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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라마] 선생과 학생 사이에 선 넘는 로맨스 '사랑해 당신을'

'로망스'와 더불어 대표적인 교사·제자 연애물…결혼 이후 분량에 생생한 현실감 부여

2020.11.23(Mon) 10:49:33

[비즈한국] 요즘도 중고등학교에서 ‘총각선생님’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설마, 아무리 시대가 변했어도 사람 사는 거 다 비슷하겠지? 총각이란 말은 잘 안 쓰겠지만. 여학교에서 젊고 싱글인 남자 선생님은, 게다가 좀 해사하게 생긴 선생님이라면 그는 그 학교의 ‘아이돌’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건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다. 남학교에서 젊고 예쁘장한 여자 선생님이 ‘여신’이 될 가능성이 농후한 것처럼. 보통은 흔히 있을 법한 선생님에 대한 동경과 흠모로 끝나지만 가끔 남다른 경우도 생겨난다. 1999년 방영된 드라마 ‘사랑해 당신을’도 그런 남다른 경우를 그린 드라마다.

 

교사와 제자 간의 사랑을 다룬 ‘사랑해 당신을’은 35%가 넘는 높은 시청률을 보이며 사랑받았다. 등려군의 ‘첨밀밀’을 리메이크해 여성 듀오 두리안이 부른 주제가 ‘I'm Still Loving You’도 높은 인기를 누렸고. 사진=MBC 홈페이지

 

‘사랑해 당신을’은 여고에 갓 부임한 수학 선생 김형준(감우성)에게 반한 제자 봉선화(채림)가 사랑을 쟁취하는 과정을 그린 16부작 드라마로, “넌 학생이고 난 선생이야!”로 유명한 2002년 작 ‘로망스’와 함께 대표적인 교사와 제자의 연애물로 꼽힌다. 제자인 봉선화가 성인이 얼마 남지 않은 고3인 데다 형준이 부임한 시기도 2학기인지라 실질적으로 형준과 선화가 선생과 제자로 만난 것은 반년 정도. 스물일곱 살과 열아홉 살이니 고작(?) 여덟 살 나이 차지만 어쨌든 선생과 제자로 만난지라 이들의 사랑에는 당연히 장애물이 많다. 형준 자체도 어린 선화의 마음을 흔히 있는 선생님에 대한 짝사랑, 풋사랑 정도로 치부했고, 주변인 모두가 그랬다.

 

주말 아침극 ‘짝’에서 귀여운 여고생이던 채림은 ‘카이스트’를 거쳐 ‘사랑해 당신을’에서 스타덤에 올랐다. 사랑에 빠진 상큼 발랄한 소녀의 마음을 잘 표현했다는 평. 사진=MBC 홈페이지

 

하지만 우리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 일들이 생각보다 현실에 종종 일어날뿐더러, 또 그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 일들이 곰곰이 따져보면 말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안다. 하물며 선생님이자 친구 엄마였던 유부녀와 결혼에 골인한 저 멀리 다른 나라 대통령도 있는데 뭘. 그렇기에 김형준 선생님과 반장이던 봉선화의 사이에서 가장 큰 장애물은 형준의 여사친이자 형준과 결혼까지 할 뻔한 백장미(김지영)가 아니다. 선생임에도 처음부터 선화를 연적으로 대한 장미의 방해는 유치했지만 심플했다. 정작 형준과 선화의 장애물은 그들의 사랑을 인정받고 난 후부터 증폭된다.

 

시어머니란 예부터 어려운 법. 선생님과 사랑을 쟁취하는 게 가장 어려운 줄 알았던 봉선화(채림)는 나이 많은 시어머니 황 여사(김용림)를 위시로 사뭇 다른 가풍과 시집살이에 적응하며 우여곡절을 겪는다. 사진=MBC 홈페이지

 

사실 ‘사랑해 당신을’은 형준과 선화가 결혼하는 장면으로 끝낼 수도 있는 드라마다. 하지만 드라마는 몇 달 만에 번갯불에 콩 볶듯이 사랑과 결혼을 해치운 이들의 결혼생활에 절반 가까운 분량을 할애한다. 결혼은 현실이라는 것을 잘 나타내기 위한 장치로는 역시 가족들이 최고. 형준의 나이 많은 어머니 황 여사(김용림)와 역시 나이 차 많이 나는 이부형(異父兄) 유인상(서인석)과 그의 아내 옥희(박원숙)로 구성된 선화의 시가 인물들의 면면부터 선화의 결혼생활이 쉽지 않을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선화의 외할머니 윤 여사(사미자)와 자유분방하고 서구적인 분위기로 선화를 양육한 선화 아버지 봉민섭(길용우)과 민현자(양금석)로 구성된 선화의 친정 인물들이 시가와 사뭇 분위기가 다르면서 시가 사람들과 친하다는 것도 딜레마다.

 

시어머니뻘 되는 형님 옥희(박원숙). 선화와 가장 큰 우여곡절을 겪는 건 옥희인데, 지금 보면 옥희의 처지가 가장 딱하기는 하다. 시어머니 모시면서 자기 딸과도 한 살밖에 차이 안 나는 철딱서니없는 동서의 뒤치다꺼리를 하게 됐으니. 사진=MBC 홈페이지

 

생각해보라. 시가에 들어가서 할머니뻘 시어머니와 부모님뻘 시숙 내외와 함께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들지. 게다가 시어머니와 할머니가 친하고, 아주버님과 아버지가 친하니, 형준과 선화에게 있었던 일들이 고스란히 양가에 전달되어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 되는 경우가 왕왕 생긴다. 여기에 아들만 둘인 선화 시어머니 황 여사와 딸만 있는 선화 외할머니 윤 여사 간의 기 싸움도 한몫한다. 정말이지, 연애가 한 순간 꽃놀음이라면 결혼은 미친 짓이랄까(그리고 형준 역의 감우성은 3년 뒤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는 영화에 출연했다).

 

손자손녀를 키워준 외할머니 윤 여사(사미자)와 ‘딸바보’처럼 선화를 아껴주던 아버지(길용우). 선화 시어머니 황 여사의 ‘아들 부심’과 윤 여사의 ‘딸 부심’의 격돌도 ‘사랑해 당신을’의 잔재미 중 하나였다. 사진=MBC 홈페이지

 

그럼에도 ‘사랑해 당신을’의 봉선화는 어린 나이다운 패기와 특유의 긍정적인 면모로 어려운 시집살이와 결혼생활을 제법 잘 헤쳐 나간다.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하고 시어머니에게 예쁨 받기 위해 대학도 가지 않을 것이라 했지만 결국 대학도 가고 쌍둥이를 임신하면서 우여곡절을 잘 극복하며 알콩달콩한 마무리로 끝을 맺는다. 그러나 나는 오랫동안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쌍둥이를 낳고도 과연 선화는 대학을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을까? 원하는 대로 졸업하고 취직하여 시가는 물론 친정 부모님에게 효도하며 살았을까?’ 하고.

 

지금도 여중•여고에서 가슴 아프게 남자 선생님을 짝사랑하는 학생들이 있겠지? ‘사랑해 당신을’은 학창시절 한번쯤 짝사랑해 본 선생님과 당시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힘이 있다. 사진=MBC 홈페이지

 

그런데 또 달리 생각해보면 20년이 지난 지금 선화는 더 홀가분하게 잘 지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쯤 쌍둥이를 대학에 보내고 누구보다 홀가분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있을지도 모르지. 1999년에 고3이던 선화는 나와 동갑내기인데, 대학과 취업이 필수로 여겨지던 당시에도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을 원하는 이유 중 좋은 배우자를 만나려는 목적이 컸던 걸 생각하면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선화를 위너로 보는 시선이 많았을 수도 있다. 내 친구들만 봐도 결혼하자마자 혹은 아이를 갖고 나서 직장을 그만둔 사례가 많은데, 선화는 신랑도 구하고 좋은 대학도 가고 아이까지 낳으니 남들 할 거 일찌감치 다 해버린 셈이니까. 

 

아무려나 ‘사랑해 당신을’은 세상 무서울 거 없는 밝디밝은 봉선화로 인해 보는 재미가 있는 드라마다. 만약 당신이 학창시절 좋아한 선생님이 있다면 추억과 함께 곱씹기 아주 좋다. 그때 그 아이돌이었던, 여신이었던 선생님들, 여전히 잘 지내시겠지?

 

필자 정수진은? 

영화와 여행이 좋아 ‘무비위크’ ‘KTX매거진’ 등을 거쳤지만 변함없는 애정의 대상은 드라마였다. 드라마 홈페이지의 인물 소개 읽는 것이 취미로, 마감 때마다 옛날 드라마에 꽂히는 바람에 망하는 마감 인생을 12년간 보냈다. 최근에는 신대륙을 탐험하는 모험가처럼 유튜브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중.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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