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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사마을 재개발①] '달동네 가치' 고수하다가 관리처분 직전 계산기 꺼내든 서울시

2008년 그린벨트 해제되며 정비계획 수립…첫 '주거지 보전 사업'에 비용 문제 걸림돌

2022.05.19(Thu) 14:21:36

[비즈한국]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불리는 노원구 백사마을 재개발 사업이 표류하고 있다. 골목길과 계단, 작은 마당 등을 그대로 살리는 저층 임대주택 구상에 높은 건축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한 서울시가 제동을 걸었다. 2011년 오세훈 서울시가 ‘보존 필요가 있다’며 기존 정비계획을 보류한 지 11년 만이고, 박원순 서울시가 ‘주거지 보전 사업’ 직접 시행을 선언한 후로부터 10년 만이다.

사업의 순항을 기대하던 집주인과 세입자들은 예견된 사업 지연에 고개를 저었다. 주민들이 더 이상 손쓸 수 없을 정도로 낙후된 집을 버리고 선(先)이주를 택한 탓에 백사마을은 방치된 채 타당성 조사와 투자심사 결과를 기다리게 됐다. 이로써 산자락의 고층 아파트 단지로는 수익성을 확보하고, 임대 주택을 통해 옛 모습을 고스란히 살린다는 서울시의 도전에도 물음표가 던져졌다.​

서울시가 백사마을의 재개발 사업에 제동을 걸었다. 주거지 보전 사업인 저층형 임대 주택 공사비가 과도해 타당성 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거주하던 주민 대부분이 이주를 마쳐 대문 곳곳에는 공가를 표시하는 동그라미가 그려졌고(위) 건물 외벽에는 위험 건축물 경고문이 부착됐다. 사진=강은경 기자

서울시가 백사마을의 재개발 사업에 제동을 걸었다. 주거지 보전 사업인 저층형 임대 주택 공사비가 과도해 타당성 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거주하던 주민 대부분이 이주를 마쳐 대문 곳곳에는 공가를 표시하는 동그라미가 그려졌고(위) 건물 외벽에는 위험 건축물 경고문이 부착됐다. 사진=강은경 기자


노원구 불암산 기슭에 위치한 중계동 산104번지 일대 백사(104)마을은 1971년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로 묶여 증개축을 못하고 70년대 주거형태를 유지해왔다. 2008년 도시미관 개선을 목적으로 그린벨트가 해제된 이듬해 구역을 반으로 나눠 저지대는 임대아파트, 고지대는 분양아파트를 짓는 것으로 정비계획을 수립, 구역지정을 고시했다. 하지만 서울시가 도시재생의 가치를 구현하겠다며 나서며 수차례 사업이 변경, 지연돼왔다. 긴 시간 끝에 지난해 3월 조합은 사업시행 인가를 받고 12월에는 GS건설을 시공사로 지정해 사업이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전망됐다.

#백사마을로 ‘상생형 주거지 재생’ 실험하던 서울시, 타당성 조사 결정

19일 현재 비즈한국 취재를 종합하면 백사마을 재개발 사업은 임대주택 공사비 관련, 타당성 조사를 진행 중이다. 조사 결과는 오는 6월 중 나올 것으로 예측된다. 서울시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 정비업계 등에 따르면 서울시는 타당성 조사 결과에 따라 행정안전부에 중앙투자심사를 맡길 계획이다. 통상적으로 재개발 지역의 임대주택 사업은 투자심사 대상이 아니지만 서울시는 공사비 1700억 원이 투입되는 백사마을 사례가 투자심사 대상인지 가늠해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순항 중이던 사업이 멈춰선 것은 저층형 임대주택의 건축비가 비싸다는 이유로 서울시가 공사비 산정 결정을 보류하면서다. 비용 논란은 지난해 말 고개를 들었다. 마을 원형 보존을 목표로 하는 임대주택 건축비(3.3㎡당 1100만 원)가 같은 단지 내 아파트(3.3㎡당 508만 원)보다 2배 이상 높게 책정됐다. 시행사인 SH에 따르면 사업 추진 절차에 따라 지난해 12월 서울시에 공사비 내역을 보냈지만, 서울시는 양식을 문제 삼아 수정을 요청했다. 지난 3월 공사비 내역을 다시 전달 받은 서울시는 ‘공사비가 너무 비싸 검토가 필요하다’며 승인을 미루고 있다.

서울시는 백사마을의 원형을 보존하는 임대주택과 아파트 단지가 어우러진 백사마을 투시도(위)와 시뮬레이션. 사진=서울시 제공

서울시는 10년 넘게 백사마을의 원형을 보존하는 상생형 주거지 재생을 추진해왔다. 임대주택과 아파트 단지가 어우러진 백사마을 투시도(위)와 시뮬레이션. 사진=서울시 제공


#‘평당 건축비 1100만 원’ 예측 못 했나

임대주택을 짓는 비용이 분양 아파트의 두 배를 웃도는 까닭은 무엇일까. 백사마을 정비 사업은 도시재생과 재개발을 결합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484세대 규모(4만 832㎡) 주거지 보전 사업과 아파트 1953세대 규모(14만 6133㎡) 재개발 사업의 콜라보다. 주거지 보전 사업은 서울시의 ‘상생형 주거지 재생’의 실험물이기도 하다. 백사마을의 임대주택은 흔히 아는 국민임대아파트 형태가 아니다. 다가구처럼 한 주택에 2~4세대가 거주한다. 서울시의 주거지 보전 사업은 재개발구역에서 기존 마을의 지형, 터, 생활상 등 해당 주거지의 성격을 지키며 임대주택을 건설하는 사업이다.

백사마을 설계 계획과 조감도를 살핀 건설업 전문가는 “아파트의 경우 층마다 구조가 똑같기 때문에 거푸집을 짜서 층을 올리는 체계화된 형식으로 공사가 진행되지만, 임대주택 단지의 경우 모양이 제각각인 건물 하나하나를 따로 지어야 해서 공사비가 많이 책정된 것으로 보인다. 도로 공사만 따져 봐도 다 밀고 처음부터 길을 다시 다지는 아파트와 달리 좁은 골목길 형태를 그대로 재조성하는 데 비용과 시간이 더 많이 소요된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건설업계 관계자도 “사용하는 재료가 달라 상대적으로 큰 비용이 필요하고 좁은 길에서는 건설장비 투입이 어려워 인건비 부담도 커진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주택을 짓는 비용이 아파트보다 훨씬 비싸다는 것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SH 관계자는 “공문은 아니어도 추정치로는 계속 얘기가 나왔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다른 임대주택과의 형평성, 투자 대비 효율성 등 예산 투입에 대해 객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서울시는 백사마을 임대주택 사업이 2009년 당시 ‘리모델링형’ 주거지 보전 방식으로 추진됐던 것을 언급하며 “사업비가 일반 재개발 임대주택보다 적게 소요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2013년 건축물 노후화로 리모델링이 불가하다는 판단에 따라 ‘철거 후 기존 건축물의 지형, 터, 길을 보존하는 신축 방식’으로 변경 결정했다. 올해 3월 기준 건축비는 동일 단지 내 분양 주택 대비 2배 이상 필요한 상황이며 주민들이 요구하는 임대주택 매입가는 타 임대주택 매입비 대비 약 7배 이상”이라고 설명했다.

마을에서 만난 주민들은 오랫동안 원형 보전 가치를 앞세우던 서울시가 관리처분 인가를 목전에 두고 뒤늦게 비용 문제를 거론하며 사업을 지연시키는 것에 반발했다. 주민 A 씨는 “서너 번 사업이 진행되다가 엎어지는 게 반복되니 다들 포기하다가 이번에는 되려나 싶어 다들 낡은 집을 놓고 빠져나갔다. 보수를 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주민 B 씨도 “돈이 많이 드는 게 문제라면 너무 늦게 깨달은 것 아닌가”라고 고개를 저었다.

마을에는 대부분 노인만 남았다. 난민촌에 가깝게 시작한 백사마을의 건물들은 50여 년 세월에 곧 쓰러질 듯 위태로운 모습이다. 이에 2019년 8월 위험건축물 거주자 중 이주희망자를 대상으로 임시이주가 시작됐고 현재 80% 이상의 가구가 이주를 완료한 상태다.

서울시는 오는 6월 타당성 조사 결과에 따라 투자심사를 맡길 예정이다. 투자심사 결과까지는 1년 반의 시간이 소요돼 사업 지연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백사마을 입구 전경. 사진=강은경 기자


#‘임대 부지 매매’ 방안까지 언급

지난 17일 서울시와 SH, 주민대표회의는 공사비 논란 이후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서울시는 투자심사를 받아야 할 가능성이 높다며 사업 지연을 막을 수 있는 최선의 카드로 ‘부지를 서울시에 매매하는 안’을 거론한 것으로 전해진다. 주거지 보전 사업 특성상 서울시가 직접 부지를 매입하고 건축 및 공급 업무를 진행하고 있는데, 일단 매입만 하고 임대 주택을 짓는 사업은 보류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에 주민대표회의 측은 “서울시가 달동네 가치를 지켜야 한다며 사업을 끌고 온 게 10년이다. 목적도 정하지 않은 채로 ‘부지를 팔면 신속한 사업 진행이 가능하다’는 식의 제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 임대주택을 지어서 주민들에게 적절한 거주 환경을 제공한다고 했던 서울시의 목표와도 상반된다”고 말했다.

주민대표회의는 일반 분양 아파트 공사를 먼저 시작하고, 1년 반 뒤 투자 심사 결과에 따라 임대 주택 부지의 방향을 결정하는 방안을 주장하고 있다. 시간이 지체될수록 이주비 등이 누적돼 주민의 부담이 커지는 탓이다.

이와 관련해 SH 관계자는 “해당 내용은 17일 회의에서 처음 나온 안건이라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다. 다만 주민들의 재산권과 주거권을 최우선으로 사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답했다.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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