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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컴퓨터 없이 우주 시뮬레이션을 돌린 천문학자

앨런 튜링 이전 인류 최초로 시도된 은하 충돌 시뮬레이션의 기발한 방법

2020.08.03(Mon) 09:56:13

[비즈한국] 천문학도 과학 분야 중 하나다. 하지만 다른 과학과 다른 가장 큰 차이가 있다. 바로 실험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흔히 과학 하면 실험실에서 가운을 입고 실험을 하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하지만 천문학의 연구 대상인 별과 은하들은 너무 거대하고 너무 멀리 있다. 그래서 좁은 실험실에 천체들을 가둬놓고 괴롭힐 수 없다. 그래서 아주 오래전부터 천문학은 하늘을 바라보는 관측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천문학이 하고 있는 건 본질적으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늘을 보는 도구가 맨눈에서 최첨단 우주 망원경으로 달라졌을 뿐이다. 오랫동안 하늘을 관측하고, 그 안에서 패턴을 찾아내고, 그것을 설명하는 이론을 만드는 건 고대나 현대나 차이가 없다. 하지만 이마저도 대부분의 천문 현상들은 수천만, 수억 년 스케일로 아주 느리게 벌어진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우주의 유의미한 변화를 생동감 있게 목격하기 어렵다. 

 

천문학자들은 진짜 우주를 가지고 실험을 할 수 없다는 태생적 한계에 부딪혔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진짜 우주 대신 간단한 모형을 가지고 간접적인 실험을 한다. 바로 컴퓨터 시뮬레이션이다. 

 

천문학자들은 대체 언제부터 시뮬레이션으로 우주를 연구하기 시작했을까? 놀랍게도 인류 최초의 우주 시뮬레이션은 컴퓨터가 등장하기도 전에 시도되었다!

 

#수학적으로 ‘노답’인 문제 

 

은하들이 충돌하는 이런 화려한 모습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두 은하 속 별들이 서로 주고받는 모든 중력을 계산해야 한다. 아주 어려운 과정이다. 각각의 은하에는 수천억 개 이상의 아주 많은 별들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사실 중력을 주고받는 물체가 단 두 개뿐이라면 문제는 아주 간단하다. 중력을 주고받는 두 물체가 어떤 궤도를 그리며 움직일지를 묘사하는 정확한 수학적인 해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고려해야 하는 물체가 세 개를 넘는 순간 상황은 완전 달라진다. 물체 세 개가 서로 동시에 중력을 주고받기 때문에, 이들의 움직임을 푸는 건 아주 어렵다. 이런 3체 문제는 너무나 어려워서 한때 거액의 상금까지 걸고 그 답을 찾았을 정도로 악명이 아주 높다. 라플라스, 뉴턴과 같은 저명한 수학자, 물리학자도 결국 실패할 정도였다. 나중에 수학자 푸앵카레가 애초에 3체 문제는 수학적인 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했다. 3체 문제는 애초에 ‘노답’이었던 것이다. 

 

물체 세 개가 서로 중력을 주고받으면 어떻게 움직이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모습. 초기 조건의 아주 미세한 차이로 인해 전혀 다른 뒤죽박죽하는 모습으로 움직인다. 이미지=https://bit.ly/31fXECI

 

그런데 은하들은 단순히 세 개도 아니고, 별들이 수천억 개씩 모여 있다. 게다가 이런 은하들도 아주 많다. 그래서 은하들끼리 서로 부딪히는 모습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3체 수준이 아니라, 억 체, 조 체 수준의 문제를 풀어야 한다. 그렇다면 대체 이 노답 상황을 어떻게 풀 수 있을까?

 

N체 문제를 풀 수 있는 수학적인 공식이 없기 때문에, 결국 일일이 다 계산하는 수밖에 없다. 매순간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모든 물체들이 어떤 방향으로 얼마나 강한 중력을 느끼는지를 계산한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서 모든 물체를 조금씩 이동시킨다. 그리고 다시 조금씩 이동한 자리에서 다시 또 각 자리에서 느끼는 중력을 계산하고 이 과정을 반복한다. 만약 시뮬레이션에 들어가는 점입자(mass paritcle)의 개수가 1억 개라면 매번 필요한 계산 횟수는 1억 곱하기 1억 개가 된다. 그래서 시뮬레이션은 아주 많은 연산을 필요로 한다. 

 

당연히 현대 천문학에서 사용하는 우주 시뮬레이션은 이처럼 어마어마한 양의 계산을 소화해야 한다. 따라서 슈퍼컴퓨터는 필수다. 우리가 흔히 보는 화려한 모습의 시뮬레이션은 그냥 보기 예쁘라고 아무렇게나 그린 그림이 아니다. 실제로 병렬로 연결된 CPU가 몇백, 몇천 개가 몇 개월 동안 쉬지 않고 계산한 결과들이다. 

 

약 3억 광년 크기의 가상 우주를 구현한 일러스트리스(Illustris) 시뮬레이션. 중력에 의해 모여든 암흑물질 입자들의 중심에 거대한 은하단이 형성되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이미지=Illustris Collaboration

 

기계가 자동으로 연산을 하는 현대적 의미의 기계 컴퓨터가 인류사에 처음 등장한 건 2차 세계대전이 진행되던 시절이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에서 수학자 앨런 튜링이 독일군의 에니그마 암호를 해독하기 위해 컴퓨터를 개발하던 바로 그 시기다. 대략 1945년의 일이다. 그래서 당연히 인류 최초의 천문학 시뮬레이션이 언제일까라고 묻는다면, 적어도 이 이후일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시뮬레이션을 하려면 당연히 일단 컴퓨터가 존재해야 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컴퓨터가 나타나기도 훨씬 전에, 은하들의 충돌을 직접 시뮬레이션 한 천문학자가 있었다. 스웨덴의 천문학자 에릭 홈버그(Erik Holmberg)다. 

 

#시뮬레이션을 수작업으로?! 

 

1941년 홈버그는 은하 두 개가 충돌하는 과정을 구현하고 싶었다. 하지만 컴퓨터도 아직 없던 시절이라 그런 방대한 계산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렇다면 홈버그는 대체 어떻게 별들이 주고받는 복잡한 중력을 계산했을까? 홈버그는 아주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바로 전구 불빛을 활용하는 것이다. 

 

중력은 거리가 멀어질수록,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해서 그 세기가 약해진다. 이와 마찬가지로 전구의 불빛, 플럭스 역시 전구에서 거리가 멀어질수록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해서 어두워진다. 바로 이 점을 활용하는 것이다. 

 

홈버그는 은하 모양으로 전구를 여러 개 세팅했다. 그리고 멀리 또 다른 곳에 또 다른 전구 은하 모형을 세팅했다. 그리고 불빛의 밝기를 재는 조도계를 활용해서 각 전구의 위치에서 상대편 전구 은하 모형의 전체 밝기, 플럭스를 측정했다. 조금씩 다른 거리에 떨어져 있는 여러 전구들의 밝기를 한꺼번에 합해서 조도계로 측정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각각의 전구에 의해 느끼는 중력을 따로 계산해서 합할 필요가 없다. 그냥 각 전구의 위치에서 조도계로 한 번에 상대편 모형 은하의 플럭스를 재면 된다. 이렇게 각 전구의 자리에서 측정한 상대 은하 모형의 플럭스는 그 전구가 느끼는 상대 은하에 의한 중력이라고 볼 수 있다. 

 

홈버그가 직접 전구들을 이동시키면서 구현한 은하들의 충돌 과정 결과. 각 점이 전구다. 은하들이 서로의 중력에 의해 나선팔을 만들어낸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미지=https://bit.ly/319XigV


이를 이용해 홈버그는 각 전구를 다시 미세하게 조금씩 이동시켜 배열을 바꿨다. 그리고 다시 각 전구의 위치를 돌아다니면서 앞선 과정을 반복했다. 오늘날 슈퍼컴퓨터가 하는 작업을 사람이 직접 돌아다니고 전구를 이동시키면서 했다고 보면 된다. 참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그해 11월 홈버그는 동심원을 그리며 둥글게 돌고 있던 전구 은하들이 서로의 중력에 의해 나선팔과 같은 구조를 만든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컴퓨터가 등장하기도 훨씬 전, 인류 역사상 최초로 은하들의 충돌을 시뮬레이션 한 역사적인 논문이었다. 

 

물론 그의 결과는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은하들의 실제 진화와는 전혀 다르게 잘못됐다. 당시 홈버그는 은하 하나에 전구를 37개씩 사용했다. 그만큼 굉장히 투박한 해상도의 시뮬레이션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컴퓨터도 없이 효과적으로 복잡한 계산을 대체하고자 고민했던 그의 아이디어만큼은 참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모든 걸 다 컴퓨터로 하는 시대라서, 요즘 과학 연구에선 이런 맛이 없다는 게 아쉽게 느껴지기도 한다. 

 

#더 세밀한 해상도로 구현되는 우주들

 

에릭 홈버그의 기발한 전구 은하 실험 이후 컴퓨터가 본격적으로 천문학 분야에서도 쓰이기 시작했다. 이후 1960~70년대 천문학자 알라 툼리(Alar Toomre) 형제의 연구를 시작해 더 정밀한 은하 충돌 시뮬레이션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컴퓨터 성능이 혁신적으로 더 좋아지면서 이제는 은하 단 두세 개가 아니라 수백 수천 개가 하나의 거대한 가상의 우주 속에서 한꺼번에 형성되고 충돌하는 모습을 구현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아직은 은하 속 개개의 별들을 다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해상도로 시뮬레이션을 만들지는 못한다. 대신 전체 시뮬레이션에서 특별하게 더 좋은 해상도로 보고자 하는 영역만 따로 확대해서 그 좁은 영역 안에서 해상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계산한다. 그러면 굳이 시뮬레이션을 통째로 다 높은 해상도로 돌릴 필요는 없다. 그래서 더 경제적으로 계산을 할 수 있다. 이런 방식을 줌인 시뮬레이션(zoom-in simulation)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초고해상도 시뮬레이션 중 하나인 라테 파이어 2(Latte FIRE 2). 우리 은하 정도 되는 크기의 은하가 138억년에 걸쳐 형성되는 과정이 담겨 있다. 약 130만 광년 크기의 영역 안에서 거대한 은하와 크고 작은 성단, 왜소은하가 만들어지는 세밀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영상=https://fire.northwestern.edu/latte/

 

이런 최근의 시뮬레이션을 보면, 이전까지는 구현할 수 없었던 아주 작은 세밀한 구조들도 재현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은하의 나선팔이나 복잡하게 얽힌 은하의 필라멘트 등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치 인간이 조물주가 되어서, 컴퓨터 속에 새로운 가상의 우주를 아예 창조하는 듯한 황홀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어쩌면 먼 미래, 개개의 별을 넘어서, 행성 하나, 분자 하나하나 단위까지 더 세밀하게 표현할 수 있는 초고해상도 시뮬레이션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해봐도 좋겠다. 그런 초고해상도 시뮬레이션이라면 아마 컴퓨터 속 가상의 우주 안에서 만들어진 한 행성에서 지구와 같이 생명체가 탄생하는 모습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렇게 태어난 가상의 생명체들도 우리가 우주를 탐구하듯, 자신들이 살고 있는 컴퓨터 속 가상의 우주를 과연 누가 만들었을지를 고민할지도 모른다. 그들에겐 우리가 절대 만날 수 없는, 우주 바깥의 조물주가 되는 셈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 역시 사실 더 거대한 슈퍼컴퓨터 시뮬레이션 속을 살고 있는 그저 계산 결과에 불과한 존재였던 것일지도 모른다. 

 

https://www.jstor.org/stable/40679008?read-now=1&seq=28#page_scan_tab_contents 

https://www.nature.com/articles/s42254-019-0127-2?draft=collection 

https://www.illustris-project.org/

https://fire.northwestern.edu/latte/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galaxy.wb.z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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