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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에서] 어느 의사의 생애 첫 내시경 체험기

기계뱀이 뱃속에서 꿈틀대는 듯…​"어?" 하는 담당의 외침에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2019.08.27(Tue) 11:40:57

[비즈한국] 내시경을 받아본 적이 없다. 위나 대장, 그 어느 소화기관에도 일절 내시경의 틈입을 허락한 적이 없다. 또한 그 흔한 전신마취 한 번 안 받았고, 수면 마취제를 맞아본 일도 없다. 많고 다양한 중환자실 치료뿐만이 아니라, 치료 목적으로 응급실을 이용해본 적조차 없다. 직장에서 이것들이 이뤄지는 횟수를 감안하면, 몸에 페인트를 한 방울도 안 묻히고 사방 벽에 페인트를 바르는 페인트공과 비슷한 수준이다. 써놓고 보니 비유가 조금 이상하지만, 하여간 그랬다.

 

내시경을 안 받아본 이유는 무서워서다. 입이나 항문에 그 굵은 것이 들어와 한동안 나가지 않는 그 기분이 두려웠다. 수면 마취는 말할 것도 없다. 세상에 주사를 맞으면 의식을 잃고, 이후에는 의지로 통제할 수 없이 육신이 늘어지거나 마음대로 움직이게 된다니. 그리고 누군가 내 장기 안쪽 점막을 막 물리적으로 관찰하고, 내가 혹시나 가졌을 미지의 질환을 갑자기 발견하면서, 엇 저건 뭐지? 하면서 조직을 떼 슬라이드로 만들어 검사를 하고. “암입니다” 내지는 “아직은 뭔지 모릅니다. 더 지켜봐야…”라고 설명하고. 

 

아아, 도저히 무서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여기까지 말하면 내시경을 매년 받은 지 오래인 동생은 “저런 한심한 자가 내 형이라니” 하는 표정을 짓는다. 실상 평소 뉘앙스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내 직업 탓인지 조금 더 격하게 반응한다.

 

당직 근무를 마치고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다. 생애 처음 위내시경을 받았다. 몸은 어서 입에서 내시경을 뽑아 들고 “안 해. 안 한단 말이야!”라고 외치라고 촉구하고 있었다. 사진=flickr.com/Yuya Tamai

 

결정적인 이유는 정부와 학회에서 정한 연안이 아직 안 되었다는 것이다. 위암 검진은 40세 이후로 되어 있다. 직장에서 실시하는 의료진 검진에도 35세 이상이어야만 내시경이 포함된다. 올해도 건강검진을 받으라는 통보는 어김없이 날아왔다. 정말 귀찮은 통보다. 하지만 이걸 안 받으면, 내가 아니라 우리 병원에서 벌금을 내야 한다. 그건 내가 벌금을 내는 것만큼 불편하다. 그리하여 나는 올해도 빼먹지 않고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다.

 

보통 당직을 마친 아침에 건강검진을 받으러 간다. 워낙 저혈압이 있는데, 당직을 마치면 거의 어제 내가 본 환자 수준으로 떨어진다. 어지러워 얼른 집에 가고픈 마음뿐이다. 체중 허리둘레 소변검사 엑스레이 이런저런 피검사 등을 후다닥 받고 얼른 귀가하려고 했다. 문득 내 나이가 이미 만 35세가 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담당 직원에게 위내시경을 받을 수 있냐고 물었고, 오늘 지금이라도 바로 받을 수 있다고 들었다. 이 말을 듣고 집에 가서 잘 요량으로 검진실을 나왔다. 귀찮았기 때문이다. 순간 내 검진을 담당한 선생님의 이름을 보았다. 위암으로 유명을 달리한 학교 선배 외과의사 이름과, 비슷한 것도 아니고, 같았다.

 

돌아가 내시경을 받겠다고 했다. 무엇인가 계시를 받은 것 같았다. 직원은 바로 접수해주었다. 내시경실에서는 지금 예약된 검사를 마치고 한 시간 이내로 전화를 주겠다고 했다. 나는 응급실로 돌아와 당직 침대에 누웠다. 드디어 나도 내시경의 세계로 진입하는 것이다. 

 

카메라가 달린 뱀처럼 움직이는 긴 관이 담당 의사의 조종에 의해 자유자재로 돌고 굽어져 평생 사용한 위장 안에서 활개치고 맛보고 씹고 뜯고 즐기고…. 하지만 위암으로 작고한 형을 생각했다. 그래도 받는 것이 나을 것이다. 물론 형은 내시경으로 그 자리에서 위암 말기 진단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내시경 담당 선생님은 응급의학과 근무복을 그대로 입고 온 나를 보고 조금 당황했다. 그리고 자리로 안내했다. 침대는 무조건 내시경을 받아야만 할 것 같은 세팅이 되어 있었다. 키가 큰 모니터와 내시경 걸이와 단출한 검은 침대에 몇 가지 도구가 놓여 있었고, 입 부근에는 키친타월과 입마개와 고무줄이 깔려 있었다.

 

저 입마개는 인간이 최대한의 악력을 사용해도 절대 상악과 하악이 맞닿아 무엇인가를 씹을 수 없게 만드는 매우 굴욕적인 발명품이었다. 이를 사용하면 입에 넣은 것은 절대 물리적으로 상하지 않는다. 매우 행위자 중심의 존재였다. 색깔조차 눈에 쉽게 띄는 야한 초록색이었다. 내시경 받는 사람, 위세척 받는 사람, 삽관 환자까지 모두가 당하는 입마개였다. 그것을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음을 깨달았다. 장난삼아 입에 넣어본 적도 없었다. 대신 타인에게 천 번쯤 물려봤을 것이다. 이제 때가 왔다. 나도 저 입마개를 차고 침을 한 바가지 흘릴 때가.

 

일단 간호사가 내 입에 마취제를 분무했다. 매우 직접적이고 적나라해서 폭력적인 느낌까지 드는 바나나 맛이 났다. 누구든 과일을 이런 식으로 소비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맛을 쩝쩝대고 있으니 입마개가 매우 완벽하게 내 입에 안착했다. 이제부터 내 침은 모조리 바깥으로 흐른다. 문명사회에서는 낯선 사람 앞에서 침을 한 방울만 튀겨도 실례이고 부끄러운 일이 아니던가. 벌써부터 입안의 침이 고여 마음대로 탈출하려는 느낌이 들었다.

 

내시경 담당 선생님은 매우 친절했고,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매우 토 나올 겁니다.” 정답이었다. 그 굵은 관이 입안에 들어왔는데, 딱 그 순간부터 나는 그 관을 견디는 것 이외에는 어떠한 것도 할 수 없었다. 목구멍이 타버리는 것 같았다. 눈을 뜨기만 해도 모종의 구역 행위를 할 것 같아서, 눈을 질끈 감고 어서 이 시간이 끝나기만을 버티기 시작했다. 몸은 어서 입에서 내시경을 뽑아 들고 “안 해. 안 한단 말이야!”라고 외치라고 촉구하고 있었다.

 

내시경은 일단 십이지장까지 진입한다. 그 뒤 내시경을 빼면서 한 장씩 사진을 찍고 확인하며 나온다. 선생님은 내시경이 ‘십이지장’으로 들어갈 것임을 경고했고, 가뜩이나 불편한 속이 한층 더 복합적으로 불쾌해졌다. 토할 것 같은 와중에서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들어있는 십이지장의 3D 모형이 어둠 속에서 그려졌고, 하등의 도움은 되지 않았다. 

 

배 안에서 기계 뱀이 역동적으로 꿈틀대고 있는 것 같았다. 실제로 구역감을 참을 수가 없어 나는 계속 헛구역질을 하며 침을 질질 흘렸다. 괴로웠다. 하지만 입안을 내시경이 틀어막고 있어, 아무리 구역질을 해도 전혀 편해지지 않았다. 내시경이 빠져나오며 한 장 한 장 사진을 찍던 선생님은 외쳤다.

 

“어?”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아. 오래전부터 속이 쓰렸지. 왜 하필 담당 교수님은 그 형의 이름과 같았던 것일까. 하여간 참 열심히 살았다. 이제는 투병기를 쓸 차례구나. 그런 생각을 하는데 내시경이 마무리되었다. 길었다고 말하기에는 부끄러울 정도로 금방 끝났다. 내시경이 나간 뒤, 입안의 침을 앞의 티슈에 뱉으라고 해서 뱉었다. 그 양은 대략, 조그만 캔에 담긴 음료수쯤 되는 듯했다. 마치 음료수 캔을 따서 하나도 안 먹고 입에 넣어 가글을 하고 다시 도로 쏟아붓는 느낌이었다. 침은 대단히 끈적거렸다. 수치스러웠다.

 

선생님은 보여줄 것이 있다고 나를 불렀다. 드디어 그 장면인가. 가슴이 쿵쾅거렸다. 하지만 나는 많은 이들의 불행을 선고했으므로, 나도 그만큼을 들어야 할 것이었다. 이것이 인과율인가. 망할 인과율. 선생님은 전산에서 뜸을 들이며 사진을 뒤적거리며 찾았다. 그리고 보여주었다. “역류성 식도염이 심합니다.”

 

그건 내게 “정상입니다”보다도 더 정상으로 들렸다. 보통 우리나라 성인 50%는 역류성 식도염이 나온다. 폭식하고 술 많이 먹고 카페인 섭취하고 스트레스 많이 받고 밤을 새거나 먹다가 바로 자면 많이 생긴다. 내게 역류성 식도염조차 없다면 그건 대자연의 섭리를 거스른 일이었다. 나는 물었다. “다른 건 없나요?” “없는데요.” 나는 내시경 중에 왜 “어?”라고 했는지 묻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나도 응급실에서 시술하거나 설명하거나 사진을 보거나 기타 무엇을 할 때 조금이라도 돌발 상황이 생기면 “어?” 한 다음 나중에 “괜찮습니다”라고 한다. 습관이다.

 

한 달치 식도염 약을 처방받아 들고 집에 왔다. 이러하여 내시경의 세계로 입문을 마쳤다. 퇴근길에 자랑하려고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바쁜지 받지 않았다. 나는 카톡을 남겼고, 동생은 한참 뒤 ‘참… 잘했네…’라고 답을 보냈다. 말투가 건조해 보였지만, 내용은 엄연히 칭찬을 담고 있었다. 역시 동생에게 인정을 받을 때가 가장 기분이 좋다. 동생아, 너는 내시경도 넉넉히 받을 수 있는 용감하고 슬기로운 형을 두었다. 자랑스러워할지어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의사·‘지독한 하루’ 저자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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