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비즈한국 BIZ.HANKOOK

전체메뉴
HOME > Story↑Up > 덕후

[스덕일기19] 임요환과 코리안 드림

2016.09.27(Tue) 09:49:04

중국 게이머의 코리안 드림을 얘기해보자. 지금에야 ‘코리안 엑소더스’라 불리며 한국 게이머들이 중국, 유럽, 미국으로 수출되는 좋은 상황이지만, 스타크래프트1은 그러지 못했다. 말이 좋아 e스포츠지, 한국만 즐기는 e스포츠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2년 이후 스타크래프트 국제대회는 한국의, 한국에 의한, 한국을 위한 리그가 되었다. 심지어 한국에서도 기욤 패트리-베르트랑 이후 성공한 외국 게이머는 없다. 베르트랑은 2002년 스카이 때 임요환과 4강에서 맞붙었으나 0:3으로 실신당했다. 기욤의 전성기는 이미 저문 지 오래였다.

 

여튼, 그런 와중에도 CKCG 등 중국을 노린 중국초청대회는 꽤 있었다.

 

2004년에 WEG 한중전 대회에 임요환이 나갔다. 전성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임요환이었다. 억대 연봉을 받고 있었고, 중국 게이머한테 질 실력은 아니었다. 아무리 못해도 중국 게이머에게 지는 한국 게이머를 상상할 수 없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싱가포르 축구팀에 지는 모양새다.

 

장밍루와 박정석.


그런데 졌다. 개마고원에서 테테전으로 졌다. 그렇게 디시인사이드 스타크래프트 갤러리는 멸망했다. 유저들은 이 경기를 ‘만리장성 관광’이라 불렀다. 스타크래프트 갤러리가 터지고, 임요환의 팬카페가 터졌다. 생각해보자. 제대로 된 스타크래프트1 프로 리그는 한국밖에 없었으며, 외국 게이머들은 제대로 된 팀도 없어 연습실 환경도 없었다. 그런데 졌다. 졌다. 졌다.

 

커뮤니티가 터질 정도로 비판받았다. 까이고, 까이고, 까였다. 그냥 졌다고 까였다. 진짜 대차게 까였다. 하도 까이고 까여서 스갤 폭발이 멈추지 않자, 자체적으로 임요환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말자 제안했다. 그래서 생긴 게 ‘그분’이란 별명이었다.

여기서 ‘그분’의 용례를 보자.

 

“연봉 랭킹 1위임에도 불구하고 만리장성 관광이나 당하시는 게이머가 누구죠?”

“그분입니다.”

“먹튀 랭큉1위는 누구죠?”

“그분입니다.”

 

시간이 흘러, SKT T1이 중국 게이머 2명을 영입했다. 샤쥔춘이랑 루오시엔이었다. 2명 다 프로토스였다.

 

왼쪽이 루오시엔, 오른쪽이 샤쥔춘. 아쉽게도 둘 다 성공하지 못했다.


샤쥔춘은 가끔 좋은 모습을 보였다. 마재윤을 다크아칸으로 제압하는 정의로운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다른 선수들은 그러지 못했다. 비록 한두 경기 중국 선수들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을지언정, 실력의 갭이 워낙 컸다. 만년 유망주처럼 가능성만 보여주었지 그 가능성을 안정적인 실력으로 만들지 못했다. 운 좋게 CJ가 SKT 잡았다고 해서, CJ가 더 나은 팀이란 얘기는 아닌 것처럼 한두 경기 잘한 것으로 클래스를 만들 순 없었다. 10대 후반부터 PC방, 사설서버, 클랜, 연습실에서 연습하던 한국 게이머를 따라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중국 선수들의 코리안 드림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났다. 한국 선수들의 실력은 그들에게 통곡의 벽이었다. 한국에 진출한 선수들은 2010년 이후로 모습을 감췄고, 종목을 바꾸거나 은퇴했다.

구현모 필리즘 기획자 bizhk@bizhankook.com


<저작권자 ⓒ 비즈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