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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짜오 호찌민] '베트남판 태양의 서커스' 본 6살 아들의 반응

공연 시작하자 121년 역사 '사이공 오페라 하우스'가 깨어나기 시작했다

2021.05.06(Thu) 14:29:12

[비즈한국] 설레는 마음으로 택시에서 내렸다. 호찌민 이주 후 처음 공연을 보러 왔기 때문이다. 하드록카페에서 록밴드가 유명 록 넘버를 연주하는 걸 본 적은 있지만, 그건 전 세계 어느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무대다. 이번 공연은 다르다. 트립어드바이저가 소개하는 약 20개의 호찌민 공연 중 평이 가장 좋은 공연이었다. 어느 블로거는 ‘베트남에 오면 반드시 봐야 하는 공연’이라고도 했다. 

 

공연의 이름은 아오쇼. 오직 대나무 장대와 대나무 바구니만으로 베트남 여러 도시의 문화를 보여주는 쇼로, 공연 기획사는 ‘대나무 쇼(Bamboo Show)’라고 홍보하고 있었다. 공연을 다 보고 나서는 ‘아오쇼(AO Show)’라는 이름도 대나무 장대를 세운 모양인 ‘A’와 대나무 바구니 모양인 ‘O’를 합쳐 만든 게 아닐까 혼자 생각했는데, 나중에 인터넷을 찾아보니 마을을 뜻하는 랑(Lang)에서 ‘A’를 가져오고, 도시를 뜻하는 ‘타인포(Thanh Pho)’에서 ‘O’를 가져와 합성한 이름이라고 한다. 전반부에는 시골 마을을, 후반부에는 도시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한 시간 동안 베트남의 역사와 문화를 집약적으로 볼 수 있다. 

 

1900년에 지어진 이후 1998년 복원이 완료된 사이공 오페라 하우스. 사진=김면중 제공


예매하기 전 리뷰를 몇 개 읽었는데, 그 가운데 나를 가장 혹하게 한 코멘트는 ‘베트남판 태양의 서커스’라는 평이었다. 오리지널 ‘태양의 서커스’ 감독인 스테판 하베스(Stefan Haves)는 이 공연을 감상한 후 “최근 감상한 공연 중 최고”였다고 극찬했다. 어찌 이런 공연을 놓칠 수 있겠는가. 

 

베트남 물가 치고는 티켓 값이 꽤 비쌌지만 과감히 세 장을 예매했다. 좌석은 세 가지 등급이 있는데 우리는 중간 수준의 좌석을 예매했다. 티켓 한 장 가격은 우리 돈으로 약 5만 원 정도. 참고로 내가 요즘 호찌민에서 자주 먹는 돼지구이 백반(껌승·Com Suon)이 2000원 정도 한다.

 

공연 자체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지만, ‘거금’을 주고 티켓을 산 데는 다른 이유도 있다. 공연이 펼쳐지는 사이공 오페라 하우스를 제대로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예술의전당’ 같은 사이공 오페라 하우스는 호찌민을 찾는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오는 곳이다. 나쁘게 표현하자면 호찌민 관광의 클리셰라고도 할 수 있겠다. 대부분은 외관만 보고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 한 장 찍고는 발길을 돌린다. 내부는 오직 공연이 있을 때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120년 넘은 역사를 품은 오페라 하우스 내부에 들어가기 위해서라도 우리 가족은 15만 원이라는 거금을 기꺼이 결제한 것이다. 

 

오페라 하우스의 입지를 보면, 관람료 비싼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는 루이뷔통, 에르메스, 구찌 등 온갖 명품 매장이 모여 있었다. 호찌민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하다는 두 개의 호텔도 오페라 하우스를 호위하듯 양 옆에 우뚝 서 있었다. 왼쪽에는 1880년에 건립된 역사적 호텔인 콘티넨탈 호텔이, 오른쪽에는 호찌민에서 가장 호화로운 호텔로 꼽히는 카라벨 호텔이 있다. 콘티넨탈 호텔은 영국 소설가 그레이엄 그린의 소설이자 두 차례나 영화화된 적이 있는 ‘조용한 미국인(The Quiet American)’의 주요 배경이었던 곳이고, 카라벨 호텔 또한 베트남 전쟁 당시 외신 보도국과 대사관이 있었던 곳으로 수많은 역사를 품고 있다. 이밖에도 파크 하얏트, 쉐라톤 등 최고급 호텔들이 오페라 하우스를 둘러싸고 위치해 있다. 길 바로 건너편에는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의 공사가 한창이었다. 

 

사이공 오페라 하우스의 내부 모습. 사진=김면중 제공


‘이곳이야말로 베트남에서 가장 비싼 동네겠군.’ 

 

오페라 하우스 주변을 보고 있으면 이런 생각이 절로 든다. 

 

흔히들 베트남에 가면 프랑스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고들 한다. 바로 이곳 오페라 하우스에서 그 정취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한눈에 봐도 프랑스 건축물임을 알 수 있다. 프랑스 식민 시대에 지어진 건물로, 프랑스 건축가 펠릭스 올리버(Félix Olivier), 유진 페레(Eugène Ferret), 어니스트 기차드(Ernest Guichard)가 19세기 말 고딕 스타일로 디자인했다. 건축에 사용된 조각 장식이나 난간 등의 재료를 전부 프랑스에서 공수해 와서 만들었다. 파리 시립 미술관인 프티 팔레(Petit Palais)와 비슷하다고 해 ‘호찌민의 프티 팔레’라는 별칭도 가지고 있는데, 두 건물은 같은 해인 1900년에 지어졌으니 비슷한 스타일인 것도 무리는 아니다. 

 

건물 외부는 무척이나 화려한데, 이 이유로 시련을 겪기도 했다. 외관이 사치스럽다는 이유로 프랑스군 철수 이후인 1943년 모든 외관 장식물과 동상을 제거했다. 그 장식물과 동상에 어떤 영험한 기운이 있었던 것일까. 그때부터 오페라 하우스는 온갖 시련을 다 겪는다. 1944년에는 일본군의 공습을 받고, 1945년부터 10년 동안은 극장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고, 1956년부터는 남베트남 공화국의 하원의회당으로 사용됐다. 공연장 기능이 부활한 것은 사이공 함락 이후인 1975년부터다. 원래 외관을 복원하기로 결정하고 1995년에 리노베이션을 시작해 사이공 300주년을 맞이해 1998년 지금의 화려한 모습을 세상에 선보였다. 

 

이토록 수많은 사연을 품은 건물 내부로 들어서면 19세기 말 파리의 문화 번성기였던 벨 에포크(Belle Epoque)의 감성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들어서자마자 펼쳐지는 아름다운 곡선 계단만 봐도 알 수 있다. 

 

아오쇼는 대나무 장대와 대나무 바구니만으로 베트남 여러 도시의 문화를 보여주는 쇼다. 사진=김면중 제공


공연 시작 전 웰컴 드링크를 준다. 따뜻한 차 한 잔을 받아 들고 발코니로 향했다. 오페라 하우스 측면부의 발코니는 내게 마법의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바라본 밤 풍경이 너무나 낭만적이었다. 가로등과 조명이 은은하게 비치는 분수대와 정원을 바라보던 그 짧은 몇 분 동안 ‘공연이고 나발이고, 저 풍경 속으로 빠지고 싶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분수대 건너편에서 무지개 색깔 조명을 받으며 빛나는 콘티넨탈 호텔의 모습도 100년 전 사이공 시대로 날 이끌었다. 

 

짧은 낭만을 누리는 것도 잠시, 공연 시간이 다가왔다. 공연장 안으로 들어서니 화려한 천장 장식과 3층 규모 좌석이 펼쳐져 있었다. 원래는 18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지었는데, 리노베이션 당시 좌석 크기를 넓혀 현재는 약 500석을 갖추고 있다. 

 

천천히 조명이 어두워지고 이내 깜깜해졌다. 곧 공연이 시작된다는 뜻이다. 음악이 울려 퍼지고 다시 조명이 켜졌다. 무대 위에 등장한 근육질 배우들이 커다란 대나무 바구니 위에 올라 현란한 묘기를 선보인다. 관객석에서는 감탄과 호응이 쏟아진다. 그 순간, 이 120년 넘은 공간에 새로운 생명력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반쯤 누운 자세로 있던 아들 녀석도 어느새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고개를 앞으로 쭉 내민 채 눈앞에 펼쳐지는 장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내게는 ‘태양의 서커스’에 미치지 못했지만, 태어나서 처음 이런 공연을 접하는 만 다섯 살 아들에게는 신선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런 아들의 모습을 보며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 순간, 티켓 값 생각은 싹 사라졌다. 

 

언젠가 이 공간에서다시  공연을 보고 싶다. 이것이야말로 호찌민의 낭만과 역사와 문화를 느끼는 최고의 방법이니까 말이다. 

 

김면중은 신문기자로 사회생활에 입문, 남성패션지, 여행매거진 등 잡지기자로 일한 뒤 최근까지 아시아나항공 기내지 편집장으로 근무했다. 올해 초부터 전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도시인 베트남 호찌민에 머물고 있다.​​​

김면중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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