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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와이너리] 어떤 현대건축의 쓸쓸한 퇴장 '밀레니엄 힐튼 서울'

20세기 한국 건축계 한 획 그은 김종성의 역작…보존 가치 충분한 디자인 유산의 철거가 남긴 아쉬움

2023.05.25(Thu) 09:49:42

[비즈한국] 1983년 개관한 밀레니엄 힐튼 서울이 2022년 12월 31일 39년간의 영업을 마쳤다. 재건축을 위해서다. 대우센터빌딩(現 서울스퀘어)과 남대문경찰서 빌딩 뒤편인 남대문로 5가동 일대는 해방 후 40여 년간 서울에서 손꼽히는 우범지대 중 하나였다. 상경한 온갖 사람들이 첫발을 내딛는 관문인 서울역 맞은편에 있기 때문이다. 그 어두운 지역은 과거 ‘양동’(陽洞)이라는 아이러니한 지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사진=한동훈 제공

 

이 지역 재개발의 첫 삽을 뜬 것은 대우그룹이었다. 행사 개최와 귀빈 접대를 위한 특급호텔을 건립하기로 결정한 김우중 회장은 후암동과 연결된 이 일대 땅을 매수하고 자회사 동우개발을 설립했다. 동우개발은 1977년 12월 힐튼 인터내셔널과 호텔 운영 위탁계약을 체결했다.

 

1935년 태어난 건축가 김종성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재학 중 유학길에 올랐다. 1956년 시카고 일리노이 공과대학(IIT)에 입학한 그는 현대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지도하에 학사와 석사 과정을 마쳤다. 학사 졸업 후인 1961년 미스의 사무실에 입사해 건축가로 일했고 1966년 IIT 건축대학 교수로 임용됐다. 1972년 IIT 부학장, 1978년 학장 서리를 역임했다.

 

사진=한동훈 제공

 

20년 넘게 현대건축의 본산에서 활동한 그에게 힐튼호텔 설계가 맡겨졌다. 아마 김종성이 김우중 회장의 경기고 2년 선배라는 사실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김종성은 호텔 프로젝트를 수주한 후 건축사사무소 서울건축을 세우고 1978년 귀국했다. 그는 20세기 한국 건축계에서 현대 건축의 원류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건축가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당시 서울 시내 주요 호텔은 일본 회사와 연계된 설계가 대부분이었다. 외형도 콘크리트 PC 패널을 주로 쓰는 등 한쪽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었다. 기술을 통한 아름다움, 엄격한 논리에 입각한 보편성을 추구하던 김종성은 힐튼호텔을 기존 경향과 반대되는 국제적 수준의 건물로 설계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김종성은 미스의 유산을 자신만의 언어로 발전시켰다. 수평면과 철골 기둥을 주조로 한 3.8m의 모듈화를 통해 건물 전체의 질서를 세우고 이를 입면에 드러냈다. 반복되는 알루미늄 외벽과 어두운 색유리의 조합은 힐튼만의 고유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만든다. 미스의 대표작 시그램 빌딩 커튼월을 제작한 업체가 힐튼 커튼월의 생산과 설치도 감독하여 시공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대리석, 오크 패널, 황동 등 여러 소재를 통해 차가운 질서와 따뜻한 물성의 조화를 이룬 힐튼호텔은 1980년대 한국 건축의 중요한 성취로 꼽힌다. 김종성은 이후에도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중 힐튼호텔에서 나타난 경향과 가장 닮은 작품으로 서울 종로구의 SK서린빌딩(1999)이 있다. 건축가는 오피스 빌딩으로는 36층의 서린빌딩을 가장 아낀다고 한다.

 

사진=한동훈 제공

 

논란이 많았던 힐튼호텔은 철거 후 주변 지역과 묶여 재건축될 예정이다. 서울대 건축학과 김승회 교수는 이를 두고 “신라 범종을 녹여 가마솥을 만드는 꼴”이라 비판했다. 일각에선 ‘사적지도 아닌 곳을 보존해야 한다면 다른 빌딩도 비슷하지 않은가’ 주장하지만, 구 힐튼호텔은 타 건축과 차별화된 스토리와 그에 걸맞은 건축 수준을 지닌 보존 가치가 충분한 유산이다. 그 후신은 과연 선배의 성취를 이어받을 수 있을까? 전문가의 역사적 평가를 바탕으로 재산권과 가치 높은 건축의 존치를 양립시킬 수 있는 제도 보완이 시급한 시점이다.

 

​필자 한동훈은? 서체 디자이너. 글을 쓰고, 글씨를 쓰고, 글자를 설계하고 가르치는 등 글자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 관심이 있다. 현재 서체 스튜디오 얼라인타입에서 다양한 기업 전용폰트와 일반 판매용 폰트를 디자인한다. ‘월간 디자인’​, 계간 ‘디자인 평론’​​등에 기고했으며 온·오프라인 플랫폼에서 서체 디자인 강의를 진행한다. 2021년 에세이집 ‘글자 속의 우주’​를 출간했다.

한동훈 서체 디자이너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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