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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춘욱 경제팩트] 4차 산업혁명, 제조업 4.0을 외치는 이유

투자·역동성 부진한 상황에서 생산성 향상 방법은 혁신뿐

2018.01.15(Mon) 14:44:35

[비즈한국] 최근에 읽은 책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는 매우 흥미로운 문제를 제기한다. 4차 산업혁명을 거론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미국의 성장은 1970년대를 전후해 탄력이 둔화되었다는 것이다. 아니 조금 더 기준을 완화하더라도 2004년을 전후해서 가파른 생산성의 혁신은 일단락되었다고 주장한다.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뤄보기 위해 먼저 1946년부터 노동생산성 변화를 살펴보자. 여기서 노동생산성이란 시간당 산출물의 변화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100명의 근로자가 하루 10시간 노동해서(1000노동시간) 1000개의 자동차를 생산했다면, 시간당 산출물은 1대의 자동차가 된다. 그런데 컨베이어 벨트를 비롯한 일련의 기술 혁신과 자본투자 덕분에 1000노동시간당 2000대의 자동차를 생산하기 시작했다면?

 

미국에서는 1970년을 전후해 노동생산성의 향상 속도가 급격히 둔화되었다. 사진은 현대자동차 미국공장의 작업 모습. 사진=현대자동차 홈페이지


이 경우에는 시간당 산출물은 2대의 자동차가 될 것이다. 따라서 노동생산성은 100% 증가한 것으로 측정된다. 물론 한계가 있다. 시간당 1대 생산된 자동차와 2대 생산된 자동차의 연비나 안전성, 그리고 각종 사양이 동일할 것인지 등 ‘측정’의 문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생산성의 변화는 사회의 진보를 측정하는 매우 좋은 도구임은 분명하지만, 과거의 혁신을 정확하게 측정한다고는 주장하기 힘들다. 그러니 지금부터의 분석은 ‘대략적인 어림’ 정도로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아래 그래프는 1948년부터 미국 노동생산성 변화율을 표시한 것인데, 1970년을 전후해 노동생산성 향상 속도가 급격히 둔화된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간단하게 숫자로 표시하면, 1948년부터 1970년까지 연평균 노동생산성은 2.7% 개선되었다. 그러나 1971년 이후 2017년 3분기까지의 노동생산성 변화율 평균은 불과 1.8%에 그친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2005년 이후의 연평균 노동생산성 변화율은 단 1.3%에 불과하다. 

 

미국 노동생산성 변화율. 자료: 세인트루이스 연준


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벌어졌을까? 로버트 D. 고든 교수는 그 원인을 창업 붐 쇠퇴와 대대적인 설비투자 붐의 종막 등 크게 두 가지에서 찾는다. 먼저 사업 역동성의 변화를 살펴보자. 

 

창업한 지 5년이 안 된 신생 기업의 비율은 1978년 14.6%였지만, 2011년에는 8.3%로 줄었다. (중략) 직원 수로 측정하면, 5년 이하의 기업이 차지하는 고용 비율은 1982년에 19.2%였지만, 2011년에는 10.7%로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중략)

 

노동시장의 역동성을 연구하는 자료들은 노동 이동성이 1990년 이후로 1/4 이상 떨어지는 등 ‘유동성’이 감소했다고 지적한다. 일자리와 노동자의 이동성이 낮아졌다는 것은 새로운 취업 기회가 줄어들었다는 뜻이고, 실직 기간이 길어질 경우 일자리 구하기가 그만큼 어려워진다는 의미가 된다. -책 826쪽

 

경제발전의 속도가 느려지는 원인을 사회 역동성의 축소에서 찾는 고든 교수의 지적에 일단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한 가지 궁금증이 제기된다. 

 

사회 전체적으로 본다면 역동성이 떨어질 수 있지만, 정보통신 부문으로 한정해서 살펴볼 경우에는 미국 경제의 역동성이 여전히 살아 있지 않을까?

 

이에 대해 고든 교수는 2004년을 고비로 해서 정보통신 부문도 역시 성장 탄력이 둔화된 것은 마찬가지라고 주장하며, ‘무어의 법칙’이 깨진 것을 지적한다. ‘무어의 법칙’이란 2년마다 컴퓨터 칩의 트랜지스터 수가 2배로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래의 그래프는 1990년 이후 미국 전체 소비자물가와 정보통신 제품의 물가를 비교한 것인데, ‘무어의 법칙’이 어떤 것인지 금방 알 수 있다. 파란 선은 정보통신 제품의 물가인데, 1990년을 100으로 할 때 2017년 말의 물가는 7.9에 불과하다. 반면 붉은 선으로 표시된 전체 소비자물가는 1990년을 100으로 할 때, 2017년 말 물가가 190.0을 기록한다. 즉 전체 소비자물가가 90% 상승할 때, 정보통신 제품의 물가는 오히려 92% 이상 하락한 셈이다.

 

정보통신 제품의 가격이 끝없이 떨어진 이유는 ‘무어의 법칙’으로 대변되는 정보통신 부문의 기술 향상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래 그래프를 보다 자세히 살펴보면, 한 가지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정보통신 제품의 가격 하락 속도가 2000년대 중반을 고비로 급격히 둔화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숫자로 확인해보면, 1992년부터 2004년까지 정보통신제품 가격은 연평균 12.7% 하락했지만 2005년부터 2017년까지 물가는 연 4.9%에 떨어지는 데 그쳤다. 참고로 1992~2004년의 전체 소비자물가 연평균 변화율이 2.6%, 그리고 2005~2017년의 변화율이 2.0%였던 것을 감안하더라도 정보통신제품의 물가 하락 속도는 과거에 비길 수 없을 정도로 둔화되었다. 

 

미국 전체 소비자물가와 정보통신 제품 소비자물가의 추이(1990=100). 자료: 세인트루이스 연준


왜 2004년을 고비로 정보통신 제품의 생산성 혁신 속도가 둔화되었을까? 이에 대해 로버트 D. 고든 교수는 바로 투자의 급격한 위축을 두 번째 이유로 든다. 

 

연방준비은행은 산업생산지수와 생산능력지수를 매달 발표한다. (중략) 1980년 이래의 제조업 생산능력의 변화를 살펴보면, 1972~1994년 사이에 연평균 2~3%를 유지하다 1990년대 말에는 7%에 육박할 정도로 급등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중략) 

 

1990년대 말 제조업 생산능력 증가율을 일시적으로 밀어 올리는 데 정보통신기술(ICT) 투자가 큰 역할을 한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마틴 베일리 등은 제조업 전체 통계에서 ICT 생산을 떼어내고 계산해보는 결과, 1987~2011년 사이 제조업의 총요소생산성(TFP) 증가율이 연평균 0.3%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중략)

 

1990년대 말에 나타난 생산성의 회복이 가까운 시일 내에 재현될 것이라고 보지 않는 두 번째 이유는 투자 부진 때문이다. (중략) 자본금 대비 순투자의 비율은 1960년대부터 하강세였다. (중략) 1990년대 말에 보여주었던 생산성의 부활 현상이 반복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데 필요한 투자는 지난 10년간 실종 상태에 있었다. -책 826~830쪽

 

아래의 그래프는 이 같은 지적을 잘 보여준다. 1990년대 말 주식시장에서 정보통신 주식의 거품이 꺼진 다음부터 미국 제조업 생산능력 증가율은 사실상 제로 수준으로 복귀했기 때문이다. 결국 기업의 역동성도 떨어지고 더 나아가 투자도 부진한 상태에서 유일하게 생산성의 향상을 촉진할 수 있는 것은 ‘혁신’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라 할 수 있다. 

 

미국 생산능력지수 변화율. 자료: 세인트루이스 연준


최근 한국이나 독일 등 수많은 나라의 정부가 ‘4차 산업혁명’ 혹은 ‘제조업 4.0’ 등의 구호를 외치는 이유를 이 대목에서 발견할 수 있다. 투자와 역동성이 과거보다 위축된 상황에서 유일하게 남은 노동생산성의 향상 요인, 즉 경제 전체의 혁신을 자극해 보자는 게 숨은 의도가 아닐까 짐작해 본다.​ 

홍춘욱 이코노미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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