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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 CCTV 의무화' 시위 나선 어머니의 사연

양악수술 받다 아들 사망 '재발' 막으려 환자단체 시위…의협 "환자에 도움 안될 것"

2018.12.26(Wed) 18:17:25

[비즈한국]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지식이 부족한 환자가 의료진의 과실 여부를 밝혀내기란 결코 쉽지 않다. 2년 전 의료사고로 막내아들을 잃은 이나금 씨(58)는 그 어려운 것을 해냈다. 지난 10월 경찰 수사 결과 의료진의 잘못된 의료 행위로 인해 아들이 사망했다는 구체적 증거가 발견된 것. 그럼에도 이 씨는 추운 겨울 국회 앞에서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그가 힘든 투쟁을 이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 양악 수술 받은 막내아들에게 무슨 일이…

 

고인이 된 아들 권대희 씨(당시 만 24세)는 정치외교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취업준비생이었다. 권 씨가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성형외과에서 양악 수술을 받기로 한 건 사각턱 콤플렉스 탓. 집안의 반대로 부모에게는 수술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어머니 이 씨는 “아들 친구 말에 의하면 아들이 ‘14년 무사고 수술’이라는 광고 문구를 믿고 이 병원을 택했다”고 전했다.

 

2016년 9월 8일 오후 12시 30분, 권 씨는 수술실로 들어섰다. 마취를 마치고 56분부터 권 씨의 아래턱과 사각턱을 절개하는 수술이 시작됐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이 수술의 경우 본 수술에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지혈 및 봉합에 1시간, 마취를 깨우는 데 1시간 등 총 4시간 정도가 걸린다. 그러나 권 씨의 수술은 무려 6시간 27분이 소요됐다.

 

길었던 수술 시간만큼 권 씨의 예후는 최악이었다. 수술이 끝난 7시 30분쯤, 권 씨는 맥박 수가 130을 오갈 정도로 불안정한 상태에서 회복실로 옮겨졌다. 그러나 회복실에서 혈압은 더 떨어졌고 상황은 갈수록 악화됐다. 결국 그는 밤 11시 34분 구급차에 실려 대학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이후 권 씨는 의식불명에 빠져 깨어나지 못했고, 49일의 연명치료 끝에 10월 26일에 숨을 거뒀다. 부검 결과 직접사인은 ‘과다출혈’이었다. 어머니 이 씨는 “가족에게는 자정 넘어 연락이 왔다. 새벽에 막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이미 몸에서 피가 ​3분의 2가량 ​빠져나갔다고 했다”며 회상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수술 시간이 많이 소요됐고, 왜 이렇게 많은 피를 흘렸을까. 수술을 담당한 의사는 ​사고 이후 ​억울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다행히 수술실에는 CCTV가 설치돼 있었고, 이 씨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CCTV를 300번 이상 돌려보며 초 단위로 분석했다.

 

이나금 씨가 확인한 CCTV에는 의사가 수술 중 피를 많이 흘려 지혈이 잘 되지 않는 아들을 간호조무사에게 맡긴 채 수술실을 빠져나간 장면이 담겨 있었다. 사진=이나금 씨 제공


CCTV에는 충격적인 화면이 담겨 있었다. 의사가 수술 중 피를 많이 흘려 지혈이 잘 되지 않는 권 씨를 간호조무사에게 맡긴 채 수술실을 빠져나간 것. 간호조무사들이 교대로 지혈을 하는 동안 이 집도의는 다른 환자 수술을 하고 있었다. 이 씨는 “간호조무사가 아닌 집도의가 지혈술을 했으면 대희는 절대로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족은 의료진이 의료기록을 조작했다는 합리적 의심도 제기한다. 마취기록지에는 ‘펜타스판’이라고 하는 수액을 환자에게 3회 투여했다고 기재돼 있었지만, CCTV 영상을 분석한 결과 2회 투여에 그쳤다는 것. 이 씨는 “마취기록지 허위기재 부분은 고소했는데 검찰 기소 때 빠져 있어 검사에게 밝혀달라고 ​최근 ​탄원을 넣었다”고 말했다. 앞서의 ‘무면허 의료행위’와 ‘과실치사’에 대해서는 경찰이 의료진의 혐의를 인정해 검찰에 기소된 상태다.

 

아들을 떠나보낸 지 2년이 넘었지만, 이 씨는 그날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미어진다. 지금도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고 했다. 이 씨는 지난 11월 22일과 12월 17일 의료사고 피해자·유족·한국환자단체연합회가 함께 추진하는 릴레이 1인시위에 참여했다. 아들과 같은 의료사고 피해자가 생겨나지 않도록 수술실에 CCTV 설치를 의무화해달라는 요구가 담긴 팻말을 들었다. 그는 “의료사고가 났을 때 CCTV가 없어서 피해 사실을 입증하지 못하는 사람이 대다수”라며 “나쁜 의사를 가려내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아들이 세상을 떠난 지 2년이 됐지만 이나금 씨는 여전히 투쟁을 이어나간다. 사진=이나금 씨 제공

 

이와 같은 수술실 CCTV 설치를 둘러싼 논쟁은 꽤 오래전부터 이어져왔다. 2014년에 수술실에서 의료진이 생일 파티를 하는 사진이 공개돼 온 국민의 공분을 샀다. 그다음 해인 2015년 1월 7일 당시 최동익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의료사고 발생 위험이 높은 의료행위의 경우 환자나 환자 보호자의 동의를 얻어 CCTV 촬영을 허가하자는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하지만 법안은 끝내 통과되지 못했다. 당시 소관위원회였던 보건복지부는 “취지에는 공감하나 환자 개인의 사생활 및 비밀이 침해되고 의료인의 진료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최근 수술실에 CCTV 설치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금 커지는 모양새다. 올 10월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1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수술실 CCTV 설치에 찬성하는 비율은 82.8%로 나타났다. 특히 지난 9월 경남 양산시에서 산모가 출산 도중 뇌사 상태에 빠지고 아이가 사망한 사고가 발생한 후 환자단체연합회를 중심으로 CCTV 설치를 법제화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 의료계 “​​CCTV 설치하면 결국 환자에게 피해 돌아가”​

여전히 거세게 반발하는 의료계에도 나름의 논리가 있다. CCTV로 인해 의사들이 위축돼 위험한 수술을 하지 않으려는 풍조가 확산될 수 있다는 것. 의사가 의료 과정에서 최선을 다해도 혹여 환자가 사망하게 되면 유족이 감정적으로 CCTV 영상을 요구하며 의사에게 모든 책임을 물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결국 ​의사는 환자의 생명과 존엄성을 보호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의사윤리강령이 제대로 지키지 않을 것이라는 논리다.

 

또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게 되면 민감한 신체 정보가 노출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로 삼는다. 아무리 환자와 환자 부모의 동의가 있어야만 CCTV 영상 열람을 가능하게 한다 할지라도 영상이 유포될 경우 막대한 피해가 생길 수 있다는 것.

 

​이에 환자단체​는 어린이집에는 CCTV를 의무화하면서 왜 수술실에만 엄격하게 적용하냐는 재반론을 내놓는다. 다만 어린이집 CCTV​ 의무화에 대해서도 “​영상정보 열람 시 제3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하도록 지침에 명시하고 있으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육아정책연구소의 지적이 있다. ​

 

의료계는 수술실에 CCTV 설치를 법제화하는 대신 수술방 출입 관리 기록부를 쓰거나 내부 고발 시스템을 강화하는 방안이 있다는 입장이다. 사진=이종현 기자


의료계는 득보다 실이 많은 CCTV 설치 대신 다른 방법을 제시한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대리수술을 막으려면 수술방 출입 관리 기록부를 쓰거나, 내부에서 고발할 수 있는 시스템을 확실히 구축하면 된다”며 ​“​​​CCTV 설치를 통해서만 ​의료과실을 입증​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지금도 의무기록을 정교하게 해 과실을 입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수술실 CCTV를 둘러싼 환자단체와 의료계의 갈등은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다. 지난 2015년 미국 위스콘신주에서 비슷한 법안이 제출됐지만 의회의 반대로 한 차례 무산됐다. 이후 2017년 12월 다시 제출됐고 올해 1월 관련 상임위원회에 회부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이를 놓고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와 대한의사협회의 해석은 엇갈린다. 안 대표는 “해외에서는 법이 발의되기라도 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법안이 발의도 안 됐다”고 지적했다. 반면 대한의사협회 측은 “미국 환자단체들도 논의를 하면 ‘CCTV 설치를 하면 안 되겠구나’ 생각하고 논의를 포기한다”는 설명이다.

 

과연 앞으로 CCTV 설치가 법제화될 수 있을까. 양쪽의 전망 역시 엇갈린다. 우선 환자단체는 CCTV 설치 의무가 법제화되리라는 기대감이 적잖다. 정부의 움직임이 과거와 다르기 때문. 실제 경기도에서는 내년까지 6개 도립의료원의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고, 정부도 국공립 의료기관 수술실 CCTV 설치를 우선 도입하기로 했다.​ 다만 의료계는 충분한 논의가 되지 않았기에 이번에도 법안이 발의되고 통과되기까지는 시간이 상당히 걸릴 것이라는 입장이다.​

 

수술실 CCTV 설치를 놓고 의료계와 환자단체가 대립하는 것을 우려하는 시선도 나온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해관계가 치열하게 부딪치는 경우에는 조정할 수 있는 장치가 작동돼야 하는데, 지금은 없다. 병원 행정 측과 환자 사이의 문제를 조정할 수 있는 협의회를 도입해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며 ​“현재 정부는 행정 효율성을 강조하는 분위기다. 환자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약자인 만큼 정부가 나서서 환자를 대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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