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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나] 확진자와 접촉, 자가격리 끝나자 학교 폐쇄라니

'팬데믹' 선언 후 사재기 심해지고 온라인 배송도 불통…불안은 점점 커져만 가고

2020.03.19(Thu) 14:17:51

[비즈한국] 지난 번 사재기가 막 시작된 베를린 상황을 전한 지 정확히 2주가 흘렀다. 말이 2주일 뿐 한 달 넘는 시간이 흐른 것 같은 느낌. 당시만 해도, 독일이 유럽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늪에 빠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국경의 경계가 없는 EU의 특성상, 이미 유럽에 상륙한 바이러스는 나라에서 나라로, 도시에서 도시로 퍼지긴 하겠지만, 하루 밤 사이 기하급수적으로 달라지는 수치를 보며 공포와 불안의 강도도 연일 갱신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사이 상황은 역전됐다. 매일 한국에 있는 가족의 안부를 챙기던 나는 이제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지인들로부터 ‘밤사이 안녕한지’를 확인 받는 대상이 되었다. 독일 내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가 무서운 속도로 늘고 있어 감염에 대한 걱정은 당연, 갈수록 심각해지는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까지 가족과 지인들을 걱정시키는 중이다. 

 

평소 수많은 인파가 몰리는 쇼핑몰인 몰 오브 베를린에도 인적이 끊겼다. 사진=박진영 제공​


초기 독일 남부와 서부에서 집단으로 수많은 감염자가 나올 때도 베를린은 비교적 평온했다. 첫 번째 확진자가 나오기 전부터 마트에서 사재기 조짐이 있었지만, 마트 상황을 떼어놓고 보면 대부분 큰 지장 없이 일상을 영위하는 듯 보였다.

 

상황이 급격히 달라짐을 느낀 건 WHO(세계보건기구)의 팬데믹 선언과 이어진 메르켈 총리의 기자회견이 있은 다음이었다. 전 국민의 60~70%까지 감염될 수 있다고 본다며, 의료 체계 붕괴를 막기 위해 확산 속도를 늦춰야 한다고 모두의 협조를 당부하는 총리의 공식 멘트는 사실상 방역을 포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WHO의 팬데믹 선언과 학교 폐쇄 등이 겹치면서 극심한 사재기 현상으로 모든 마트가 몸살을 앓았다. 사진=박진영 제공


일부 언론 등에서 총리의 발언이 불러올 공포감 확산 등을 비판하기도 했지만, 놀랍게도 많은 독일인들은 크게 반발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외국인인 우리는 자체적으로 생존해야 한다는 위기감에 휩싸였다.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생각은 극도의 불안마저 만들어냈다. 

 

총리 기자회견 당일부터 우리 가족은 격리나 다름없는 상태로 지냈다. 학교 뮤지컬 공연을 앞두고 주말 포함 주 2~3회 적게는 4시간 많게는 7시간씩 리허설에 참여하던 아이가 학교로부터 ‘별도의 안내가 있을 때까지 집에 있으라’는 격리 조치를 받았기 때문이다. 리허설을 도와주던 한 학부모 자원봉사자가 확진자와 밀접 접촉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그녀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모든 뮤지컬 참여 학생과 스태프, 일부 학부모 자원봉사자들이 일제히 격리됐다. 

 

남의 일인 줄 알았던 일이 내 일이 되고 보니 참담했다. 하루이틀이면 나올 것으로 예측됐던 검사 결과는 3일째 오후가 되어서야 통보됐다. ‘음성’ 판정이 나와 모두가 격리에서 해제되긴 했지만 그 사이 느낀 초조함은 이루 표현할 수가 없다. 24시간 밖을 나가지 못하는 건 눈곱만큼도 문제되지 않았다. 한국처럼 격리됐다고 지자체 등에서 이것저것 챙겨주는 나라도 아니지만 그 또한 괜찮았다. 아이를 데리러 갔을 때 그녀와 잠깐 이야기를 나눴던 상황, 아이가 그녀의 자녀와 함께 축구하던 모습을 본 것 등 순간순간이 공포를 부추겼다. 

 

날이 따뜻해지면서 유일하게 사람들의 발길이 몰리는 공원에서 사람들이 충분한 간격을 유지한 채 쉬고 있다. 사진=박진영 제공​


막연히 불안했던 때와 달리 ‘격리’의 경험은 일상을 확연히 바꿔놓았다. 언제 또 찾아올지 모르는 격리 상태를 위해 적어도 보름치의 먹거리와 물품은 확보해두어야 했다. 격리에서 해제되자마자 몇 군데 마트를 도는 동안, 팬데믹 선언과 학교 폐쇄 등이 겹쳐 더 극심해진 사재기 풍경도 목격됐다. 간간이 남아 있던 휴지 코너는 아예 휑했고 스파게티 면이나 소스 같은 비축용 식재료도 운 좋아야 한두 개 살 수 있을 정도였다. 전 국민의 60~70%가 감염될 수 있다는 발표 이후 전 국민이 한꺼번에 사재기에 나선 느낌이 들 정도였다. 

 

몇 번 무겁게 물건을 사다 나른 후 안 되겠다 싶어 독일에서 한 번도 이용해보지 않은 온라인 마트 배송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왜 진작 이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하는 심정으로 두 군데 업체를 시도했다. 결과는 실패. 생필품을 판매하는 한 온라인 숍은 사재기 여파인지 온라인에서 물건을 구매할 수 없도록 막아두었고, 신선식품 등을 판매하는 마트는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배송 가능한 매장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온라인 서비스를 이용하던 지인에게 물어보니 배송인력 대비 수요가 많아 배송에 3주 이상 걸린다고 했다. 독일에서 온라인 주문과 배송 등이 원활치 않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시스템이 이 정도로 안 받쳐줄 줄이야.

 

최소 2주 이상의 필요한 물품을 확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다시 오프라인 마트를 돌아야 하는 나는 과감히 마스크를 쓰기로 했다. 99% 이상 사람들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 상황에서 동양인인 내가 마스크를 쓰고 마트를 돌아다니며 받을 시선 따위는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마스크를 썼을 때 눈에 띄게 돼 인종차별을 당할 수 있다는 걱정도 되긴 했지만, 내 가족의 안전과 건강부터 챙기기로 했다. 

 

독일의 거의 모든 주에서 유·초·​중·고교 모든 학교들이 4월 19일 부활절 방학까지 폐쇄됐다. 사진=박진영 제공​


이전에도 불필요한 외출은 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하루 한 번 집 앞 공원을 가거나 주말에 차로 호수 등을 돌아오는 것을 제외하곤 외출하지 않는다. 식재료와 생필품이 줄면 다시 채워야 하니 일주일에 한 번은 마트에 가겠지만 그 외 모든 바깥 활동은 자체적으로 차단했다. 격리가 해제되자마자 학교가 폐쇄돼 6주 가까이 학교에 갈 수 없게 된 아이도 학교에서 시행하는 온라인 수업 등으로 학업을 대신하고 있다. 

 

생활패턴이 이런 식으로 바뀌니 감염에 대한 공포는 많이 줄었다. 나가지 않으니 인종차별을 겪을 일도 많지 않다. 가장 큰 공포는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되느냐이다. 긴긴 유럽의 겨울이 끝나고 사람들 몰려나오는 봄이 시작되는데, 유럽의 봄은 이렇게 실종될 것인지, 국가 간 문을 닫은 데다 어쩌면 조만간 국가 내 이동이 어려워질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 내가 사는 여기가 내가 알던 그 유럽이 맞는지, 연일 보이지 않는 많은 것들과 전쟁을 치르며 살고 있다.

 

글쓴이 박진영은 방송작가로 사회생활에 입문, 여성지 기자, 경제매거진 기자 등 잡지 기자로만 15년을 일한 뒤 PR회사 콘텐츠디렉터로 영역을 확장, 다양한 콘텐츠 기획과 실험에 재미를 붙였다. 2017년 여름부터 글로벌 힙스터들의 성지라는 독일 베를린에 머물며 또 다른 영역 확장을 고민 중이다.

박진영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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