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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데이] '첨밀밀' '화양연화' 홍콩의 연기 여왕 장만옥

왕가위 감독 작품 통해 연기 만개, 칸과 베를린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

2018.06.01(Fri) 19:32:02

[비즈한국] 1980~1990년대 아시아권에서 홍콩 영화는 할리우드 영화에 필적하는 인기를 누렸다. 타이완 출신으로 홍콩 영화에서 주로 활동하던 임청하(린칭샤)와 왕조현(왕쭈셴)은 흔히 그 시절 중화권 대표 미녀 여배우로 꼽힌다. 두 사람은 작품성이나 연기를 요구하는 작품보다 상업성 높은 작품에 출연하는 편이었다. 이런 연유로 애석하게도 세월이 흐른 현재 대중들에게 임청하는 ‘동방불패’, 왕조현은 ‘천녀유혼’이란 이미지로 각인돼 있다. 

 

영화 ‘첨밀밀’ 스틸 컷.

 

이들과 전성기가 겹치지만 당대의 홍콩 영화를 논할 때 ‘연기의 여왕’​으로 꼽히는 여배우는 바로 장만옥(장만위)이다. 장만옥의 미모에 대한 대중들의 인지도는 임청하나 왕조현의 그것에 비해 낮았던 것은 사실이다. 임청하나 왕조현은 마치 옛적 중국 4대 미녀가 현세로 튀어나온 것 같은 화려한 미모를 소유했다. 장만옥은 발달된 광대, 토끼상과 고양이상이 오묘하게 섞인 얼굴 등 개성이 강한 편이었다. 

 

그러나 장만옥이 과연 누구인가. 그녀는 연륜을 더할수록 익어가는 놀라운 연기력으로 세계 4대 영화제의 여우주연상을 두 개나 수상하며 아시아권에서 가장 높은 성취를 이룬 여배우가 됐다. 장만옥은 1992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1930년대 중국 무성영화 시대 최고의 여배우를 다룬 ‘롼링위’(1991)로 수상했다. 그녀는 전 남편인 프랑스 영화감독 올리비에 아사야스와 함께한 ‘클린’(2004)으로 칸 영화제에서 아시아 여배우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1964년 영국령 홍콩에서 태어난 장만옥은 1983년 미스홍콩 대회에 출전해 2위로 입상한 것을 계기로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발을 딛게 됐다. ‘청의 왕자’(1984)로 데뷔한 그녀는 초기엔 연기력 논란에 시달려야 했다. 당시 그녀의 연기를 보면 극의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놀라 동그랗게 눈을 뜬 토끼와 같은 표정으로 일관돼 있었다. 

 

장만옥의 인지도가 국내에서 높아진 계기는 성룡(청룽)이 감독과 주연을 겸한 ‘폴리스 스토리’ 시리즈가 개봉하면서부터다. 장만옥은 폴리스 스토리 1편부터 3편까지 진가구(성룡 분)의 여자친구 아미 역할로 출연했다. ‘폴리스 스토리 1’(1985)는 군사정권 시절 암울한 시대상으로 인해 1998년에야 개봉했다. 경찰 부패와 과도한 폭력성으로 개봉 불가라는 어처구니없는 이유에서였다. 1편에서 숏컷 헤어스타일로 젊은 시절 놀라운 미모를 발산하는 임청하도 출연했다.

 

배우 초기의 장만옥의 연기를 을 보면 누가 현재와 같은 대배우의 반열에 도달하리라 상상했겠는가. 그런데 최고의 스타일리스트로 꼽히는 명감독 왕가위(왕자웨이)가 장만옥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그녀를 페르소나로 자신의 작품에 계속 출연시키면서 그녀의 연기력은 만개했다.

 

왕가위의 감독 데뷔작인 느와르 ‘열혈남아’(1987)에서 장만옥은 유덕화(류더화)의 상대역으로 출연해 섬세한 연기를 선보여 가능성을 보여줬다. 열정에 불타는 의기를 가진 남자를 표현할 때 열혈남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영화 ‘열혈남아’는 그런 남자의 이야기다.

 

장만옥은 이후 왕가위 감독의 ‘아비정전’(1990)에서 도박장 매표소 직원인 소려진으로 출연해 쉽게 마음을 주지 않지만 마음을 주면 좀처럼 변하지 않는 순정파 여인 연기를 훌륭하게 소화해 냈다. 영화에서 아비 역으로 출연한 고 장국영(장궈룽)이 속옷 차림으로 거울을 보며 맘보 음악에 맞춰 혼자 춤을 추는 장면은 지금도 회자되는 명장면이다. 

 

왕가위 감독의 무협 멜로 영화 ‘동사서독’(1994)에서 장만옥은 강호를 떠돌며 명성을 쌓아가는 검객 구양봉(장국영 분)을 사랑했으나 지쳐 상처를 받고 그의 형과 결혼한 자애인 역을 맡았다. 영화에서 대사 한 마디 한 마디를 가슴에 아로새기며 말하는 장만옥의 연기는 탄복할 정도다. 

 

영화 ‘클린’ 스틸 컷.


진가신 감독의 ‘첨밀밀’​(1997)은 장만옥의 이름을 현재의 젊은 세대까지도 기억하게 하는 대표작이다. 사랑하지만 헤어지고 운명처럼 다시 만나는 남녀의 얘기를 다룬 ‘첨밀밀’은 가슴 뭉클한 러브 스토리다. 여명(리밍)이 분한 소군과 장만옥이 분한 이교가 짐자전거를 함께 타며 행복한 모습으로 홍콩의 거리를 누비는 장면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1986년 돈을 벌기위해 중국 본토에서 홍콩으로 넘어온 소군과 이교는 타이완 출신의 아시아의 가희 등려군(덩리쥔)을 좋아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두 사람의 만남이 시작되면서 사랑에 빠지지만 운명의 장난으로 서로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된다. 헤어진 후 3년여 만에 우연찮게 재회한 소군과 이교는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고 있었다. 소군은 아내와 이혼하고 조직의 보스인 남편이 사건에 휘말리면서 이교는 미국 뉴욕으로 도망치듯 떠난다. 

 

이교의 남편은 미국에서 사망하고 10년의 세월이 흘러 운명에 이끌려 뉴욕에 온 소군은 거리를 걷던 중 TV에서 흘러나오는 등려군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이 소식을 보고 있던 이교와 재회한다. 이때 등려군이 부르는 ‘첨밀밀’(티엔미미)가 흘러나오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장만옥은 왕가위 감독과 다시 조우한 ‘화양연화’(2000)에서 양조위(량차오웨이)와 함께 출연했다. 화양연화는 인생에서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뜻하는 말이다. 같은 날 한 아파트로 이사 온 주모윤(양조위 분)과 소려진(장만옥 분)은 각자의 배우자들이 서로 외도하는 것을 알게 된다. 주모윤과 소려진은 배우자의 외도라는 동병상련의 고통으로 서로를 연민하며 사랑에 빠지지만 도덕관념으로 인해 헤어진다는 내용이다.  ‘화양연화’는 BBC 선정 21세기 최고의 영화 100선 중 2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으며 양조위는 이 영화로 2000년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영웅’(2002)에서도 장만옥의 연기는 훌륭하다. 중국의 거장 장예모(장이머우) 감독의 탁월한 영상미가 돋보이는 ‘영웅’은 사마천의 사기열전 ‘자객열전’ 중  ‘형가’ 편의 내용을 기반으로 한다. 형가는 천하 통일을 앞둔 진시황 영정을 암살하려는 자객이었지만 실패하고 장렬한 최후를 마치는 인물이다. 영화에서는 형가 대신 이름 없는 자객 무명으로 이연걸(리롄제)이 연기했다. 영화의 모든 장면이 영상미로 충만한 가운데 특히 붉은 색 옷을 입고 날리는 은행잎과 단풍에서 칼을 휘두르며 겨루는 장쯔이와 장만옥의 모습은 지금도 회자되는 명장면이다. 

 

장만옥은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장작인 ‘클린’을 끝으로 10년 넘은 현재까지 영화를 거의 찍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좋은 시나리오를 고르느라 고심 중이라고 한다. 장인정신은 칭찬할 만하지만 일세를 풍미한 장만옥이 새로운 작품으로 스크린에 컴백하기를 많은 영화팬이 기대한다. ​ 

장익창 기자 sanbada@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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