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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음악일기] 현존하는 음악의 신 '카니예 웨스트'

떠들썩한 사생활에도 재능과 혁신으로 최고의 음악가 칭송 받아

2017.06.02(Fri) 11:26:19

[비즈한국] 21세기 음악계 최고의 ‘뜨거운 감자’라면 역시 카니예 웨스트(Kanye Omari West)입니다. 그는 기행을 쏟아냅니다. 백인 가수인 테일러 스위프트가 ‘최고의 뮤직비디오’상을 받자 마이크를 빼앗고 “이 상은 (흑인이라 상을 못 받은) 비욘세에게 갔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흑인 커뮤니티가 모두 트럼프에 분노할 때 그가 마음에 든다고 말하고 트럼프와 독대하기도 했지요. 심지어 자신이 신 다음가는 존재라며 자신을 ‘이저스(Yeezus, 카니예의 Ye와 예수의 Jesus를 섞은 말장난)’​로 칭하기도 합니다. 

 

카니예 웨스트와 그의 5집 앨범 커버(오른쪽). 그의 광기 어린 정신세계를 보여준다. 비평적으로 그의 최고작이기도 하다.

 

그는 놀라울 정도로 찌질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자신의 전 여자친구 앰버 로즈(Amber Rose)를 놀리다가 전 여자친구와 그의 당시 남자친구이자 동료 래퍼였던 위즈 칼리파(Wiz Khalifa)에게 공격을 당하기도 했지요. 앰버 로즈는 카니예 웨스트가 항문을 만져주는 걸 좋아했다고 폭로합니다. 웨스트의 아내는 섹스비디오 스캔들로 전 세계인에게 유명해진 킴 카다시안입니다.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성적인 뒷이야기까지 서슴없이 화제가 되는 게 카니예 웨스트의 이미지입니다.

 

오만과 분노, 그리고 불유쾌한 스캔들의 상징인 카니예 웨스트. 하지만 음악계에서는 아무도 그를 얕잡아보지 못합니다. 힙합, 나아가 대중음악을 완전히 바꿔버린 혁신가이기 때문이죠. 그것도 몇 번씩이나 말입니다. 그가 일으킨 변화들이 현재 힙합 음악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카니예 웨스트의 음악적 혁신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래퍼 커먼(Common)의 ‘비(Be)’. 힙합 팬들 사이에서 역대 최고의 인트로로 꼽힌다.

 

카니예 웨스트는 음악에 엄청난 혁신을 일으켰습니다. 그는 소울풀하고 전통적인 샘플링 음악으로 최고의 힙합 프로듀서가 되었습니다. 제이지, 커먼 등의 래퍼들에게 멋진 곡을 만들어준 거지요.

 

특히 보컬 활용이 돋보였습니다. 기존 힙합에서는 후렴 보컬을 빼는 게 관례였습니다. 유명한 노래의 후렴구가 들어가 버리면 그 곡에 오히려 점령당하게 됩니다. 재해석을 통해 새로운 매력을 주기 어렵다는 뜻이죠. 

 

카니예 웨스트의 ‘스루 더 와이어(Through the Wire)’. 보컬을 강조한 소울 명곡 샘플링. 사랑의 힘을 외치는 후렴구에 자신의 개인사인 교통사고를 대입함으로써 재해석한 카니예 웨스트의 대표적인 초기 명곡이다. 후렴은 피치를 잔뜩 올려 칩 몽크를 연상시키는 톤으로 만들어 버렸다.

 

카니예 웨스트는 거꾸로 후렴구를 강조했습니다. 재해석도 가미했습니다. 후렴구 톤을 기술적으로 잔뜩 올려서 새로운 기계음으로 만들어버렸지요. 

 

명곡이 명곡인 이유는 역시 후렴의 파괴력 덕분인 경우가 많을 겁니다. 카니예 웨스트는 명곡의 파괴력은 그대로 유지한 채, 새롭게 해석했습니다. 이 방식으로 그는 힙합계를 완전히 뒤집어 버렸습니다. 이후 힙합계는 한동안 후렴구 샘플링의 시대가 되었지요.

 

카니예 웨스트의 ‘스트롱거(Stronger)’. 이미 성공한 강렬한 일렉트로니카 싱글을 힙합으로 재해석했다. 이후 일렉트로닉과 힙합의 조합은 전 세계를 지배했다.

 

카니예 웨스트는 첫 두 장의 앨범으로 전통적인 소울 샘플링 힙합 음악의 최고봉에 섰습니다. 여기서 만족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아마 역대 최고 프로듀서 중 하나로 기억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의 3집은 일렉트로니카를 적극 받아들입니다. 3집 타이틀곡 ‘스트롱거(Stronger)’는 프랑스의 일렉트로닉 듀오 다프트 펑크와 함께했습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던 다프트 펑크의 명곡 ‘하더 패스터 스트롱거(Harder Faster Stronger)’를 재해석했습니다. 이를 통해 힙합과 일렉트로닉의 결합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다시 만듭니다.

 

프랑스의 일렉트로니카 듀오 다프트 펑크(Daft Punk)의 ‘하더 패스터 스트롱거(Harder Faster Stronger)’.

 

3집 앨범 발표 이후 카니예 웨스트는 우울한 시간을 보냅니다. 어머니의 죽음, 오랜 연애의 종말 등 큰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는 이 우울한 느낌을 직접 드러내기로 합니다.

 

4집은 우울함을 강조했습니다. 힙합에서 여지껏 피해왔던 감성입니다. 남자답지 못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카니예 웨스트는 노래까지 했습니다. 역시 남자답지 못하다는 이유로 래퍼들이 기피한 방법입니다.

 

카니예 웨스트의 ‘러브 록다운(Love Lockdown)’​. 우울한 감정을 노래하는 래퍼라는 파격적인 방법으로 충격을 주었다. 그는 자신의 감정에 가장 솔직했다. 그 솔직함이 오히려 힙합의 영역에 새로운 색감을 가져다주었다.

 

그럼에도 카니예 웨스트의 음악은 사람들을 마음을 울렸습니다. 개인사와 솔직함이 결합됐기 때문이겠죠. 음악 또한 탄탄했습니다. 그렇게 힙합은 ‘멜랑콜리’라는 새로운 무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래퍼 드레이크가 멜랑콜리를 적극 계승해 현재 힙합을 지배하고 있지요.

 

카니예 웨스트의 ‘올 오브 더 라이츠(All Of The Lights)’. 수많은 뮤지션의 참여와 함께 이를 콜라주처럼 이어붙이는 제작 방식으로 업계에 충격을 주었다. 

 

카니예 웨스트의 혁신은 단순히 곡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곡을 만드는 방법도 바꿔 버립니다. 5집 앨범에서 그는 하와이에 별장을 빌렸습니다. 그리고 엘튼 존부터 비욘세까지 수많은 음악가를 초대합니다. 그들의 작업을 초대형식으로 받고, 이를 콜라주처럼 붙여서 새로운 음악을 만듭니다. 

 

20명이 넘는 피처링과 협업으로 만들어낸 새로운 음악은 제작방식을 완전히 뒤바꿔 버렸습니다. 이 같은 제작 방식은 미국 힙합계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영향을 미쳤지요. 힙합은 물론 아이돌까지 ‘송 캠프’라는 방식을 적극 받아들일 정도입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스템적으로’ 만드는 데 이만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겠지요.

 

카니예의 최근 앨범 ‘더 라이프 오브 파블로(The Life Of Pablo)’. 한 번 완성품을 내놓지 않고 끊임없이 수정해서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단독 공개했다. IT 제품 제작 방식이다.


지금도 카니예 웨스트는 혁신을 계속합니다. 그의 7집은 제이지의 음원 플랫폼 타이달에 독점 공개되었습니다. 그게 끝이 아닙니다. 그의 앨범은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앱이 꾸준히 업데이트되듯 앨범 또한 시간이 지나면 변하는 방식입니다. 마치 모바일 앱처럼 음악 앨범을 다루는 거죠.

 

스트리밍으로 모두가 음악을 듣는 시대입니다. 그렇다면 음악도 게임처럼 ‘모바일 미디어’여야 합니다. 카니예 웨스트는 모바일 게임처럼 음악을 공개했습니다. 음악을 꾸준히 수정하고 업데이트함으로써 오랜 기간 신선함을 유지하는 방식이지요. ‘모바일 미디어’에 ​가장 ​어울리는 제작 방식입니다. 카니예 웨스트는 음원을 ‘독점 공개’합니다. 이를 통해 경제적 주도권을 획득했습니다. 이 또한 모바일 게임의 수익 모델에 가깝습니다. 곡 제작 방식을 넘어 음악제작 방식까지 바꾸려는 혁신의 시도라 볼 수 있겠습니다.

 

제이지와 카니예 웨스트의 합작 앨범 ‘와치 더 스론(Watch The Throne)’. 지방시와 베르사체의 디자이너로 알려진 ‘리카르도 티시(Riccardo Tisci)’가 앨범 디자인을 맡았다. 힙합에 럭셔리 브랜드 활용을 적극 도입한 카니예 웨스트다운 앨범 커버다.

 

음악 외적인 면에서도 카니예 웨스트는 큰 영향을 끼쳤는데요, 그는 패션도 바꿨습니다. 래퍼들은 후드티, 모자, 헐렁한 청바지 등의 스트리트웨어를 입었습니다. 카니예 웨스트는 달랐습니다. 루이비통, 구찌 등의 명품도 과감하게 시도했습니다. 최고급 정장을 입은 래퍼의 이미지는 다시금 세상을 바꾸었지요. 이제 래퍼들도 딱 맞는 사이즈에 최고급 하이엔드 패션을 구사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는 래퍼의 이미지조차 바꿔 버렸습니다. 초기 카니예 웨스트는 ‘대학교에 다니는 모범생 이미지의 래퍼’였습니다. 충격적인 이미지였습니다. 그는 예수에 대한 믿음을 다루는 등 범생이 래퍼의 장르를 개척했습니다. 지금 카니예 웨스트는 그 이미지에서 벗어났습니다. 하지만 이 이미지를 계승한 제이 콜(J Cole), 드레이크(Drake) 등의 래퍼들은 현재 랩 게임을 지배하고 있지요. 이미지로도 그는 혁신의 시작이었던 셈입니다.

 

카니예 웨스트는 혁신의 화신이지만 정통 흑인음악의 달인이기도 하다. 그가 존 레전드와 함께 프로듀싱한 존 레전드(John Legend)의 ‘헤븐(Heaven)’이 대표적이다.

 

카니예 웨스트의 움직임은 힙합, 나아가 팝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기행에도 최고의 음악가로 인정받고 있는 이유입니다. 현재 음악가들은 크든 작든 그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최초의 아이돌이자 최초의 성공적인 뮤지션이라 할 수 있는 비틀스도 그랬습니다. 존 레넌은 가장 강렬한 이미지를 갖고 있었죠. 그는 음악계를 뒤바꿨습니다. 반전운동 등 사회적 메시지 전달에도 적극적이었죠.

 

하지만 가까이에서 본 그는 악당이었습니다. 스태프들에게 자신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고 모욕했습니다. 처자식을 버리고 새로운 아내를 얻기도 했지요. 심지어 ‘인생의 사랑’이라는 오노 요코를 만난 후에도 여성 편력은 계속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팝음악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그게 스타라는 존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두가 인정하는 재능을 가졌지만, 사생활은 오만하고 모든 걸 공개하지요. 스타란 어떤 존재인지 고민하게 만드는 악당이자 역대 최고의 혁신가, 카니예 웨스트였습니다.

김은우 아이엠스쿨 콘텐츠 디렉터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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