 영업을 거쳐 대본을 쓰며 공연을 만들다 지금은 케이크를 먹고 공연을 보고 춤을 추는 일관된 커리어를 유지하는 중. 뭐 하는 분이냐는 질문에 10년째 답을 못하고 있다.

이덕 작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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