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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나] '남이 해도 로맨스' 독일 시민이 파업에 대처하는 자세

"우리 중의 누구도 그 사람 입장이 될 수 있다"…불편 호소보다 존중과 이해가 먼저

2019.04.16(Tue) 11:11:35

[비즈한국] “내일 새벽부터 24시간 동안 버스, 지하철, 트램 등 모든 대중교통이 파업을 한다고 해요. 미리 대처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4월 초, 학교 내 한국 엄마들 단톡방에 버스 등 파업 관련 정보가 올라왔다. 차 없이 대중교통으로 아이 통학을 시키는 학부모들은 불편함을 호소했고, 자동차로 아이를 매일 실어 나르는 학부모들도 교통량이 많아질 것을 걱정하는 댓글들이 달렸다. 

 

최근 대중교통 파업이 잦았던 터라 그럴 만도 했다. 어떤 날은 출퇴근 시간을 피하거나 주말에만 하는 등 시민 불편을 최소화하면서 파업을 하기도 하고, 일부 노선을 운행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번은 택시를 제외한 모든 대중교통 수단이 파업이라 큰 불편과 혼란이 예상되는 상황. 

 

대중교통 파업 당시 한 지하철 열차 칸에 누군가 써놓은 낙서. “우리는 여러분이 단체교섭 협상에서 많은 성공을 거두기를 바랍니다.” 사진=‘The Local’ 캡처​


파업의 주된 안건은 근무시간 단축. 버스, 지하철, 트램 등 대중교통 수단을 통칭하는 베를린 교통국 BVG 노동조합은 2005년 이후 입사자들의 현재 주당 근무시간인 39시간을 36.5시간으로 단축할 것을 요구하는 경고성 파업을 연달아 해오고 있다. 

 

다음 날 아침, 예상했던 대로 도로 사정은 좋지 않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으니 자연스레 자동차 운행량이 많아졌을 터. 자전거 통행량도 눈에 띄게 늘었다. 평소보다 일찍 출발한 우리는 학교까지 가는 데 1.5배가량의 시간이 소요됐고, 하루 종일 어디를 가든 길이 막혔다. 예전에 비하면 많이 복잡해졌다고는 하지만, 좀처럼 긴 줄이 늘어설 정도의 혼잡함을 보기 힘든 베를린에서는 이례적인 모습.

 

출퇴근으로부터 자유로운 덕분에 파업에도 불구하고 큰 불편 없이 하루를 넘긴 나는, 대단히 불편했을 수많은 베를린 시민들의 태도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막힌 도로 위, 차 안에 있던 사람들 표정까지 미세하게 읽을 수 없었다 치더라도, 몇 번의 신호 끝에 사거리를 통과해야 하는 순간에도 경적을 울리기, 꼬리 물기, 얄미운 끼어들기 등의 볼썽사나운 광경은 없었다. 

 

한 정류장에서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버스 등이 운행하지 않아 불편을 겪는 상황에서도 시민들은 불평이나 비난보다는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며 불편을 감수한다. 사진=박진영 제공


지난 2월 파업 당시, 이미 대중교통 파업을 대하는 베를린 사람들의 자세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파업 당일 사람들은 본인이 겪었을 불편함을 호소하거나 투덜거리는 대신 자신의 SNS에 텅 빈 지하철 역사의 사진이나 대중교통 대신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모습 등을 올리며 파업을 지지했다. 

 

한 지하철 열차 칸에 누군가 써놓은 “우리는 여러분이 단체교섭 협상에서 성공을 거두기를 바랍니다”라는 낙서 사진이 언론 지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내가 느끼는 불편이 크더라도 상대가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거라면 진심으로 이해하고 존중해주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언론 보도도 한국과는 결이 달랐다. 파업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불편을 겪었는지, 도로가 얼마나 혼잡한 상태였는지 등을 앞 다퉈 다루며 파업을 주도한 노조 지도부 징계가 어쩌구 했을 한국과 달리, 독일 뉴스는 파업 때문에 늘어난 자동차 운행량으로 인해 도시 공기가 하루 동안 얼마나 더 나빠졌는지 등을 보도했다. 

 

수많은 시민과 관광객들이 이용하는 베를린 시내의 한 U반 역. 올 들어 잦은 대중교통 파업으로 인해 지하철, 버스, 트램 등이 운행하지 않아 교통 혼잡을 빚었다. 사진=박진영 제공


대중교통 파업이 초래하는 결과가 이러하니 노사가 빨리 협상해서 파업을 그만 하라는 의도가 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식의 기사가 무작정 파업을 나쁘게 몰아가는 한국의 보도에 반해 신선하게 느껴졌다. 

 

지난 2월 겨울방학이 끝나고 얼마 안 돼, 계약직 교사들 및 교직원들이 근무여건 등을 안건으로 파업을 실시, 나흘간 학교가 문을 닫았을 때도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교사 측 입장을 지지했다. 갑작스런 휴교로 인해 워킹맘은 물론 많은 가정이 혼란스러웠을 텐데도, 그들은 ‘공무원 신분이 아닌 계약직 교사·교직원 처우가 너무 열악하다’며 불편을 적극 감수했다. 

 

방학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휴교를 하냐고, 갑자기 이러면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니냐고 도리어 내가 지적했을 때, 당시 한 학부모의 말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우리 중의 누구도 그 사람 입장이 될 수 있으니까요. 당연히 이해하고 존중해야죠.”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나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건 당연하지만 누군가 그의 권리를 위해 싸우면서 나에게 초래하는 불편은 참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글쓴이 박진영은 방송작가로 사회생활에 입문, 여성지 기자, 경제매거진 기자 등 잡지 기자로만 15년을 일한 뒤 PR회사 콘텐츠디렉터로 영역을 확장, 다양한 콘텐츠 기획과 실험에 재미를 붙였다. 2017년 여름부터 글로벌 힙스터들의 성지라는 독일 베를린에 머물며 또 다른 영역 확장을 고민 중이다.

박진영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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