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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스타트업열전] '전과자도 창업' 스타트업 강국 프랑스의 실험

스타트업 캠퍼스 '스테이션 F' 출발선부터 뒤처졌던 저소득층·이민자 출신 뽑아 지원

2019.08.28(Wed) 09:56:46

[비즈한국] 파리에 있는 세계 최대 스타트업 캠퍼스 ‘스테이션 F’를 이끄는 여걸 록샌 바자를 지난 주에 소개했다. 스테이션 F에 입주하려는 스타트업에게는 두 가지 경로가 있다. 첫 번째는 파트너 프로그램을 통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스테이션 F 자체 프로그램을 통하는 것이다. 

 

파트너 프로그램은 2019년 현재 29개가 운영되고 있다.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글로벌 테크 기업, 로레알, TFI 등 프랑스 기업, 한국의 네이버, 인시아드, 파리고등경영대학(HEC Paris)과 같은 교육 기관 등이 참여해 각자의 목적과 필요에 따라 스타트업을 선발하고 지원한다. 

 

스테이션 F 자체 프로그램은 두 갈래다. 파운더스 프로그램(Founders Program)은 스테이션 F가 직접 선발한 초기 스타트업들을 육성한다. 200여 명의 젊은 창업가들이 다음 단계로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세계 최대 스타트업 캠퍼스 ‘스테이션 F’에서는 파이터스 프로그램(Fighters Program)을 통해 저소득층·빈민가 출신이거나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이민자들, 난민 등 ‘출발선에서 한발 뒤처진 창업가들’을 지원한다. 2018년에 선발된 13개 팀. 사진=스테이션 F

 

더 흥미로운 것은 파이터스 프로그램(Fighters Program). 스테이션 F가 정의하는 파이터란 ‘출발선에서 한발 뒤처진 창업가들(killer entrepreneurs who just got behind at the start line)’이다. 저소득층·빈민가 출신이거나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이민자들, 난민 등이 이에 속한다. 말하자면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창업에 성공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가진 이들이다. 

 

2017년 스테이션 F가 문을 연 이후 3개월간 27개국으로부터 200여 명의 지원자가 몰렸는데 이 중 13팀, 총 50명을 선발해 파운더스 프로그램 멤버들과 함께 1년간 다양한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의 지원을 무료로 받게 하고 있다. 

 

이들 중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흔히 ‘방리유(Banlieue)’라고 불리는 파리 외곽 저소득층·이민자 가정 출신들이다. 스리랑카, 프렌치 폴리네시아, 카메룬 등 저개발 국가 출신으로서 파리에 처음 온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배경을 가진 이는 자동차 절도범 출신 탈리 포파나(Tally Fofana)이다. 

 

올해 39세인 포파나는 14세에 처음으로 차를 훔쳤다고 한다. 처음에는 단독으로, 나중에는 전문 절도단에서 활동했다. 2013년에 검거되기까지 20년 동안 차량 절도범으로서 ‘한 우물’을 팠으니, 보고 배우고 아는 거라곤 오로지 차량의 보안 장치를 해체하는 것밖에 없었다. 

 

죄질에 비해서는 가벼운 편인 2년형을 선고 받고 복역하는 동안 우연찮게도 최고의 실력을 갖춘 해커들이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회사에 고용되어 데이터를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얘기를 처음으로 듣게 되었다. 깨달음의 순간을 겪으며 자신의 인생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본 그는 이후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해 스타트업에 관한 책들을 닥치는 대로 빌려 읽었다. 길거리에서 배운 전기전자의 기초를 다시 공부하는 한편 특허 출원과 창업 절차 등을 파고들었다.

 

2015년 말 출옥 후 갈 곳이 없던 탈리는 수감자들의 갱생을 돕는 교도소 사제의 도움으로,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창업하려는 이들을 돕는 센강 이니셔티브(Rives de Seine Initiatives)에 등록해 창업의 기본을 배웠다. 

 

자동차 절도범 출신으로 창업한 탈리 포파나. 자신의 전문성(?)을 활용해 차량 도난 방지 시스템을 개발했다. 사진=digitallparis.com

 

드라마틱한 그의 과거는 한편으로는 훌륭한 마케팅 도구가 되었다. 그의 전과에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는 이들도 물론 있었다. 그러나 어차피 통할 사람에게는 통하고 안 통할 사람에게는 안 통할 것임을 간파한 탈리는 자신의 과거를 오히려 적극적인 홍보 수단으로 삼았다. 

 

절도범으로 활약할 당시 그의 특기는 ‘마우스 재킹(Mouse jacking)’이라고 해킹 수법이었다. ‘스마트키’라고도 불리는 ‘키리스 시동 방식(keyless ignition)’ 차량의 맹점을 노린 것으로, 2000년대 이후 고급 차량 절도의 80% 이상이 이 수법을 사용한다고. 차량 보안 장치의 허점을 파고들어 무력화하는 데 능했던 그는 자신의 전문성(?)을 활용해 더 안전한 도난 방지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희대의 위조범이 FBI 컨설턴트로 변신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스필버그의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을 방불케 한다. 

 

이후 탈리는 파리 13대학의 창업 인큐베이터에서 그의 아이디어를 실현할 첫 번째 프로토타입 개발을 도와줄 실력자들을 만나게 된다. 

 

탈리 포파나는 2018년에 스테이션 F의 ‘파이터 프로그램’에 합류한 ‘DigiTall Paris’라는 이름의 스타트업을 설립하고 본격적인 개발과 마케팅에 나섰다. 그가 직접 수초 만에 차량의 도난 방지 시스템을 해킹하는 과정을 촬영해 주요 자동차 업체의 제품 개발 부서에 보낸 것이 가장 효과적인 마케팅 방법이었다고 한다. 자신들이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보안 시스템이 손쉽게 무력화되는 것을 본 자동차 업체 개발자들은 그가 제안하는 보안책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1년간의 스테이션 F 프로그램을 졸업한 포파나는 자동차 업체들을 위한 컨설팅 서비스를 시작해 푸조-시트로엥 그룹(PSA)의 초기 계약을 따내는가 하면, 기존에 출시된 차량에 장착할 수 있는 범용 보안 장치를 개발해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하고 있다. 

 

포파나의 스타트업이 과연 성공할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사실은 ‘파이터 프로그램’ 자체가 현재 진행 중인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성공 확률 또한 그리 높지 않다. 스테이션 F의 총괄디렉터인 록샌 바자도, 파이터 프로그램 참여자들의 경우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관리와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뛰어난 재능과 열정을 가졌으면서도 출발선에서부터 뒤처졌던 인재들에게 희망을 걸고 투자하는 스테이션 F의 시도는 그 자체로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필자 곽원철은 한국의 ICT 업계에서 12년간 일한 뒤 2009년에 프랑스로 건너가 프랑스 대기업의 그룹 전략개발 담당으로 일했다. 2018년 한-프랑스 스타트업 서밋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고 기재부 주최로 열린 디지털이코노미포럼에서 유럽의 모빌리티 시장을 소개하는 등 한국-프랑스 스타트업 교류에도 힘쓰고 있다.​

곽원철 슈나이더일렉트릭 글로벌전략디렉터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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