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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라마] 추석 연휴 '거침없이 하이킥!'과 함께 집콕을

재기발랄 캐릭터와 몽실몽실 정서의 하모니…지금 봐도 웃음 보장할 레전드 시트콤

2020.10.02(Fri) 09:32:53

[비즈한국] 어느 소설에서 ‘늙을수록 고향 쪽으로 머리라도 두고 싶어하듯이 입맛 까다로운 골동품 혀’가 된다고 했다. 빈말이라도 늙었다고 할 순 없는 나이지만, 나 또한 그게 어떤 심정인지는 알 것 같다. 벌써부터 과거를 추억하는데 맛이 들린 건지, 드라마든 영화든 소설이든 어릴 적 재밌게 봤던 것이 최고로 느껴지거든. 그래서 허구한 날 옛날 드라마나 보고 있는 거겠지. 나이 먹으면서 이렇듯 과거를 추억하는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유튜브에서 과거 인기 예능 프로그램이나 시트콤을 짧게 편집한 ‘오분순삭’이 인기인 걸 보라. 자기 전에 ‘무한도전 오분순삭’이나 ‘하이킥 오분순삭’ 보고 자는 사람이 나뿐은 아니란 거지.

 

‘하이킥’ 3부작의 포문을 연 ‘거침없이 하이킥!’. 이전의 김병욱 PD 시트콤의 설정들이 여럿 보이지만 이중 스파이 강유미네 스토리와 개성댁 스토리 등 미스터리한 요소를 덧입히며 새로운 시도를 선보였다. 사진=MBC 홈페이지

 

‘거침없이 하이킥!’은 이후 ‘지붕 뚫고 하이킥!’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으로 이어지는 김병욱 PD의 ‘하이킥’ 시리즈의 첫 타자다. ‘순풍산부인과’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똑바로 살아라’ ‘귀엽거나 미치거나’ 등 김병욱 PD의 시트콤 거의 대부분을 봤지만 시청률과 화제성이 높고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것은 ‘순풍산부인과’와 ‘거침없이 하이킥!’으로 압축될 것이다. ‘지붕 뚫고 하이킥!’은 그놈의 새드 엔딩 때문에 지금까지도 욕을 먹고 있으니까(개인적으론 나쁘지 않았음). 특히 ‘거침없이 하이킥!’의 캐릭터들은 어제 만난 사람들처럼 기억이 선연하다. ‘야동순재’ ‘식신준하’ ‘싹퉁바가지 해미’ ‘까칠민용’ ‘꽈당민정’ ‘하숙범’ 같은 주옥 같은 캐릭터들 말이다.

 

실력 없는 돌팔이 한의사에 ‘야동순재’까지, 파격적인 연기 변신을 보였던 집안의 가장 이순재. 자기만 아는 독불장군인 것은 ‘지붕 뚫고 하이킥!’과 비슷해 보이지만 나이 들었어도 여전히 아내를 사랑하고 자식, 손자들에게 관심이 있는 노인이라는 점에서 한층 따스한 구석이 있는 인물이다. 사진=MBC 홈페이지

 

김병욱 PD의 작품들 대부분이 개성이 확연한 캐릭터들을 선보이지만, ‘거침없이 하이킥!’의 캐릭터들은 캐릭터들끼리 빚어내는 ‘케미’가 압권이었다. 독선적인 한의사 이순재-남편과 며느리 등살에 치여 살지만 힘과 식욕과 애교(!)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나문희 부부, 멧돼지 같은 본능으로 살지만 아내에게는 옴쭉달싹 못하는 이준하(정준하)-시아버지보다 한 수 위의 독선자지만 능력만큼은 뛰어난 박해미 부부, 이혼하고도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거리며 싸우는 이민용(최민용)-신지 부부 등 부부 케미는 그들의 전사(前事)가 얽히며 한층 재미를 더했고, ‘신지-민용-서민정’과 ‘민용-서민정-이윤호(정일우)’로 압축되는 러브라인은 이 작품이 끝날 때까지 시청자들의 애간장을 태웠었다.

 

이순재의 둘째 아들이자 풍파고 체육교사인 이민용(최민용)과 이민용의 전처 신지의 친구이자 민용과 사귀게 되는 풍파고 영어교사 서민정. 이 둘이 이어질지 민정이 민용의 조카인 이윤호(정일우)와 이어질지가 당시 초미의 관심이었다. 사진=MBC 홈페이지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흥미진진했던 건 앙숙끼리의 케미. 톰과 제리 같은 시어머니와 며느리 문희와 해미나 동서지간이었던 해미와 신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강유미(박민영)을 잡는 선생 민용 등 여러 앙숙 케미가 빛나지만 가장 돋보이는 건 역시 형수-시동생 관계인 해미와 민용이었다. 여러모로 용호상박(龍虎相搏)이었던 두 사람은 여러 레전드 에피소드를 남기며 우리를 웃겼다. 그렇게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 두 사람이 결정적인 순간(강도를 만나거나)에는 순식간에 의기투합하거나, 학교에서 교사와 학부형으로 만날 때는 깍듯하다는 점도 재미났고.

 

앙숙 케미 중에서도 용호상박이었던 형수 박해미와 시동생 이민용. 서로의 첫인상은 좋았으나 해미의 과한 간섭과 오지랖을 겪으며 민용은 해미라면 치를 떨게 된다. 그럼에도 극과 극은 통한다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보이는 게 웃음 포인트. 사진=MBC 홈페이지

 

물론 2006~2007년 당시와 달리 느껴지는 부분도 많다. 화끈하고 화통하지만 독선적인 구석이 많아 불호의 시선이 많았던 박해미를 보라. 집안의 실권을 쥐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독불장군 같아 보이지만 다시 보니 그 나름대로 사려 깊게 가족들을 대하는 모습이 보인다. 가족 내 유일한 박씨인 그녀의 분투가 시어머니인 문희에게는 밉살스럽게만 보이는(쓰러진 문희의 뒷수습을 해미가 맡지만 정작 해미만 울지 않는다며 괘씸해한다) 에피소드를 보니 ‘시어머니는 어쩔 수 없나’ 싶기도 하고. 철딱서니도 없고 개념도 없어 보였던 신지도 자세히 들여다보니 변명의 여지가 있었다. 신지의 커리어가 꽃을 피울 결정적 순간마다 연애, 결혼, 출산이 그의 앞길을 가로막았었음을, 그리고 그 포기의 아픔을 남편이었던 민용이 보듬어주지 못했다는 걸 다시 보고서야 눈에 들어왔다.

 

형과 달리 성적은 바닥이지만 외모나 싸움에 있어서는 학교 1등인 윤호는 그야말로 순정만화에서 튀어나온 캐릭터였다. 윤호의 민정을 향한 애절한 사랑은 보는 누나들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삼촌이랑 사귀지 마세요”라고 할 때 그 애틋한 표정이란. 사진=MBC 홈페이지

 

어쨌거나 잔혹한 현실로 끝맺는 바람에 거대한 폭풍을 몰고 온 ‘지붕 뚫고 하이킥!’과 달리 ‘거침없이 하이킥!’은 새드 엔딩이 아니라 안심하고 볼 수 있다. 중간중간 강렬한 페이소스가 묻어나는 에피소드들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따스한 정서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다시 볼 때는 러브라인보다 오히려 그 따스한 정서에 반하게 된다. ‘하숙범’이라 불릴 만큼 순재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은 김범이나 민호의 여자친구 유미, 윤호의 친구 황찬성 등 일명 ‘객식구’라 불리는 아이들이 순재네 식구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분위기. ‘야동’을 탐하는 권태기 노년이지만 여전히 아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순재의 감정. 되는 일이라곤 없는 백수 남편이지만 기가 죽을까 오히려 병원 내 음악방송을 권하는 등 매사 긍정적인 해미의 마음. 그런 몽글몽글한 정서들이 지금도 ‘거침없이 하이킥!’을 재미나게 볼 수 있는 이유가 아닌가 싶다.

 

어디 하나 모자란 구석이 없는 해미와 무지막지한 식탐을 부리고 수시로 방귀만 뀌어대는 준하 커플. 남들은 대체 어떻게 저 두 사람이 이어졌을까 의아해하지만, 둘의 금슬은 무척 좋다. 40대 중년 부부가 저토록 사이가 좋기도 힘들 텐데.

 

지금도 서울시 동작구 흑석동 어딘가에선 민호-윤호 형제와 그들의 친구들이 라면을 먹으며 아웅다웅할 것 같고, 해미가 준하를 우쭈쭈 달래며 훈육하고 있을 것 같고, 풍파고에선 민용이 학생들을 잡으러 달리고 서민정 선생이 함박 웃음을 지으며 걷다가 넘어지고 있을 것만 같다. 코로나 때문에 고향에도 못 가고 추석 연휴를 ‘집콕’할 예정이라면 유쾌한 웃음을 보장할 10여 년 전의 그들을 소환해보자. 왜 레전드가 레전드인지 확인할 수 있다고.

 

어설프게 ‘불꽃 카리스마’를 연습하는 민호를 지켜보며 민호의 과장된 표정을 따라하는 순재네 식구들. 투닥거릴 때는 미친 듯이 투닥거리며 웃음을 자아내지만 결정적일 때는 서로의 모자란 점을 덮어주고 보완해 주는 따스한 식구들이다. 사진=MBC 홈페이지

 

필자 정수진은? 

영화와 여행이 좋아 ‘무비위크’ ‘KTX매거진’ 등을 거쳤지만 변함없는 애정의 대상은 드라마였다. 드라마 홈페이지의 인물 소개 읽는 것이 취미로, 마감 때마다 옛날 드라마에 꽂히는 바람에 망하는 마감 인생을 12년간 보냈다. 최근에는 신대륙을 탐험하는 모험가처럼 유튜브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중.​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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