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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 갉아먹는 온콜당직, 필요한 건 보람 아닌 '보상'

월 20여 일, 퇴근 후에도 30분 거리에서 호출대기…정당한 수당 없어 몸도 마음도 피폐

2020.10.01(Thu) 15:50:54

[비즈한국] “온콜당직을 서는 날은 퇴근을 해서도 벨소리를 듣지 못할까봐 소리를 가장 크게 해놓습니다. 샤워를 하는 중에도, 화장실 갈 때도, 영화관에서도 언제 콜이 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퇴근길에 집에 가던 중 콜을 받고 유턴해서 병원에 들어온 적도, 새벽에 자다가 콜을 받고 뛰쳐나간 적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언제 콜이 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늘 시달립니다.”

 

수술실, 투석실 등 일부 부서의 간호사들은 호출대기 상태인 ‘온콜당직’ 제도에 괴로움을 토로한다. 온콜당직을 서는 날에는 30분 이내에 병원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서 대기해야 한다. 사진=비즈한국 DB

 

간호사 김영희 씨(가명, 20대 후반)는 지난 8개월을 돌아보며 말했다. 지금의 대학병원 특수부서에 오기 전에는 다른 대학병원 병동 간호사로 근무했다. 그때만 해도 ‘온콜당직’을 ‘단순히 집에 있다가 불려나오는 당직’ 정도로만 생각했다.

 

온콜당직 제도란 응급환자가 발생할 경우 의료진이 신속하게 병원에 복귀해 진료할 수 있도록 병원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서 대기하는 것을 말한다. 김 씨는 한 달에 18~20일 정도의 온콜당직을 선다. 콜을 받으면 30분 이내에 병원에 도착해야 한다. 응급상황에서는 5분, 10분의 차이가 생명을 가를 수 있기 때문에 콜을 받아 병원에 갈 때는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는 경우도 많다. 신호위반, 과속, 병원 앞 주차 등으로 위반 딱지를 받으면 경찰청에 위반 사유를 적어 내는 의견제출을 통해 과태료를 면제받는다.

 

#한 달 20일을 병원 30분 이내 거리에서 대기

 

온콜당직 대상 간호사들은 병원에서 30분 이내의 거리에 거주해야 한다. 김 씨가 거주하는 곳은 병원과 차로 30분 떨어진 거리인데, 입사했을 때 선배 간호사들이 병원 근처로 옮겼으면 좋겠다는 말을 넌지시 하기도 했다. 김 씨를 비롯한 온콜당직 대상 간호사들은 퇴근 후에도, 주말에도 병원과 30분 내로 생활 반경을 잡는다. 주말이나 휴일에 1박 2일로 여행가는 건 미리 당직표를 조정하지 않는 한 꿈도 꾸지 못한다. 온전히 휴식할 수 있는 주말은 한 달에 2~4일밖에 되지 않는다. 

 

새벽에 불려 나와 일을 해도 다음날 정시에 출근해야 한다. 새벽 두 시에 출근해 두 시간 정도 일한 뒤 집으로 돌아와, 한 시간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다시 출근하는 일이 잦다. 휴게시간이 보장되지 않아 체력적으로 힘에 부치지만 생명을 다루는 일을 한다는 자부심으로 버틴다. 

 

그렇다면 보상은 제대로 이뤄질까? 김 씨가 일하는 병원은 온콜당직 수당이 한 달 7만 원이다. 실제 콜을 받고 근무하면 그 근무시간에 대한 수당은 별도로 계산하지만, 그마저도 한 달 온콜당직 수당 지급이 최대 7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보상이라고 볼 수 없다. 중소형 병원은 대기수당이 전혀 없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김 씨는 “몇 년 후에는 이 일을 그만둘 생각이다. 간호사라는 직업을 사랑하고 보람과 긍지를 느끼지만 가족과 건강, 결혼과 육아를 포기하면서까지 이 일을 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김 씨 주변의 수술실 간호사는 대부분 비슷한 고민을 한다.

 

#해묵은 ‘온콜당직’, 왜 해결 안 되나

 

온콜당직 제도는 비단 간호사만의 문제는 아니다. 의사들도 온콜당직의 폐해를 꾸준히 지적해왔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가 올해 2월 발표한 ‘봉직의 근무환경 실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절반에 가까운 47%의 응답자가 온콜을 받고 있었으며 이들 중 다수는 일주일의 절반 이상 온콜을 받는다고 답했다.

 

2012년 응급실 전문의 당직법이 시행되면서 당시 온콜당직을 시간외근무에 해당하는 당직근무로 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당시 고용노동부는 ‘온콜당직에 따른 대기시간도 정식 근로시간에 포함된다’는 유권해석을 내렸지만 이를 정식 근무로 보지 않는 병원의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이야기다. 온콜을 받고 병원에 나와 진료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진료시간 및 행위에 따라 당직비를 지급하는 병원은 있으나, 온콜 대기에 따른 당직비를 지급하는 병원은 여전히 많지 않다.

 

2012년 고용노동부는 ‘온콜 직에 따른 대기시간도 정식 근로시간으로 봐야 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렸지만 병원 현장에는 변화가 없었다. 사진=비즈한국 DB

 

의료계의 고질적인 인력부족 문제가 원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박창범 강동경희대학교병원 심장혈관내과 교수는 지난해 6월 ‘종합병원에서의 호출대기(소위 온콜제도)의 노동법상 문제’ 논문을 통해 “호출대기시간에 대한 합리적 보상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현재 보건업의 특례규정은 의사의 장기간 노동을 합리화하고 있지만 이로 인해 많은 문제점이 발생하게 된다. 일할 인력이 부족하니 한 사람이 여러 업무를 맡아야 하며 이로 인하여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고 유사시에 적절한 대처를 할 수 없게 되어 환자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또 박 교수는 “공중의 안전이라는 정당한 목적으로 특례제도로의 포함은 불가피하더라도 근로자의 건강을 위한 최소한의 제한이나 합리적인 보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호출대기시간은 법으로 보장된 휴식시간 동안 근로자 개인의 이동과 행동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지만 이에 대해 전혀 보상이 되지 않는다. 호출대기는 전문의와 같은 의사직군 외에도 함께 일을 하는 간호사나 방사선사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보육이 필요한 아이를 가진 간호사나 방사선사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올해 1월 서울 소재 병원에 근무하는 심장내과 직원이 올린 청와대 국민청원 ‘응급의료종사자의 ‘호출대기근무’ 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요구합니다’는 글은 3600여 명의 동의를 받고 종료됐다. 청원인은 “호출대기라는 근로 형식의 특성을 인정해 노동자의 합당한 권리를 찾길 희망한다. 다른 노동자와 같이 저녁이 있는 삶을 바라는 욕심이 아니다. 의료관계종사자가 당연히 희생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합당한 보상으로 돌아온다면 그 자체로 더욱 빛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런 근무 형태에 대한 지적이 이어져도 개선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업계에서는 “결국 비용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행동하는 간호사회 최원영 씨(서울대병원 응급중환자실 간호사)는 “부서마다 온콜당직 여부와 일정이 다르다. 결국 병원에서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서 정확히 ‘당직’을 두는 게 아니라 ‘온콜대기’ 형태의 당직을 세우는 것이다. 호출이 와서 근무했을 때 시간외 수당을 주지만 그렇지 않고 대기하는 시간에 대해서는 근무로 보지 않기 때문에 비용을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 씨는 “​혈액투석실에서 온콜 근무를 할 당시에는 나도 야간에 투석 업무가 생기면 부리나케 뛰어가곤 했다. 간호사의 업무는 굉장히 촘촘하게 돌아가서 마칠 때쯤이면 번아웃 직전이다. 여기에 온콜대기 상태의 부담감이 더해지면 신체에 무리가 갈 때도 온다. 지금은 온콜 근무를 하지 않지만 그때의 습관이 남아 깊게 잠들지 못할 정도로 휴유증이 남았다”고 토로했다. 

김보현 기자

kbh@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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